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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플콩 Apr 14. 2022

남편에게


여보 시간이 흘러 또다시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2017년 늘 흔들리던 내가 오빠의 당당함 그리고 높은 자존감에 홀딱 넘어가

6개월 만에 결혼식장에 입장하며 펑펑 눈물을 쏟았던 날.


36살의 남자와 27살의 여자가 만나서 

지금은 41살, 32살이 되었네.

긴 시간이 흘렀다.


가끔 대화하다가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잖아

우리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다니.

서율이가 다섯 살이니까 햇수로 6년을 함께 했구나.


편지를 처음 쓰는 것 같아

크게 할 말이 없기도 했고 우리가 기념일에 연연하는 스타일도 아니잖아.

응, 물론 나는 선물마저 없으면 기분 상해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거지?


3년간은 둘이서 열심히도 살았었지.

신혼 초 어머님 댁에서 신혼살림 시작해 두 달 만에 분가하고

12평 빌라에서 25평 아파트로 이사하기까지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었는지 가끔 떠올려 보곤 해. 어휴


물론 지금도 우리 집은 없지만 기죽지 말자.

오빠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고, 나는 그런 오빠를 

지지해주는 사람이니까.

(사실 내가 그림을 그리고 오빠가 현실화시켜주는 편이지만ㅎㅎ)

함께 노력한 시간이 쌓이면 원하는 결과를 얻게 될 거야.


오빠 요즘 등이 많이 굽었더라.

흰머리도 예전보다 늘었고, 코 고는 소리는 하늘을 찢을듯해

많이 힘들지? 

새벽 다섯 시면 괴로운 신음 한 번 내지 않고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에 마음이 안 좋아.

수입이 없는 내가 초라해져 괜스레 집에서 부지런을 떨어.

이러다 보면 나도 무언가가 되어있겠지?


몇 주 전 술에 취해 들어와 회사에서 있었던 일을 늘어놓던 오빠에게

오빠랑 다른 사람들은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데 나는 고여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했던 날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지 마. 나는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너는 멈춘 적이 없어."

라는 말을 해줘서 내심 안심했던 것 같아. 고마워.


오빠가 부정적인 생각에 한없이 빠져들 때

나도 나의 애정을 가득 담은 위로를 전해주고 싶다.

언제쯤 어른이 되어서 짜증 내지 않고 이 마음을 전할 수 있을까?

흰머리가 늘어도 괜찮아, 어깨가 굽어도 괜찮아.

지금의 불안은 아무것도 아니야. 결국 해낼 거잖아.

힘들어할 때마다 말해줄게. 도움은 되지 않겠지만 위로는 될 수도 있으니까.


늘 지금처럼 이 정도의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며 살자.

너무 뜨겁기엔 시간이 많이 흘렀고 차가운 건 싫으니까.

딱 잘 버무려진 것 같아.


올해도 아무 생각 없다길래 오늘 계획은 내가 좀 생각해봤어.

귀찮지만 이제 일어나서 움직이자. 

나가서 오늘을 기념할 꽃을 한 다발 사줘.



-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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