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때 이런 음악
토요일 이른 아침, 블로그 챌린지를 함께하고 있는 분들과 글쓰기 줌을 열었다. 참석은 자율. 토요일 글쓰기 줌 시간은 강제적으로 글쓰기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운영자의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을 가진 시스템이기도 했다. 지난주에 이은 두 번째 시간 서재방에 들어와 스탠드 불을 켰다. 샷시문을 통해 보이는 베란다 밖 하늘은 아직 어둑어둑하다. 유튜브에서 쌀쌀한 토요일 아침 듣기 좋은 음악을 찾는다. 겨울 눈 내리는 풍경의 재즈피아노 플레이리스트를 전했다.
"오늘의 Write with me 줌 BGM 공유드려요."
BGM을 켜는 것도 자유. 취향에 따라 듣기도 하고 듣지 않기도 할 테니 링크만 드리고 줌에서 BGM을 틀지는 않았다. 잠시 뒤 채팅창에 반응이 톡- 올라왔다.
"음악 하나로 홈카페 느낌이네요."
사소하고 작은 것 하나로도 누군가와 연결된 느낌이 든다. 빈 공간을 음악이 채우면 더 이상 외롭거나 힘겹지 않다. 음악과 함께 하는 즐거운 액션이 되어간다.
공간을 익숙한 멜로디의 음악으로 채우는 일은 나만의 글쓰기 주문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특히 재즈)을 사랑하기로 유명한데, 어느 기사를 통해 본 음악과 글쓰기에 대한 그의 말은 이러했다.
“나는 문장 쓰는 법을 음악에서 배웠다.”
한 줄 문장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라 하루키의 글을 찾아 읽으며 힌트를 얻는다.
스물아홉 살이 되고 난데없이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지만, 뭐 그래도 상관없잖아, 하고 스스로를 타일렀다. 딱히 대문호가 될 필요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소설을 쓴다고 해도 대체 뭘 어떻게 써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 소설을 써본 경험 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자기 문체 같은 것도 없었다. 소설 쓰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도 없었고, 문학 이야기를 나눌 만한 친구도 없었다. 다만 그때는 '혹시 음악을 연주하듯이 글을 쓸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멋진 일이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 (주로 재즈에서) 배웠다.
-무라카미하루키, 다른 울림을 찾아서 중.
문장에도 리듬이 깃들면 듣기 좋은 음악처럼 기분 좋게 계속 읽을 수 있을 거라는 그의 말이 와닿는다. 그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가 떠올랐다. 친구네 집에서 빌려온 노르웨이의 숲. 문학적이라는 느낌보다 감각적이라는 말이 더 어울렸던 책 속 문장들이 어린 맘에도 하루키의 문체는 놀라웠다.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쓰는 문장의 호흡과 리듬을 찾아가는 일도 필요한 셈이다. 결국 반복해서 쓰고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그 순간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주는 음악, BGM과 함께 말이다.
글쓰기 전에는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듣는 것이 좋은데, 익숙한 KPOP이 아닌 연주 음악에는 문외한이라며 겁낼 필요가 전혀 없다. 나 역시 연주곡 음악, 연주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요즘은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큐레이션을 하거나 직접 피아노 연주를 해서 들려주는 유튜브 채널이 아주 많다. 그리고 똑똑한 알고리즘은 나보다 더 내 취향을 잘 파악해 적절한 플레이리스트를 띄워준다.
일상적인 블로그 글쓰기를 할 때라도 피아노 연주곡 또는 잔잔한 재즈음악과 함께하면 마치 작가가 된 듯한 감성을 누릴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음악을 들으며 문장의 리듬도 찾아갈 수 있으니 글쓰기와 음악을 함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어둑어둑한 토요일 오전 6시,
글쓰기 전 또는 글 쓸 때 틀어놓으면 좋은 음악.
#WriteWithMe
https://youtu.be/vpGrEoMQDQ8?si=LHazZfPP1jL3el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