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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좋은 ㅎㅏ루 Oct 27. 2023

소문나지 않은 책이 들려주는 소문난 맥주 이야기



<창업의 시대, 브루독 이야기>


브루독의 창업자 제임스 와트가 지은 이 책은 한국에서 2016년에 발간되었습니다. 2016년이면 우리나라에서 2세대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들이 대거 등장한 시기입니다. 그 대표적인 양조장이 어메이징 브루잉인데, 책 뒤에 어메이징 브루잉 대표의 추천사도 들어 있습니다.


브루독은 2007년 스코틀랜드에서 제임스 와트와 마틴 디키 그리고 개 한 마리가 시작한 회사입니다. 맥주의 나라 영국에서도 브루독이 창업할 즈음엔 크래프트 맥주가 없었다고 합니다. 대량 생산 라거나 지루한 캐스크 에일이 전부였죠. 2007년 브루독은 스코틀랜드 북동부의 음울하고 외진 산업단지에 있는 창고에 자리를 잡고 양조를 시작합니다. 영국의 맥주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고 음주 문화를 완전히 바꾼다는 것이 그들의 소명입니다. 제임스와 마틴은 언제나 맥주에 대한 열정을 품고 있었고, 2004년부터 열성적으로 홈브루잉에 나섭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맥주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만나 크래프트 맥주 사업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이들이 만든 맥주를 마셔본 마이클 잭슨이 당장 일을 그만두고 맥주 사업을 하라고 조언했거든요.


브루독하면 ‘똘끼’가 충만한 회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하 30도의 추위에서 벌거벗은 채 영상을 찍지를 않나, 차에 치여 죽은 다람쥐로 맥주병을 감싸지를 않나, 심지어 런던 상공에서 박제한 고양이를 낙하하기도 합니다. 브루독은 똘끼 즉 광기의 위험성까지도 일부러 드러내는 회사입니다.

급진적인 펑크 밴드를 닮은 브루독의 펑크 IPA


브루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맥주는 ‘펑크 IPA’입니다. ‘펑크’라는 단어가 그들의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브루독은 급진적인 펑크 밴드처럼 그들의 DIY 정신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은 원조 펑크들이 단순한 소비자가 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능력을 발휘하여 고유한 하위문화를 구축하는 것을 말합니다. 기성 음반 산업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음반을 녹음하고 제작, 유통했던 정신이 바로 펑크입니다. 브루독은 양조장을 세울 때 기존 맥주 시장의 지분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 다른 사람들이 브루독이 가진 규칙대로 게임을 하게 만들었죠.


브루독이 잘 나가자 다른 양조장들의 미움을 사기도 합니다. 그 예로 매출과 성장에 관한 수치를 조작했다는 소문이 떠돈 사건입니다. 이니스 앤드 건(Innis & Guns)의 회장인 샤프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브루독이 회계를 조작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들은 양조업계 전반에서 웃음거리로 여겨집니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회사죠”


이 책은 단순한 맥주 책이 아닙니다. 경영의 지침서입니다. 이 책의 말투는 분명하고 거셉니다. 그리고 자기 자부심으로 가득합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시장에서 틈새를 찾으라고 말한다면 꺼지라고 해라”, “멍청이들이나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을 걱정하느라 귀중한 시간과 활력을 낭비한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브루독이 변화시킨 것들은 곱씹어 볼 만합니다. 몇 가지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브루독은 대기업 맥주를 부수는 영상을 제작하고, 심지어 대기업 맥주 자진신고 기간을 열어, 대기업 맥주를 크래프트 맥주로 바꾸어 주는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브루독에게 있어 모든 것이 마케팅입니다. 비어 코스터 하나에도 마케팅에 활용한 예는 흥미롭습니다. 비어 코스터는 그냥 로고만 찍혀 있거나 브랜드 슬로건 정도가 찍혀 있는 것이 대부분인데, 브루독은 비어 코스터를 브루독의 정신을 알리는 데 활용합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소셜 미디어에서 공유되면서 브루독의 인지도까지 높였습니다. 브루독은 3분의 2 파인트 잔 시위를 벌였습니다. 영국은 300년 묵은 법에 펍에서는 파인트 잔의 크기로 맥주를 제공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브루독은 3분의 2 파인트 잔 크기가 맥주의 맛을 전달하는데 가장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브루독은 난쟁이들을 동원해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의 시위는 성공했고 결국 3세기 만에 크래프트 맥주의 용량 기준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이 책은 7개의 섹션으로 되어 있는데 섹션마다 길이가 들쭉날쭉한 것이 특이합니다. 어떠한 섹션은 2페이지 만에 끝나기도 합니다. 책도 그들의 맥주를 닮았습니다. 하지만 브루독은 논란이 많은 회사이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일본의 욱일승천기를 라벨에 내세운 맥주로 논란이 있었습니다. 유독 국내 팬들에게 인기를 잃은 이유입니다. 책을 읽을 때 이러한 배경을 감안하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사장님 아무도 우리 제품을 받아주지 않습니다>


제목만 보고 이 책이 어떠한 책인지를 짐작조차 하기 힘들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제품은 맥주입니다. 이 책은 실제 맥주를 아무도 받아 주지 않을 만큼 지옥에 떨어졌던 아사히맥주의 좌절과 재건을 이야기합니다.

오사카맥주가 대일본맥주에서 분할되어 아사히맥주가 되었던 1949년의 점유율은 36.3%로, 당시 아사히맥주는 기린맥주에 조금 앞서 있었고, 삿포로맥주에는 조금 뒤진 정도였습니다. 대일본맥주는 지금의 아사히와 삿포로를 모두 가진 맥주회사로 점유율이 7~80%에 육박하는 거대 기업이었고, 나머지 점유율은 기린맥주의 차지였습니다. 대일본맥주가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서쪽 지방의 아사히맥주, 도쿄를 중심으로 한 동쪽 지방의 삿포로맥주로 분할되었을 때, 이 둘은 형제와 같은 관계로 사이좋게 맥주 업계를 이끌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둘의 협의 이혼은 시작과 함께 파탄이 나고 맙니다.


한편, 아사히맥주가 업소용 맥주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태에서 기린맥주는 어쩔 수 없이 가정용 맥주 시장을 노립니다. 6~70년대 냉장고가 일반 가정까지 보급되면서 가정에서 맥주 수요가 증가하자, 미쓰비시 재벌의 조직력을 앞세운 기린맥주는 슬금슬금 점유율을 높입니다. 후발 주자 산토리가 맥주 업계에 진출했을 때 아사히는 오사카 지방의 판매망을 허락해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시련을 아사히맥주는 극복하지 못했고, 80년대 중반까지 점유율은 계속해서 바닥으로 향합니다.


9.6%, 이것은 아사히의 점유율이 가장 낮게 떨어졌던 1985년의 수치입니다. 이때 산토리는 9.2%, 기린은 61.3% 삿포로는 19.8%였습니다. 산토리가 같은 9%대라고 해도 사실상 꼴찌나 다름없습니다. 그렇다고 아사히가 마냥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회심의 역작 아사히 골드를 발매하여 호평을 얻었으나 생산량 부족 사태로 좌절하고 맙니다. 1958년에는 업계 최초로 맥주를 캔으로 발매했으며, 1971년에 알루미늄 캔을, 1977년에는 미니 술통을 처음으로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사히의 추락에는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결국에는 가지고 있는 부동산을 야금야금 팔아 부족한 자금을 충당해야 했고, 팔다 팔다 못해 도쿄의 상징이었던 아사쿠사 번화가의 아즈마바시 공장까지 팔게 됩니다.

회사를 지옥에서 끌어 올린 아사히 슈퍼 드라이


아사히가 변화를 위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은 1983년입니다. 이 해 경영 이념을 정한 뒤 CI와 QC에 의한 사내 개혁이 실시됩니다. 그 과정이 순조롭지만은 않았지만 결국 1986년 1월 21일 신문에 전면적으로 새로운 아사히 광고를 냅니다. 현재와 같은 Asahi 라는 글씨체의 CI를 발표합니다. 그리고 라벨이 바뀌었으니, 그에 맞는 새로운 맥주도 개발합니다. 아사히를 지옥에서 건져 올린 아사히 슈퍼 드라이는 1987년 3월 17일에 출시됩니다.


9.6%까지 떨어졌던 아사히의 점유율은 1988년 20.7%로 삿포로(19.9%)를 젖히고 업계 1위 자리를 탈환합니다. 실로 25년 만의 일입니다. 맥주 시장에서 점유율은 1~2%의 변동도 커다란 화제가 되는데, 3년 만에 두 배 이상 올린 건 기적에 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아사히는 어려울 때 팔았던 아즈마바시 공장을 되사들이고, 아사히의 맥주홀이 있던 그 자리에 아사히 맥주 빌딩을 세워 그들의 성공을 알립니다.


이 책은 한편의 기업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롭습니다. 이 책이 발매된 1999년은 아사히맥주가 기린맥주를 제치고 이제 막 업계 선두로 뛰어오른 해입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호들갑 떨지 않습니다. 성공의 신화보다는 좌절의 과정을 덤덤하게 말합니다. 저자 서문에 밝힌 것처럼 암담한 밑바닥 시절에 진흙탕에 나뒹굴면서도 재기의 길을 찾아내고자 했던 노력을 말합니다.


이 책은 구하기가 어려운 게 단점입니다. 오래전에 절판되었고, 중고 서점을 뒤져봐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저는 책의 소문을 듣고 세종국립도서관을 뒤져봤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지역 도서관에서 겨우 찾았습니다.


<착한 맥주의 위대한 성공, 기네스>


세계 최정상에 오른 맥주 브랜드 기네스의 경영철학은 무엇일까요? 세계 어디를 가도 기네스 맥주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세계 어디를 가도 기네스 맥주를 살 수 있을 만큼 기네스는 세계적인 브랜드입니다. 그런데 기네스는 왜 유명한 것일까요? 이 책은 기네스의 설립자인 아서 기네스와 그의 후손에 대한 비공식적인 이야기입니다. 기네스가 어떻게 유명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이야기합니다.


위스키의 나라 아일랜드이지만 아서 기네스가 태어난 1724년은 맥주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이 대단했던 때입니다. 위스키를 즐겨 마시긴 했지만, 맥주가 맛도 좋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는 음료라는 인식에 맥주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모든 가정집, 선술집, 대저택에서 맥주를 양조했기 때문에 집마다 맥주 레시피 하나쯤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네스의 아버지인 리처드 기네스도 맛 좋은 맥주를 만드는 양조가로 유명했습니다. 프라이스 주교의 집에서 일했던 리처드는 품질이 뛰어난 흑맥주를 직접 양조했는데, 그의 맥주를 마시러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람들은 맥주에 찬사를 보내며 그의 양조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리처드는 양조 비법을 일절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리처드는 아들 아서 기네스에게만 양조 기술을 전수합니다. 리처드가 아서에게 양조 기술을 전수한 이후로 여러 대에 걸쳐 양조 기술과 회사의 경영 철학이 전수됩니다. 이것이 기네스 가의 전통입니다.


기네스는 태어날 때부터 맥아 냄새를 맡고 자랐을 겁니다. 프라이스 주교는 아서의 대부가 되는 것을 자처하며 아서의 교육과 훈련을 아낌없이 지원했습니다. 아서는 사업을 운영하는 방법, 계약하는 방법, 문서를 관리하는 방법 등 맥주 양조업을 꾸려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받습니다. 프라이스 주교가 세상을 떠날 때 그동안 충실히 따라준 아서에게 100파운드의 유산을 물려줍니다. 아서는 서른을 바라보는 때에 더블린으로 가는 길목에 레익슬립(Leixlip)이라는 조그마한 양조장을 매입합니다. 이 시기 아서는 기본적인 맥주 제조 기술을 익히고, 주요 맥주 비법을 정립합니다. 이를 발판 삼아 1759년 더블린에서 문을 닫기 일보 직전의 성 제임스 게이트 양조장을 인수해 기네스를 설립합니다. 이때 계약금 100파운드에 매년 45파운드를 지급하는 것 외에는 아무 조건도 없었던 계약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 계약 기간은 무려 9천 년간입니다.

세계 최정상에 오른 맥주 브랜드 기네스


이 책에서 기네스의 이야기는 가문을 이어서 계속됩니다. 맥주 양조장 기네스는 그의 장남 아서 기네스 2세가 물려받고, 기네스 2세는 차남 벤자민 기네스에게 물려줍니다. 이 가문의 이야기는 20세기까지 계속되며, 기네스가 그랜드 메트로폴리탄과 합병하여 디아지오라는 세계 최고 규모의 주류 회사를 설립하면서 끝을 맺습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기네스가 얼마나 사회에 공헌했으며, 착한 기업으로 성장해 나갔느냐입니다.


맥주 회사나 맥주 가문에 대해서 이렇게 전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은 한국에서 거의 처음이자 유일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초점은 맥주를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맥주를 좋아하든, 맥주에 대해 문외한이든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맥주처럼 인생의 쓴맛과 단맛이 모두 느껴지는 이야기입니다.


<드림 빅>


2008년 5월 23일 오후 2시 29분 파이낸셜 타임스 알파빌 블로그에 글로벌 맥주 회사 인베브가 미국의 맥주 회사 앤호이저-부시를 460억 달러에 상당하는 금액으로 매입할 것이라는 비밀이 전 세계에 폭로됩니다. 이 블로그에서는 회사를 매입할 자금의 조달 방법, 거래를 계획한 자들의 이름, 오거스트 부시 4세에게 처음 접근했던 시기 등이 상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이 거래를 주도한 것은 조르지 파울루 레만, 마르셀 텔레스, 베투 시쿠피라, 이 세 사람입니다. 이들은 브라질에서 가란치아라는 작은 증권 회사를 설립하고 브라질 역사상 가장 큰 회사로 만든 인물입니다. 그들이 이제는 미국에서 가장 큰 맥주 회사를 인수하려고 합니다.


가란치아는 1971년 레만이 설립한 투자 은행입니다. 텔레스와 시쿠피라는 설립한 첫해에 고용된 중산층 출신의 직원이었고, 능력을 인정받아 마침내 레만의 핵심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시쿠피라는 가란치아가 처음으로 경영권을 인수한 소매 체인점 로자스 아메리카나스의 지휘를 맡았었고, 텔레스는 위기에 처한 브라질의 맥주 회사 브라마를 인수하여 국제적인 기준의 기업으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들은 농담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가 앤호이저-부시를 사들일 것”이라고. 그것은 한낱 꿈이었지만 앞날을 미리 그려보면 꿈을 성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업은 맥주 회사를 차례대로 차근차근 인수합니다. 1989년에 처음으로 맥주회사 브라마를 매입했고, 맥주 회사로 경험을 쌓고 10년이 지난 1999년에는 상파울루 맥주 회사 안타르치카를 매입하여 암베브를 설립합니다. 2004년에는 벨기에의 인터브루와 합병하여 세계적인 맥주 회사로 만들더니, 이제는 미국의 자존심이자 상징인 앤호이저-부시마저 매입하려 하는 것입니다.


앤호이저-부시는 1852년 독일 이민자들이 미시시피 강둑에 있는 세인트루이스에 설립한 맥주 양조장입니다. 원래 이름은 바바리안 브루어리이었습니다. 8년 뒤 회사는 비누 공장을 운영해 재산을 모았던 지역 사업가 에버하르트 앤호이저(Everhard Anheuser)에게 매각되었고, 이후 앤호이저의 사위인 애돌퍼스 부시(Adolphus Busch)가 참여하면서 급성장합니다. 핵심 맥주인 버드와이저는 1896년에 출시되었습니다. 이후 부시가 장인이 보유한 주식의 50퍼센트를 매입하면서 회사명을 앤호이저-부시로 바꿉니다. 후손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가족 소유의 기업으로 운영했습니다. 이 가문은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몇 시간 안에 버드와이저 다섯 방울을 먹이는 전통이 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태어날 때부터 맥주와 연을 맺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영 방식에는 흔히 보이는 위대한 전성기 뒤에 쇠퇴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앤호이저-부시는 세기말에 미국에서의 시장 점유율이 60퍼센트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인베브와 같은 경쟁 회사들이 세계로 사업을 확장할 때 오로지 미국 사업에만 집중하면서 국제 무대에 진출할 기회를 흘려보냈습니다. 게다가 풍요로운 생활에 익숙해진 상속자들과 경영진들은 회사를 방만하게 운영했고, 맥주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업에 손을 데면서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2006년 경영진들은 앤호이저-부시를 인베브의 미국 공식 수입업체로 선정했는데, 이것은 인베브가 앤호이저-부시의 운영 방식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베브는 이 기회를 이용해 미국인의 상징적인 브랜드 버드와이저를 정복할 전략을 세웠지만, 상속자 부시 4세와 경영자들은 이러한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베브가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영리한 레만은 침묵을 지키며 앤호이저-부시의 속을 태우다가, 새 회사의 본사를 세인트루이스에 그대로 남겨두겠다는 것과 회사명을 AB 인베브로 바꾸어 미국식 이름을 유지하겠다면서 슬며시 매입 제안서를 들이밉니다. 레만은 앤호이저-부시의 전통을 존중해야만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한편, 부시 4세는 인베브가 인수 금액 460만 달러의 거금을 대출받기는 힘들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부시 4세는 자기네 회사를 브라질 사람들에게 넘길 마음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부시 4세의 앤호이저-부시의 주식은 고작 4%에 불과(워렌 버핏의 5%보다도 작은 수준)해 이사회를 움직일 만한 힘이 없었습니다. 이 거래를 반대하는 여론은 부시 4세의 편이었습니다. 거래를 반대하는 인터넷 사이트도 등장했고,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앤호이저-부시가 외국 회사에 넘어가면 수치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부시 4세의 아버지 오거스트 부시 3세는 회사를 매각하는 편이 낫다고 보았고, 버핏은 이미 보유한 주식의 일부를 매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다급해진 부시 4세는 레만에게 전화를 걸어 대표단끼리 만나자고 제안했고, 이 만남에서 레만은 최상의 조건을 제시합니다. 520억 달러 규모의 매입 금액을 제시한 것입니다.


레만과 부시 4세가 매입에 합의해도 매입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양쪽 주주들과 규제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했고, 특히 미국인들의 반대를 설득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2008년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인해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확보하는 데에 크게 애를 먹었습니다. 결국, 10여 개의 은행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대출을 받고, 레만을 비롯한 설립자들의 개인 자산까지 털어, 파이낸셜 타임스가 비밀을 폭로한 지 6개월이 지나서 매입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브라질의 맥주 브라마를 인수했던 그들이 20년이 지나 세계 최대 규모의 맥주 회사의 주요 주주가 되는 순간입니다.

미국인의 자존심이자 아이콘 버드와이저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드림 빅>이라는 책의 첫 번째 장, <앤호이저-부시의 ‘침입자들’>의 내용입니다. 이 책은 브라질의 작은 금융 회사에서 시작하여 미국의 상징적인 브랜드인 버드와이저, 버거킹, 하인즈의 소유자가 되기까지의 막전막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 회사의 성공 비결은 결국 꿈의 크기라고 말합니다. 그 원대한 꿈 중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이 바로 맥주 사업입니다. 당신이 주변에서 마시는 맥주들을 둘러보세요. 버드와이저, 호가든, 스텔라 아르투아, 레페, 코로나, 벡스, 하얼빈, 구스 아일랜드, 그리고 카스 등 알만한 맥주 중에는 AB 인베브의 맥주들로 가득합니다. 이 모든 것이 브라질의 맥주 회사인 브라마를 인수한 인베브가 1989년부터 미국의 상징 앤호이저-부시를 인수한 2008년까지 20년 동안에 일구어낸 성과입니다. 이 과정이 이 책의 단연 압권인 부분입니다. 맥주 이야기만 읽어 볼 요량으로 책을 펼쳐도, 그 꿈에 이끌려 저절로 책을 모두 읽게 됩니다.                            



이 글은 마시자 매거진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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