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면 쉬워지는 너와 나.
이슬아작가와 남궁인작가가 주고받은 서간 에세이가 담긴 책 [우리사이엔 오해가 있다, 문학동네(2021)] 전문에서 이슬아는 남궁인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남궁인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작가인 나도 이해가 안될만큼 글을 많이 쓴다고. 아마도 그것은 많이 읽어서일지도 모른다고 예상은 해보지만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이슬아가 그를 안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고 덧붙이면서. 다만 그의 친절함에 대해서는 알고 있기에 남궁인과 주고받는 이 서간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 을 밝히고 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남궁인의 프롤로그에는 글을 쓰는 것에 대한 입장 그리고 이슬아에 대한 다른 생각, 설명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슬아 작가와의 공통점을 말하고 있었다. 너도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무척이나 다른 사람이지만 결국엔 글을 쓰는 사람들이라며 묘한 연대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만 그와 저 사이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동안 누가 시키지 않아도 세상에 단 몇 명만 읽어줄 글을 써왔다는 것이지요.
<...중략...> 자신이 지질하고 부족하니 긴 시간을 쓸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요. 우리는 참으로 절절하게 반성하고 자책하면서도 타인의 이해를 갈구하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슬아는 의사이면서 글을 이리도 많이 쓰는 남궁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말했고, 남궁인은 내가 글을 쓰는 것이 이슬아 작가와의 공통점이라 말을 한다.
또 남궁인은 이슬아에 대해 "나와 너무 다른 사람" 나에게 "모든 규범을 거부하며 살아온 세계관의 슈퍼스타로 보였습니다." 라고 아주 점잖게 돌려 돌려 표현한 것에 반하여, 이슬아는 남궁인을 "의사 업무를 제외한 수많은 일에 서툴고 무심하다. 노래와 춤, 미용과 쇼핑, 사랑과 이별, 유머와 해학 등 몇가지 결정적인 일들에 취약하다." 라며 구체적으로 콕 짚어서 글로 적었다. (이 문장과 표현을 보며 어이쿠- 역시 이슬아네, 하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미소가 지어졌다.) 프롤로그 속 남궁인의 말대로 이슬아는 "구린 걸 구리다고 매우 능숙하게 말하는 사람"이 맞는 셈이다.
프롤로그부터 서로에 대한 다른 생각이 담겨 있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책의 제목과 참으로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오해가 있다. 오해가 있었다. 너와 나 사이엔 항상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책 한권을 같이 쓰기로 한 두 작가의 시작부터 이렇게 다른 글이 담겨 있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엔 오해가 있다는 것이 디폴트인 셈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편해졌다. 알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왜 나를 알지 못하면서 겉으로 나를 판단하냐며 억울해할 일도 아닌 것이다. 오해가 있는 것이 당연하니 이해를 갈구하고자 한다면 노력을 쌓아가면 되는 일이다.
이해를 얻고자 하는 그 모든 노력의 근간에는 외로움이 있을 수도 있고 더 멀리 다른 곳으로 나아가고 싶은 욕망, 야망이 있을 수도 있다. 나에게는 외로움이었던 일의 시작이 타인에게는 야망일 수도 있고 성취욕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다를 뿐이지 틀린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사이에도 항상 오해가 있기 마련이다. 왜 내 마음을 모를까? 무슨 생각이길래 그렇게 말하는걸까? 말과 태도에서 비롯된 오해는 당연하다 못해 필연적인지도 모른다. 똑같은 말을 주고 받아도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서로 다르게 기억하는걸 보면 말이다. 그러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알거란 기대는 지나친 바램일 것이다.
서간문 에세이 형식의 책에 솔직히 매력을 잘 못느꼈던 편이었는데, 이슬아 남궁인 두 작가의 글을 보며 매력 속에 폭 빠져들었다. 솔직하고 당돌한 이슬아의 어퍼컷 편지와 당황하며 그러나 매너있고 젠틀하게 마무리하는 남궁인 작가의 호흡과 케미가 무척 재미있었다고나 할까? 너와 나 사이에 오해는 존재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해도 상대가 나를 정말로 미워하진 않을거야, 라는 신뢰가 바탕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된 글쓰는 사람들끼리의 우정일 수도 있고, 비지니스 파트너로서의 적절한 거리에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겠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에 바탕이 되어주는 믿음의 존재는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너와 나의 오해는 필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