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을 읽고서.
'시' 에 대해 잘 알지 못해도 괜찮은,
'시' 를 통해 삶의 기준을 찾아가는 책.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기준이 흔들리면서 혼란스러웠던 우리에게
또렷한 이정표가 되어줄
14번의 시강의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지음-
밥벌이. 돌봄. 건강. 배움.
사랑. 관계. 그리고 소유.
바쁜 일상이라는 터널을 지나와 잠시 쉬어갈 틈이 생겼다면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하고 고민해 보았던 주제들인 것 같다. 나만 힘든 것 같고 나만 일이 잘 안 풀리는 것 같을 때 내 인생을 나의 힘으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고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시'는 매력있다 느꼈지만 '시'는 멀고 부담스러운 형태의 글이었다. 정보와 지식, 경험이 담긴 글 또는 그리 무겁지 않은 에세이와 칼럼을 주로 읽는 나에게 '시'는 도전해보고 싶은 '소설'의 영역보다도 더 멀리에 놓여 있었다. 고등학교 이과생을 지나 공대생, 그리고 늘 노트북 모니터와 씨름했던 개발자 직장생활까지 모두 더하면 20년도 훌쩍 넘는 시간이 나에게 있었다. 그 시간만큼 나는 역사, 인문학, 문학과 거리가 멀었다. 전공서적과 업무에 필요한 IT 서적, 일부 베스트셀러 말고는 대체로 모든 책과 멀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럼에도 '시'가 가진 힘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블로그와 SNS를 통해 인연이 이어진 마음의 결이 고운 몇몇 분들이 '시'를 사랑했고 종종 그 사랑하는 시를 나누어주었기 때문이다. 나이와 상관없이 은은하게 미소를 띤 그 고운 얼굴들은 다각도로 해석하며 사람을 이해하고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시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종종 생각했다. 포근하게 날 안아주는 부드러운 눈빛은 일을 할 때면 원인과 결과, 대책 수립과 책임 그리고 일정을 다급하게 이야기하는 개발팀 사람들의 눈빛과는 달라도 너무도 달랐다.
내가 SNS에 매력을 느낀 것도 보드라우면서도 때때로 반짝이는 그 눈빛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닮아가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에게 문학은, 특히 시는 다가가기 쉽지 않은 장르였다. 시는 앞뒤가 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언어유희 같기도 한 언어의 조각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파편은 개발자인 나에게는 해석할 수 없는 낯선 함수이자 해석할 수 없는 코드로 느껴졌기에 아름다움을 감상할 틈 없이 해석할 수 없는 괴로움이 먼저였던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정재찬교수님의 다른 책인 '시를 잊은 그대에게'를 사서 책장에 꽂아둔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나도 시와 친해질 수 있을까. 해석하기 위해 인과관계와 숨겨진 의도를 알아내기 위해 코드를 분석하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냥 마음에 와닿는 느낌으로 시를 읽을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시를 잊은 그대에게'는 사두고 몇 페이지 보지 못했고 책장 한 칸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이 책을 대하며 두려움도 앞섰지만 다행히도 이 책은 푹 빠져들어 읽을 수 있었다. 시 이전에 우리가, 내가 살면서 부딪히곤 했던 인생의 고민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SSNS 자기계발 홍수 속에서 나를 지키며 성장하NS 자기계발 홍수 속에서 나를 지키며 성장하
책 속에 실린 많은 시 중에서도 방탄소년단, BTS의 <Intro: Persona> 노래 가사와 함께 읊어주었던 정현종 시인의 '그대는 별인가 -시인을 위하여' 이 시가 유독 마음에 남는다. 그 이유는 첫번째로 BTS의 노래가사를 말할 때 정재찬 교수는 가사를 지은 RM을 시인으로, 노래가사를 시로 설명하는 모습이었다. 국어국문학과 교수이면서 '시'에 대해 엄격한 경계를 긋지 않은 유연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는 (고작) 브런치작가이면서 "작가"라는 이름을 스스로에게 붙인 내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나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작 블로그와 브런치에 뜨문뜨문 글을 쓰는 것으로 작가라고 말을 해도 될까- 과거의 나를 보며 나는 이름 앞에서 작아질 때가 많았다.
BTS 노래 가사를 풀어서 이야기해주는 책 속 내용은 이러했다.
힘들어도 괜찮은 척하고 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반복되면 견디기 힘듭니다. 남들의 기준과 기대에 맞춰서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나와 타인들이 생각하는 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여러 역할을 수행하는 내 안의 자아들이 대충 잘 굴러갈 때에는 몰라도, 진정한 자아의 정체성을 찾는 여정에서는 자못 심각해질 수도 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해가거나 슬쩍슬쩍 넘어가는 질문이 있습니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
그에 관해 본격적으로 질문을 던지며 사색하는 노래 한 곡을 소개하겠습니다. 방탄소년단의 <Intro: Persona> (Hiss noise-RM-Pdogg 작사, 작곡) 입니다. 이 한편의 시를 저는 이렇게 읽었습니다.
책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 6장 관계-인사이더 / 264p
노래의 가사를 음미하고 시를 읽듯 읽어 내려간 그 마음이 느껴져 괜히 내 마음이 뭉클해졌다. 책에서 소개한 BTS 노래 가사 일부를 다시 적어본다. 책에는 이보다 더 많은 가사와 가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나는 누구인가 평생 물어온 질문
아마 평생 정답은 찾지 못할 그 질문
나란 놈을 고작 말 몇 개로 답할 수 있었다면
신께서 그 수많은 아름다움을 다 만드시진 않았겠지
/
My name is R
내가 기억하고 사람들이 아는 나
날 토로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나
Yeah 난 날 속여왔을지도 뻥쳐왔을지도
But 부끄럽지 않아 이게 내 영혼의 지도
Dear myself 넌 절대로 너의 온도를 잃지 마
따뜻히도 차갑게도 될 필요 없으니까
가끔은 위선적이어도 위악적이어도
이게 내가 걸어두고 싶은 내 방향의 척도
내가 되고 싶은 나, 사람들이 원하는 나
니가 사랑하는 나, 또 내가 빚어내는 나
웃고 있는 나, 가끔은 울고 있는 나
지금도 매분 매순간 살아 숨쉬는 Persona
가면 안의 진짜 나는 가면을 쓴 나에게 계속해서 묻는다. 너는 누구냐고. 그렇지만 가면을 쓴 나를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당당히 말한다. 그리고 그 가면이 영혼의 지도이자 방향의 척도라고 말하고 있다.
정재찬 교수는 BTS의 이 시에 회답하며 '그대는 별인가' 라는 시로 [거짓을 사랑하는 법] 을 안내해준다. 이런 시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우리가 하는 고민 안내서가 시로 하나 세상에 존재하고 있던 셈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아마도 평생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인생, 삶의 철학에 관한 시 큐레이션인 셈이었다. 시에 대한 소개 뿐 아니라 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서 설명까지 더해주는 자상함이 책 속에 가득했다.
'그대는 별인가' 시의 원문은 이러하다.
하늘의 별처럼 많은 별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은 모래
반짝이는 건 반짝이는 거고
고독한 건 고독한 거지만
그대 별의 반짝이는 살 속으로 걸어들어가
"나는 반짝인다"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지
... ...
자기의 거짓을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지
자기의 거짓이 안 보일 때까지.
/ 그대는 별인가 - 시인을 위하여, 정현종 시인의 시
시와 함께 시의 내용을 풀어서 안내해주는 책 속 문장은 더없이 따뜻하였다.
내가 밤이 되고 모래가 되고 바람이 될 때까지 자기의 거짓을 사랑하는 법을 연습해야 합니다. 지나친 정직은 성장에 방해가 됩니다. 지금 현재의 '흠'과 '서투름'에만 정직하게 절망한다면, 나는 모래가 될 수 없고 별이 될 수 없습니다. 진짜 정직한 것은 현재의 내가 꿈꾸는 미래의 나까지, 나의 수많은 분신, 나의 수많은 페르소나까지 나 자신이라고 믿으며 사랑하는 겁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빌려, 자기 발전을 꿈꾸는 우리 보통 사람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우리에게도 내 영혼의 지도, 방향의 척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사는 만큼 살고 싶어하는 욕망이 나쁜 건 아닙니다. 인간은 본래 남을 모방하며 성장하는 존재입니다. 좋게 말해 롤 모델이라고 부르죠.
그래서 우리는 현실 세계의 네트워크는 물론, 소셜 네트워크에서까지 그런 인사이더를 찾아 모방하고, 그를 통해 대중으로부터 자신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것이겠죠.
타인을 모방하고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로부터 오히려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기준이 되는 것, 그것이 진짜 '인싸'의 삶 아닐까요.
나의 미래를 담은 거짓을, 새로운 나의 페르소나를 사랑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한다. 성장을 위해서라면 오히려 필요한 일이라 한다. 롤모델을 닮아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는 그 과정도 필요하다고 한다. 큰 위로가 되었고 동시에 나아가지 못하고 자꾸만 뒤를 돌아보았던 나를 반성했다.
과거, 현재의 나와 내가 그리는 미래의 내가 거리가 먼 것에 좌절할 수 있지만 좌절만 해서는 안된다. 내가 스스로 그린 '자신의 거짓'이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어주는 모습이라면 그와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애를 쓰면 된다. 좌절하고 절망할 지라도 다시 일어나 그 과정을 밟으면서 내 하루를 채워가면 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기준에 두는 것이다. 나의 기준없이 타인을 모방하기만 한다면 끝없는 거짓말을 반복하는 리플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책 속 경고또한 잊지 않아야 겠다.
이 책은 인생에 관한 우리의 질문과 고민을 꺼내고 시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갈 수 있음을 넌지시 알려준다. 정답지가 되어줄 순 없겠지만 혼란에 부딪혔을 때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는 이정표의 역할로 충분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리고 나의 힘듦이라는 것은 어쩌면 일상이 편한 자의 배부른 투정이 아니었을까 반성하며 돌아보게 했다. 글을 읽으며 때때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투정하는 나를 다시금 멀찍이 떨어져 보게해주었던 것 그것으로 더 충분했고 감사했다.
_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지극히 솔직한 개인의 감상을 쓴 책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