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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Aug 22. 2023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들



기네스에 등록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 독일의 바이엔슈테파너(Weihenstephaner)


기네스 월드 레코드에 의하면, 현재까지 운영 중인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독일 바이에른에 있는 바이엔슈테판 수도원 맥주 양조장입니다. 기네스 월드 레코드는 바이엔슈테판이 1040년에 맥주 양조에 관한 라이선스를 부여받았고, 이후 계속 맥주를 제조하고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이엔슈테판 수도원은 (바이엔슈테판의 도펠복 맥주 이름이기도 한) 성인 코르비니안이 서기 725년 동료 사제 12명과 함께 바이에른의 도시 프라이징에 세운 베네딕트회 수도원입니다.


이 수도원에서 맥주와 관련된 유사한 기록이 있다면 768년에 홉을 재배했다는 기록입니다. 사실 유럽의 역사에서 476년에 서로마가 멸망하고 서기 1000년대까지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맥주의 역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도원을 중심으로 맥주 양조는 계속되었겠지만,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발전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바이엔슈테판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수도원 근처에 홉 정원이 있었고 이 정원의 소유자는 수확한 홉의 10%를 수도원에 바쳤다고 합니다. 이 홉이 맥주 양조에 쓰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분명 맥주를 만드는 데 쓰였을 것입니다. 바이엔슈테판에서 맥주를 양조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1040년입니다. 이 해 수도원장 아르놀트는 프라이징으로부터 맥주를 양조하고 팔 수 있는 라이선스를 얻었습니다. 이 기록을 바로 기네스 월드 레코드가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벨텐부르거 양조장의 사연은 안타깝습니다. 바이엔슈테판 수도원에서 불과 60km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 수도원 양조장은 1050년의 양조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가장 오래된 양조장의 타이틀을 두고 고작 10년의 차이로 왕좌를 빼앗겨 버린 셈입니다.


바이엔슈테파너의 맥주들


바이엔슈테판 수도원 양조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지만 그 과정은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독일의 다른 맥주 양조장과 마찬가지로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고 파괴되었다가 재건하는 것을 반복했습니다. 1083년부터 1463년 사이에 네 차례나 완전히 불타버렸고, 세 차례의 큰 전염병이 돌았으며, 여러 번의 기근, 대지진으로 양조장이 파괴되거나 도시의 인구가 대폭 줄었습니다. 1618년부터 1648년까지의 30년 전쟁 동안에 이곳에서 스웨덴과 프랑스가 전쟁을 치르기도 했으며, 훗날에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이 전쟁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수도원과 양조장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고 그때마다 새롭게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1803년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기독교의 가치와 제도가 무너지면서 수도원이 해산되었고, 훗날 수도원이 가진 모든 재산은 바이에른주 정부로 이전되었습니다. 비록 바이엔슈테판 수도원은 해체되었지만, 양조 전통마저 끊긴 것은 아닙니다. 수도원이 있던 자리에는 뮌헨 공과대학이 들어섰고, 대학 캠퍼스 안에 맥주 양조장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현재 바이엔슈테판 양조장은 바이에른주의 주립 양조장으로 관행에 따라 민간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전통에만 얽매이지 않고 최신 기술이 결합한 현대적 양조장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수도원의 역사만큼 오래된, 벨기에의 아플리젬(Affligem)


아플리젬(발음은 ‘아플리헴’에 가까움)은 벨기에의 애비 비어 인증 맥주 22개 중의 하나입니다. 애비 비어 인증 맥주는 트라피스트 인증 맥주와는 다릅니다. 그 기원은 벨기에 수도원에서 시작하였지만, 현재는 엄격한 트라피스트 맥주의 인증 조건에 부합하지 않아 트라피스트 맥주가 아닌 수도원 맥주(Abbey Beer)라고 불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수도원 밖에서 생산하고 있는 수도원 맥주이거나, 수도사가 직접 관리 감독하지 않는 수도원 맥주를 애비 비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트라피스트 맥주가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ITA)의 ATP라는 인증 마크로 보호되고 있는 것처럼, 벨기에 맥주 협회는 애비 비어를 보호하기 위해 에비 비어 인증 맥주(ErKend Belgisch Abdijbier, Certified Belgian Abbey Beer)라는 것을 만들었습니다. 왜냐하면 트라피스트 맥주의 도용이 심각해져 ATP라는 인증 제도가 생겨난 것처럼, 트라피스트 맥주가 아닌 수도원의 맥주를 모두 애비 비어라고 부르면서 애비 비어의 도용도 심각해졌기 때문입니다.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 아플리젬


아플리젬은 현재 상업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분명하게 수도원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아플리젬 수도원의 역사는 107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플르젬 수도원은 수도사가 아닌 기사들에 의해 설립되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에 충성을 바친 여섯 명의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 기사들은 전쟁이 끝나자, 정체성의 혼란에 빠졌습니다. 황제에게 계속 충성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신을 섬기며 살 것인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우선 무기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그러던 중 1074년 쾰른의 대주교가 아플리젬 지역의 언덕에 수도원의 건설을 허락했고, 나중에 이들 모두 수도원으로 돌아와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맥주를 양조한 것은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후라고 합니다. 그 후 몇 세기 동안 수도사들은 평화롭게 살면서 맥주를 계속 양조했습니다. 브루어리의 역사는 유럽의 다른 브루어리와 비슷합니다. 14세기에 수도원이 침략당해 크게 피해를 보아 재건하였고, 1580년에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재건하였습니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수도원의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고 문을 닫았다가 1885년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중에 또다시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수도원은 파괴되었지만, 양조가들의 양조 의지까지는 파괴할 수 없었나 봅니다. 전쟁이 끝난 후 1956년, 수도원에서 불과 몇 킬로 정도 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작은 마을에 아플리젬의 양조가들이 모여 브루어리를 만들고 맥주를 다시 생산했습니다. 이때 사용한 맥주 레시피는 1074년부터 여러 세대에 전승되어 온 것이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아플리젬은 2010년부터 하이네켄 인터내셔널에 인수되었고, 블론드, 두벨, 트리펠 세 종류의 맥주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유통되고 있는 맥주입니다.




기네스보다 깊은 역사, 아일랜드의 스미딕스(Smithwick’s)

아일랜드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기네스일까요? 어쩌면 맞고 어쩌면 틀린 대답일지도 모릅니다. 아서 기네스가 더블린의 리피 강이 흐르는 강변에 성 제임스 게이트 브루어리(St. James’s Gate Brewery)를 세운 것이 1759년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약 반세기 전인 1710년에 아일랜드에 처음으로 생긴 상업 양조장이 있었으니, 바로 스미딕스 양조장입니다. 스미딕스의 맥주로 유명한 것이 스미딕스와 킬케니라는 레드 에일입니다. 기네스 드래프트와 비슷한 아이리쉬 에일이면서 검붉은 뉘앙스의 외관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한때 한국의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접근성이 좋은 맥주였지만 현재는 찾아보기가 힘들어졌습니다. 맥주의 이름은 양조장의 설립자 존 스미딕스와 양조장이 있는 도시 킬케니에서 나왔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스미딕스는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는 고아였습니다. 그러다가 아일랜드 남동부의 도시 킬케니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에는 이탈리아의 성 프란시스코 수도원의 분원이 있었는데 수도원 내에서 마실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있었습니다. 스미딕스는 이곳에서 약 5년간 일했습니다. 그 짧은 기간에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5년 후에는 양조장이 있는 땅의 소유자가 되었고, 그곳에서 바로 자신의 이름을 딴 양조장을 만든 것입니다. 스미딕스는 대대로 가족이 운영하는 패밀리 양조장이었다가 1965년에 기네스에 인수되었습니다. 현재는 기네스의 모기업인 디아지오에 흡수되었고, 킬케니에서 생산되었던 스미딕스의 맥주는 성 제임스 게이트 브루어리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기네스보다 오래된 스미딕스




내 누군지 아니? 하얼빈의 맥주야!


중국의 경제를 이야기하자면 놀라운 점이 하나 있습니다. 중국 내의 수요만으로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경제 규모가 그렇습니다.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중국 맥주는 칭다오입니다. 그렇다면 칭다오가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중국 내수로만 판매하고 있는 설화 맥주(쉐화 맥주)가 중국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입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칭다오일까요? 이것도 그렇지가 않습니다. 칭다오는 1903년에 설립된 양조장이고, 이보다 앞서 20세기 시작과 함께 생긴 양조장이 있습니다. 1900년에 설립된 하얼빈 맥주입니다. 칭다오 맥주가 칭다오에 거주한 독일인을 위해 설립된 것처럼, 하얼빈 맥주는 하얼빈에 거주하고 있던 외국인 노동자를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하얼빈은 현재 중국 북동부의 최대 도시이지만 예전에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하얼빈의 이름도 ‘어망을 말리기 위한 작은 마을’이라는 뜻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19세기 말 러시아의 자금으로 탄생한 중국 동방 철도 회사가 설립되면서 하얼빈은 단번에 중국 최대의 도시로 부상했습니다. 러시아는 모스크바에서 시작하여 블라디보스토크에 이르는 길이 9,297km의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 노선을 확장하여 중국을 관통시키고, 하얼빈에서 베이징으로 남북으로 이어지는 철도를 연결하여 중국의 이권에 깊게 개입하려 했습니다. 이 건설 사업으로 인해 남부 러시아를 비롯한 우크라이나, 폴란드, 조지아 등의 동유럽 노동자들이 대거 하얼빈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얼빈 맥주는 중국인 내수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식습관에 맞는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즉 하얼빈 맥주는 유럽의 각축장이 된 중국의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하얼빈 맥주의 소유권이 중국 정부에 반환된 것이 1950년입니다. 하지만 2003년에 지분의 29.6%를 사브밀러에 넘겼고, 사브밀러가 다시 AB InBev에 인수되면서, 현재 하얼빈 맥주의 주인은 오비맥주와 같은 AB InBev입니다.




도리아에즈 비루 구다사이(일단 맥주 주세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삿포로 맥주요!


일본으로 크래프트 맥주 여행을 가게 된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양조장이 있습니다. 기린 맥주의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는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입니다. 도쿄에 맥주 양조장이 있고, 교토에는 펍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기업 맥주 회사인 기린 맥주가 결이 다른 크래프트 브루어리를 자회사로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스프링 밸리가 기린 맥주의 뿌리이며, 일본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맥주 양조장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두 개의 맥주 양조장이 생겨났습니다. 우선 1869년에 독일 출신의 양조자 비간트가 재팬 요코하마 브루어리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년 후에 노르웨이 출신의 미국인 윌리엄 코플랜드가 역시 요코하마의 외국인 거류지에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를 세웠습니다. 이 두 양조장은 결국 같은 도시에서 발생하는 판매 경쟁을 피하고자 합병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의 이름을 따 코플랜드 앤 비간토 상회로 만들었다가, 공동 경영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결국에는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한참 후인 1907년 이 양조장의 시설을 이어받아 설립한 것이 기린 맥주입니다. 스프링 밸리 브루어리는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이긴 하지만 일본인이 세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본 최초의 맥주 양조장이라는 타이틀은 다른 맥주 회사가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삿포로 맥주입니다.


일본 최초의 상업 양조장 삿포로 맥주


삿포로 맥주는 1876년 홋카이도에 세운 개척사 맥주양주소에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인이 세운 최초의 맥주 양조장입니다. 당시의 홋카이도는 개발이 덜 된 황무지나 다름없었습니다. 홋카이도는 이곳에 살던 원주민인 아이누족이 부르는 이름이었습니다. 1869년 메이지 신정부는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견제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홋카이도 개척사를 설치하고, 일본인을 강제로 혹은 자발적으로 이주시켰으며, 아이누족을 억압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 신사업 육성을 위해 30종 이상의 관영 공장을 설치했는데 그중 하나가 맥주 양조장입니다. 홋카이도에 맥주 양조장을 세운 이유는 전체적인 기후와 풍토가 유럽의 맥주 벨트(아일랜드, 영국, 독일, 벨기에 등 유럽의 맥주 생산 국가가 위치한 지역을 일컫는 말)와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맥아 보리를 자생적으로 재배할 수 있어 원료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고, 맥주를 저온에서 발효시키기 위해 필요한 얼음이 충분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77년 홋카이도의 북진 깃발에 있는 붉은 별을 레이블에 넣은 독일식 맥주를 생산했는데. 이것이 바로 일본인이 최초로 만든 맥주 삿포로 라거입니다. 그 밖의 일본의 맥주 중 아사히 맥주는 1889년에 오사카 맥주회사라는 이름으로 오사카에 설립되었으며, 오리온 맥주와 산토리 맥주는 각각 1957년과 196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일본 맥주에서 나온 한국 최초의 맥주 양조장은?

2023년인 올해는 한국에 맥주 양조장이 생긴 지 9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1933년, 하이트맥주의 전신인 대일본맥주와 오비맥주의 전신인 쇼와기린맥주가 공교롭게 같은 해에 생겼습니다. 한국 맥주의 계보를 살펴보면 한국 맥주의 양대 회사가 모두 일본에서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대일본맥주(일본) – 조선맥주(1933) – 조선맥주(1948, 상표는 크라운맥주) – 하이트맥주(1998) – 하이트진로(2005)

기린맥주(일본) – 쇼와기린맥주(1933) – 동양맥주(1948, 상표는 오비맥주) – 오비맥주(1995) – 벨기에 인터브루와 합작(1998) – AB InBev로 주주 변경(2014)


공식적으로 한국에 맥주가 들어온 시기는 1876년으로, 강화도 조약으로 인천의 항구가 열리기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일본으로부터 삿포로 맥주가 처음으로 수입되었고, 다음으로 에비스 맥주, 기린 맥주가 연달아 수입되었습니다. 1910년에는 서울에 일본의 맥주 출장소가 생겼고 이때부터 맥주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1920년 대의 기록에 의하면, 수입 주류 중에서 맥주의 비중이 가장 높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맥주는 여전히 일부 부유층의 술로 고가였습니다. 맥주 한 병의 값이 4~5일 치 식비와 맞먹었다고 하니 확실히 대중의 술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본은 우리 땅에서 그들의 자본과 기술로 맥주를 직접 생산하기로 했습니다. 1933년에 삿포로 맥주, 아사히 맥주, 에비스 맥주의 합병 회사인 대일본맥주가 일본과 조선의 7:3의 자본 비율로 영등포에 조선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것이 한국에 최초로 설립된 맥주 양조장입니다. 또한 같은 해 12월에는 일본의 기린맥주가 쇼와기린맥주라는 이름으로 역시 영등포에 맥주 양조장을 설립했습니다. 이 두 개의 맥주 양조장이 각각 현재의 하이트맥주와 오비맥주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오비맥주의 조상인 기린맥주의 수입을 하이트진로가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비맥주는 모기업 AB InBev와 협력관계에 있는 산토리 맥주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매일유업은 삿포로 맥주를, 롯데아사히는 아사히 맥주를 수입하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1698년에 설립된 세퍼드님(Shepherd Neame) 브루어리이고, 미국에서는 잉링(Yuengling) 브루어리가 1829년에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들 브루어리의 맥주는 한국에서 유통되지 않아 깊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잉링 브루어리에 관해서라면 맥주 에세이 <맥주 한 잔 할까요>에 ‘미국인이 만들지 않은 미국 최초 양조장 맥주’라는 글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번 기사에 소개한 가장 오래된 양조장들의 맥주는 모두 한국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맥주의 역사를 통해 맥주의 깊은 맛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은 마시자 매거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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