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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Jul 03. 2023

잊어야 할 것을 잘 잊는 사람


    그럴만해서, 그래야만 해서 저지르고 말았다. 애초에 저지른다는 표현이 적절한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티켓을 끊었다. 도착지는 홍콩, 출발은 당장 내일.          


    그 다음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떴을 땐 무언가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고 내 손에 쥐어진 휴대폰 화면을 보고 나서야 몇 시간 전 끊은 비행기 표가 희미하게 떠올랐을 뿐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캐리어를 끌고 공항철도 레일을 따라 두 발을 부지런히 놀리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어디로 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어둑한 기내 안에서 각기 다른 영상에 심취해 있느라 핸드폰만 보고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앉아있을 때도, 새벽 늦게 공항에 떨구어지자마자 엄청난 습도가 나를 덮쳐왔을 때도 그저 모든 것이 아득하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홍콩에서의 모든 하루가 그랬다. 매일이 기억인지 꿈인지 구분이 어려운 것 같단 생각을 하며 더위에 녹아내렸다. 왜냐하면 나흘 동안 나의 일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해봤자 오래된 서점 기웃거리기 혹은 줄 서지 않고 프렌치토스트 먹기 정도였기 때문이다. 무계획적인 나흘이 꿈처럼 느껴진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에게 반감이 들 뻔도 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예림과 싸우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다는 결론과 함께 우리는 극적으로 화해를 하였다. 그렇게 나는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면서 최고의 조식을 찾아 헤매며 호텔을 나서는 걸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 아침은 대체로 이런 식이였다. 인파를 뚫고 들어간 식당에서 어설프게 사진을 가리키면 계란물을 입힌 빵이 서둘러 내 앞으로 도착했다. 이 더위에서 조차 잘 흐르지도 않을 만큼 끈적끈적한 꿀을 듬뿍 뿌려 크게 베어 물고, 밀크티를 한 입 들이켜면 정신이 번쩍 뜨일 수밖에 없는 그런 극강의 단 맛이었다. 땅콩버터 혹은 카야잼, 식당마다 비법 레시피는 조금씩 달랐지만, 구웠다기보다 튀겼다는 표현이 적합한 노릇노릇한 식빵 두 조각 위에 버터 한 덩이가 성의 없이 올라가 있는 모양새는 어딜 가도 비슷했다.


    한편, 나의 조식 메이트들은 매일 바뀌었다. 단 몇 번의 수저질로 정체 모를 덮밥을 해치우는 나이가 지긋하신 아저씨와, 짐짓 심각하게 메뉴판을 들여다보다가 결국 익숙해 보이는 것을 주문하고 마는 비슷한 처지의 중동 관광객, 끽해야 갓 입학한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과 젊은 엄마까지. 그들 옆자리 또는 건너편에 앉아 나는 식빵을 썰어댔다. 어린 딸은 밀크티를 몇 모금 마시다가 결국 실패한 사람의 표정으로 커피를 주문하는 내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닭날개가 접시에 놓이자마자 눈앞의 이방인을 잊고 살을 골라 먹는데 집중했다. 그러면 나도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그제야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어 평화롭게 아침을 열었던 것이다.


    사실 홍콩은 결코 평화와 가까운 도시가 아니다. 이 찢어질 듯한 더위에도 어찌나 사람들의 발걸음은 재빠르고 말소리는 우렁찬지. 게다가 열 걸음마다 놓인 것 같은 수많은 횡단보도의 경보음은 어찌나 요란한지. 어딜 가도 길목마다 공사가 한창이고, 트램과 버스, 택시와 오토바이의 경적소리가 한데 뒤엉켜 그야말로 쉴 새 없이 고성이 난무하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그 소음들은 나와는 완전하게 무관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건 마치 헤엄을 칠 때의 기분과도 비슷했다. 오랜만에 물 밑으로 들어간 사람이 세상이 얼마나 단박에 고요해지는지 새삼 경이로워하는 것처럼.


    이를테면 구룡 공원 구석 어딘가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었다. 사실 나는 카뮈의 단어와 문장에 반해 제정신이 아니었으므로 그렇게 시간이 흐른 게 딱히 놀라울 일도 아니었지만(정말이지 그 순간만큼은 카뮈는 이미 죽은 사람일지언정 나와 가장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이자, 도대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냐고 당장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 그러나 그러지 못해서 조금 울고 싶어 지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정신을 차리고 본 내 눈앞의 풍경이 다소 소란스러운 모양새였다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아슬아슬하게 핸드폰을 세워두고 그 앞에서 영상을 찍느라 몸을 꽈배기처럼 베베꼬고 있는 아이들 무리였다. 두 번째로 보인 것은 나의 맞은편에서 헝클어진 자세로 무심하게 앉아있는 엄마들의 무리였다. 한쪽은 지나치게 씰룩거리고 한쪽은 지나치게 태평한 모습이 너무나도 상반되어서, 그 아이가 저 엄마의 딸이고, 저 엄마가 이 딸의 엄마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손뼉이 딱 맞지 않거나 표정이 충분히 요염하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아이들이 촬영을 여러 번 시도하는 동안 엄마들은 남일 보듯 마냥 앉아 수다를 떨었다, 결코 작지 않은 데시벨로.      


    혹시 말레이시아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어쩌면 인도네시아어일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둘 다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구상에 그렇게 둥글면서도 뾰족하고 씩씩하면서도 멀리 퍼지는 언어도 있구나 싶었다. 대단한 언어와 춤사위가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도 조용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감탄했다. 왜냐하면 그 소리들은 말레이시아어라서(혹은 인도네시아어라서), 그러니까 어느 나라 언어인지조차 가늠되지 않는 소리들이라서, 나에겐 저 멀리서 들려오는 매미소리나 새소리와 별반 다르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가 없다. 오로지 내가 들을 수 있는 거라곤 스스로가 건네는 소리뿐인 것이다(혹은 카뮈가 건네는 말이거나). 그렇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흘 내내 홍콩 시내를 휘젓고 다녔지만 그때 만끽했던 해방감은 마지막 날 리펄스 베이에서 느낀 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모래사장에 꼿꼿이 서있는 나무 몇 그루가 보였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파라솔 삼아 사람들이 흐트러져있었다. 나도 적당한 자리가 보이자 기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일단 누워보았다가 예의상 다시 몸을 일으켜 옆 자리 남자에게 물었다.


"Can I sit here?"

그가 말했다.

"Why not? It’s a perfect place to be."


    맞는 말이었다. 뜨거운 모래에 발을 휘저어 넣어보니 정말 이보다 나은 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곧이어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이 떠올랐고, 그런 것들은 사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제야 그 사실을 다시 기억해 냈다는 게 바보같이 느껴졌다. 기억해야 할 것은 잊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을 막상 기억해버리고 말았던 후회스러운 날들이 작은 모래알이 되어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한동안 그린데이와 오아시스로 도배된 옆자리 남자의 선곡에 귀를 기울이며 속으로 바랬다. 잊어야 할 것을 잘 잊고, 기억해야 할 것을 잘 기억해야 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아니면 적어도 그 둘을 잘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한참을 게으르게 누워있는데 그가 다시 물었다, 혹시 소리가 너무 크진 않냐면서. 나는 말했다. "No. It's perfect."


.

.

.


이것이 10년 만에 다시 방문한 홍콩에서의 기억들이다. 아, 날들은 얼마나 느리고 해들은 얼마나 빠른지. 돌이켜보면 스물 하나에서 서른 하나가 되는 동안 뭘 하면서 살았는지 조금도 모르겠다. 여전히 인생의 진리 같은 것도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잘 먹고 잘 사는지 그 방법도 잘 모르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걸 꼭 알면서 살아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이라곤 아침에 먹는 프렌치토스트가 맛있으면 하루가 제법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리고 요즘의 나에겐 그것만큼 중요한 사실도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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