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이라는 전시회가 막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하고 오스트리아의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한 대표 미술품들을 소개하는 전시회였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독일의 황제에게 충성하는 스위스의 작은 가문으로 시작해 유럽에서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한 제왕의 가문으로 1차 세계대전 때까지 존속했던 왕가입니다. 특히 오스트리아를 거의 600년 동안 지배했습니다. 혼인 전략으로 유럽 왕실을 연결하였고, 잦은 근친상간으로 생긴 집안 내력인 주걱턱은 아주 유명한 일화입니다. 맥주를 말하는 자리에서 웬 전시회 타령, 왕가 타령인가 하겠지만, 이 전시회를 다녀오고 나서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시절을 보낸 황제와 그와 관련된 맥주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황제를 뽑자면 카를 5세가 아닐까 합니다. 1500년에 태어난 카를 5세는 태어날 때부터 넓은 영토를 물려받았을 뿐만 아니라, 1558년 사망할 때까지 잦은 전쟁을 치러내며 제국을 지켜낸 인물입니다. 그는 할아버지인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1세로부터 독일, 오스트리아 등의 지역을 물려받았고, 부르고뉴의 공작이었던 할머니로부터 부르고뉴 지방을 물려받았습니다. 아버지 필리프 1세를 건너뛰고 직접 물려받은 것은 아버지가 일찍 죽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스페인 왕국의 유일한 상속녀였던 어머니 후아나로부터 스페인과 네덜란드, 이탈리아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았습니다. 물론 이 유산에는 남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이 넓은 제국에서 그를 부르는 이름도 제각각이었습니다. 가령, 카를 5세(Karl V)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신성로마제국에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스페인에서는 카를로스 1세(Carlos I)라고 하고 이탈리아에서는 카를로 4세(Carlo IV)입니다. 지금의 프랑스 영토인 부르고뉴에서는 샤를 2세(Charles II)라 불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카를 5세를 기념하는 벨기에 맥주가 있습니다. 벨기에의 작은 도시 메헬렌에 있는 헷 앙커(Het Anker) 양조장은 '구덴 카롤루스(Gouden Carolus)'라는 시리즈의 맥주를 생산합니다. 이 중 구덴 카롤루스 클래식은 구릿빛 외관에 거품이 조밀하고, 풋풋한 과일 향과 캐러멜 향 그리고 브라운 슈가의 달콤함과 견과류의 고소한 맛을 가진 맥주입니다. 벨기에 효모를 사용한 전형적인 벨기에 다크 스트롱 에일입니다. 카롤루스(Carolus)는 라틴어로 카를을 말합니다. 격식을 차리는 공식적인 자리나 문서에서는 카롤루스라는 라틴어를 주로 사용했을 것입니다. 구덴은 저지대 독일 지방에서는 '하우든'이라고 읽는데 영어로 ‘Gold’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구덴 카롤루스는 ‘카롤루스의 금화’라는 의미로 과거 벨기에 지역에서 유통되었던 영광스러운 황제의 통화를 말합니다.
맥주 이름에 그 지역의 유명한 인사나 성인의 이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슈나이더 양조장의 맥주 아벤티누스는 양조장이 있는 도시에서 활동한 성인 아벤티누스에서 따왔고, 벨기에 플랜더스 레드 에일인 듀체스 드 부르고뉴는 플랜더스 지방을 다스린 마지막 공작이라는 뜻입니다. 맥주 구덴 카롤루스는 양조장이 있는 벨기에 메헬렌 지방에서 유년기를 보낸 카를 5세와 관련이 있습니다.
카를 5세는 벨기에의 헨트(Ghent)에서 태어났습니다. 헨트는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의 하나로 이곳은 부르고뉴와 함께 아버지 필리프 1세가 그의 어머니 마리에게 상속받은 영지입니다. 카를이 이곳에서 태어났으니 당연히 필리프 1세가 결혼할 당시 카를의 어미니, 스페인 후아나 공주는 이곳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후아나의 어머니인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 1세가 사망하자 후아나는 스페인 왕위를 물려받기 위해 남편 필리프와 함께 스페인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카를을 포함한 3남매는 필리프의 여동생인 마르가레테의 도시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마르가레테가 살고 카를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 메헬렌입니다.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자식마저 버리고 간 부모라니 비정해 보이지만 그 이유는 바로 어머니 후아나의 정신병에 있었습니다. 후아나는 자식을 키울 수 없을 정도로 광기가 심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머니 후아나와 아버지 필리프의 별명을 알아두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각각의 별명은 '광녀 후아나'와 '미남공 필리프'입니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를 보면 그들의 별명에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장남 카를을 낳은 후 후아나는 신경증과 기절 등의 증세를 보였다. 그중 하나가 남편에 대한 한도 끝도 없는 애정이었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야 좋은 일이지만 필리프에 대한 후아나의 사랑은 아름답기보다는 끔찍한 집착에 가까웠다. 에스파냐 통치는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아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잘생긴 남편에 대한 끈질긴 애정 공세만 계속했다."
카를의 고모인 마르가레테는 카를을 친자식처럼 키웠습니다. 사실상 카를의 고모가 어머니인 셈이었습니다. 메헬렌에서 자라면서 형성된 인격과 능력이 장차 제국을 통치하는 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카를이 어린 시절을 보낸 도시 메헬렌에는 헷 앙커 양조장이 있습니다. 이 양조장은 1471년에 설립되었고 1904년에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설립 당시 이곳의 공작이었던 샤를 1세(용담공 샤를이라는 별명이 있으며 부르고뉴의 상속녀 마리의 아버지)는 이 양조장에 소비세와 세금을 감면하여 맥주 생산을 장려했다고 합니다. 구덴 카롤루스 맥주는 2차 세계 대전 이후 생산된 맥주입니다. 1517년, 성인이 된 카를은 제국을 통치하기 위해 이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리고 1519년 할아버지 막시밀리안 1세가 사망하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선출되었습니다. 아마 카를은 이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를 마시면서 자랐을지 모릅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위에 세계 대전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양조장이 그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맥주에 붙인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한편, 황제가 된 카를은 일생을 전쟁 속에서 보냈습니다. 프랑스와는 이탈리아 정복을 위해 싸웠습니다. 하필이면 이 시기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그들 역사상 가장 뛰어났던 지도자 쉴레이만 1세였습니다. 오스만과의 전쟁은 육지로나 바다에서나 꽤 고된 전쟁이었습니다. 또한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시작된 가톨릭과 개신교와의 종교전쟁도 이 시기였습니다.
카를의 말년은 쓸쓸했습니다. 힘이 빠진 카를은 제국을 나누어 스페인은 아들 펠리페 2세에게, 신성로마제국은 동생 페르디난트 1세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이때부터 합스부르크 가문은 스페인 합스부르크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로 나뉘게 됩니다. 이때가 1556년입니다. 카를은 남은 인생을 수도원에서 신경 쇠약과 심한 통풍으로 고생하면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맥주를 실컷 마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퇴위 2년 만에 말라리아로 사망하였습니다.
이 글은 마시자 매거진과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