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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Mar 19. 2023

필라테스와 아프리카의 상관관계 (1)


    시작은 7년 전쯤이었다. 당시의 나는 또래의 친구들처럼 군살 없는 허리와 곧게 뻗은 척추를 가지고 싶었고 그 사실을 귀신같이 포착한 레이더에게 붙잡혀 –그런 욕망은 어떤 식으로든 티가 나나보다– 전단지 하나를 손에 쥐고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한 필라테스는 생각 이상으로 나에게 적합한 운동이었는데,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하루에 50분이란 시간만 내어주면 된다는 점과 둘째, 내가 남의 눈에는 굉장히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돌보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를 좋아한다는 점(사실은 그저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다리를 움직이는 것뿐이면서), 그리고 셋째, 개원 프로모션으로 선착순 10명에게만 제공되는 수강료를 지불할 수 있는 황송한 기회를 얻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나는 마디 개수를 세어가면서 척추를 굽히고, 천장에서 누가 나를 잡아당기는 상상을 하면서 목을 길게 빼는 행위를 반복했다. 글로 쓰면 난해하게 들리지만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숫자에 맞춰서 앞사람의 동작을 따라 하기만 되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자면 나는 50분 동안 바보가 되었고, 그 사실이 너무나 만족스러워 일주일에 세 번씩 복잡한 다리 운동에 성실히 임하였다.


    물론 기대한 것처럼 길에서 마주친 누군가가 두 눈이 휘둥그레져 자신이 아는 그녀가 맞냐고 재차 되물어볼 정도의 변화는 아니었지만, 필라테스가 내게 가져다준 여러 가지 유의미한 이점은 분명히 있었다. 매일 화면을 보느라 굽어진 어깨가 곧게 펴졌고 투명의자에 앉아있는 척을 12초 정도 더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엇보다도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움직일 때 떠오르는 무의식적인 장면들에게 큰 흥미를 느꼈다. 온몸을 쥐어짜며 복근을 단련하고 있을 때 떠올랐던, 어느 조수석에서 바라본 케이프타운의 풍경 같은 것 말이다.



아디스아바바의 컬러란


    23살 무렵 나는 그 해의 절반을 아프리카에서, 정확히는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보내느라 다양한 방식으로 애를 썼다. 휴대폰 배경화면을 사파리 초원으로 바꿔놓았단 것을 귀신같이 알아챈 우주가 그럴 거면 인턴이나 하고 오라며 에티오피아로 나를 떠밀어버린 것이다. 까짓 거 뭐 하며 대수롭지 않게 떠나왔건만 예상과는 다르게 매일의 하루들은 꽤나 성가신 편이었다.


    이를테면 샤워를 하려면 원기옥 모으듯 한 방울 한 방울 끌어 모은 온수 한 병으로 해결을 봐야 하는 것과, 세탁기가 없어서 방망이로 빨래를 두들기는 수고로움 같은 건 어깨를 으쓱하며 넘길 수 있었다. 그런가 하면 며칠을 걸려 간신히 다운로드한 <마녀사냥>을 보던 도중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모든 흐름이 끊겨버리는 날도 있었다. 그린라이트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없게 된 나는 소리를 빽 지르고 머리카락을 다소 잡아 뜯는 과정을 거치고 난 뒤에야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출국을 고작 일주일 남겨놓고서야 비로소 지나가는 사람들의 친절함에 화답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음을 끝내 인정해야만 했다. 속으로는 나를 성가시게 했던 이 나라를 미워했으며 그 마음이 미안해져서 떠날 때쯤에서야 조금 다정해진 것이었다. 조금이라도 덜 미안하기 위해 나는 내 앞에서 신발끈을 묶으며 길을 막고 있는 사내에게 천천히 하란 말을 건넸다. 신발끈을 다 묶은 사내가 고맙다며 싱긋 웃고 사라지자, 나는 같이 있던 K언니에게 참회의 심정으로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아아, 언니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정말 친절한 것 같아!

    

    어떤 의미에선 그건 정말 사실이었다. 들떠서 우산을 휘두르느라 빗방울이 이리저리 튀는 것도 모르는 동양인 두 사람에게 낯선 여자 한 명이 다가와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Maam. He just took your phone from your pocket.

    이보세요, 지금 그럴 때가 아니에요. 방금 저 남자가 당신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가져갔지 뭐예요? 깔깔.

    (내겐 이렇게 들렸다.)


    나는 천천히 뒤를 돌아 광장의 끝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남자도, 아이폰도,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고,  하늘에서 빗방울만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단전부터 이렇게 외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빌어먹을 나라야아아아아아-!’


    하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 나는 조용히 짐을 싸서 아디스를 떠나왔다. 나미비아로, 잠비아로, 짐바브웨로. 그리고 마지막 여행지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오직 여행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을 거란 심정으로. 그러니까 내가 매트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엉덩이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떠올린 기억은 바로 이곳, 남아공의 수도 중 하나인 케이프타운을 여행 중에 만난 H로부터 비롯된 기억이었다.



케이프타운 광장에서

 

   H는 케이프타운에 거주하는 교포 2세였다. 으레 교포가 풍기는 분위기가 그러하듯, 숨길 수 없는 한가로움과 자유분방함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자유로움이란 너무 견고해 보여서 길에서 스치는 누군가라도 잠시 그 자유에 도취되고 싶어 할 것만 같았다. 시원시원한 미소를 보자마자 입이 귀까지 닿도록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존재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감상은 ‘영어는 양 옆으로 당기는 발음이 많아서 입매가 발달한다던데 그게 사실일지도 모르겠어.’와 같은 생각으로 이어졌다. H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우리가 만나게 된 계기는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되었는데 약간의 설명을 덧붙여보자면 이러하다. 에티오피아에서는 비싼 값을 치르고 먹어야 했던 인도식 커리를 케이프타운에서는 단돈 오천 원 정도에 푸짐하게 포장할 수 있단 사실에 신이 나서 봉투를 빙빙 돌리며 걸어가던 내가, 우연히 건너편을 걸어가던 한국인 여행객들에게 포착되어 통성명을 하게 된 것이다. ‘혹시 한국분이세요?’ 혀가 유연해져야만 하는 발음들이 난무하는 도시에서 귀에 꽂히듯이 들리던 그 한 마디란. 누구든지 인도양을 건너게 되면 애국심이란 게 생기기 마련이고, 그걸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마주치면 함께 밥을 먹고 싶어 진다. 우리는 버거를 먹다가 해변에 갔고, 다음날 투어까지 동행하기로 결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로컬 프렌드’를 언급하며 동행을 도무지 거부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단 10분이라도 여행객으로 살아본 사람이라면 로컬이란 단어만큼 방랑자의 심금을 울리는 것이 없단 사실도 잘 알 것이다. 무엇이든 앞에 로컬을 붙이면 매력적이 된다. 로컬 프렌드를 만나, 로컬 비치에 가고, 로컬 푸드를 먹고, 로컬 걸음걸이로 숙소로 돌아오는 여행만큼 매력적인 것이 있을까?


펭귄 비치에서 만난 펭귄



    그렇게 졸지에 아무것도 모르는 두 명과, 무엇이든 좋다는 한 명까지 떠맡게 된 로컬프렌드 H는 가이드를 자청해 케이프타운의 구석구석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펭귄과 해변, 바위와 모래, 음악과 맥주 같은 것들을 만끽한 사람이 되어 도시를 누비고 다녔다, 머리카락이 엉킬 정도로 세찬 바람을 맞으면서. 나는 H가 이곳에서 나고 자랐다는 사실과 그에게는 형이 한 명 있다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바로 그 점이 우리가 헤프게 웃을 수 있던 이유였다. 우리는 기차 맞은편 좌석에 앉은 승객들처럼 얘기했다, 서로 알고 있는 사람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는 방식으로. 나는 그 사실이 무척이나 즐거웠다.


귀 끝에 닿을랑 말랑한 그 미소를 보아하니 H도 이 시간을 꽤나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칠칠맞은 여행객이 차에 흘리고 온 자켓을 다음날 가져다주러 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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