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부터 2020년 Reunion까지
올드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난 드라마 프렌즈를 아직까지 즐겨보는 편이다. 그 시대를 담은 각본과 연출이라 아무래도 사회적으로 다루어지는 이슈들이 현시대 받아들여지기엔 무리가 있지만(전 드라마 에피소드에 걸쳐있는 성차별적, 헤게모니적 남성성, 결혼 주의 등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들의 특성, 배우들, 뉴욕 배경, 그 문화권 안에서 이루어지는 온갖 인간적 드라마 요소들이 참 재미있었다.
<프렌즈>는 시트콤의 스탠더드 묘미가 잘 녹아들어 있는 데다 영어 공부도 되어 DVD까지 구입해 팬을 자처하는 등 한창때 시청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 가장 큰 재미는 드라마를 보면서 숨어있는 구식인 생각과 사고방식들을 찾아내는 재미다. 즉, 작가, 연출진과 감독 등 창작자가 시청자에게 전달하려는 의도, 즉 한 장면 장면에 담긴 수많은 메시지를 사고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여지는 대로 시청하는 것을 거부하고 ‘비판적 시청’을 하는 것이다.
저번 주에 며칠 만에 넷플릭스를 틀었는데, 마침 프렌즈가 뜨길래 랜덤 하게 아무 에피소드나 클릭했다. 마침 가장 좋아하는 시즌6에 시청이 멈춰있다. Season 6:Episode8 “The One with Ross’s Teeth”에선 챈들러와 모니카가 함께 살게 된 이후로 새 룸메이트를 구하던 조이가 재닌이라는 댄서를 만나게 되고 룸메이트로 살게 되는 내용을 그린다. 조이는 점차 꽃의 혼합물인 Potpurri 라던지, 사진작가의 작품 같은 장식품들 같은 그녀의 섬세하고 아늑한 취향을 공유하게 되는데, 늘 ‘마초’스러움을 외치던 모습과는 다른 결의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워하며 부정하지만, 동시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내가 프렌즈를 좋아하는 아주 많-은 예시 중 하나를 꼽자면 이런 장면이다.
늘 “결혼!”을 외치는 세 여자 친구들이나, 자신의 남성성을 훼손하지 않으려 늘 애쓰는 세 남자 친구들을 보면서, 그 시대 청년들은 지금의 청년들과는 어떤 사회와 문화를 살았던 걸까 생각해본다. 대체 왜 그렇게 다들 결혼을 했어야만 하는 걸까? 그들은 왜 ‘여성’스러운 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정의 내렸던 걸까? 그 시대 속 ‘여성’스러움과 ‘남성’스러움은 어떻게 구분되었을까? 현시대의 많은 구석과 비추어 생각해 보았을 때의 사회적 이슈의 합의점은 어떻게 다른 걸까 등등. 그때와 지금, 물론 남다른 우정을 나누고, 직장(일)과 연애(관계)에 목말라하는 부분적 면모는 변하지 않았겠지만.
‘프렌즈’는 오랫동안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하는 콘텐츠로 손꼽다가도 참 아쉬운 마음이 동시에 드는 그런 드라마 중 하나다. 이런 양면성을 가진 마음을 들여다보려 여러 공부를 하면서 느낀 점은, 이는 나 혼자만의 고찰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가령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벨 훅스의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의 ‘증오의 과거를 가르치기’ 챕터에선 에선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중매체는 메시지를 단순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양성을 포함한 대부분의 복잡한 학문적 문제들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정확하고 완전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포크너의 소설은 '8월의 빛'이다. 물론 이 소설에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적 순간들이 많다. 포크너는 그 시대의 남성이다. 그러나 초월적 시각으로 그가 살던 시대를 뛰어넘어 상상하는 사람이었다. 특정 역사적 시기의 작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통해 지배자 문화를 표현할 때, 우리는 그들이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웬델 베리는 내가 지적으로 성장하는 데 성공적으로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의 연구가 때때로 꽤 성차별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가부장적 사고로 인해 우리가 서로를 인정하고 친밀해지는 것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이 내가 그의 작품을 읽고 공부하면서부터 계속해서 배운 모든 것을 바꾸지 않는다.. 어떤 작가와 사상가의 작품을 사랑하고 거기에서 배울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형태로든 그 작품이 지배자의 사고방식과 결합되어 있으면 우리는 실망하게 된다. - 벨 훅스,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
살면서 어느 한 작품을 만나 사랑하고 그로부터 성장하는 일과, 개개인 즉 나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공부하고 닦아서 동시에 이를 비판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드라마 ‘프렌즈’를 보며 들었던 복잡한 감정들이 정리가 되게 해 주었던 부분이다. 내가 사랑하는 작품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 '선택'하는 일. 나의 지평을 넓히고, 또 역으로 나를 정의하는 일. 이런 일에 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는 지금, 프렌즈는 나를 무심하게 통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