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락울 Oct 25. 2019

내가 돈을 쓰지 않는 것들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비혼 여성의 비구매 목록

저의 월 지출액을 듣는 사람들마다 "대체 어떻게 그래?"라고 묻습니다. 역으로 다른 사람의 월 지출액을 들으면 저는 "대체 어떻게 그래?"라고 묻죠.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돈을 쓰는지. 그래서 공개하고자 합니다. 대체 저는 어디에 돈을 쓰지 않는지, 쓰는지 말입니다. 


그 첫 번째,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비혼 여성의 비구매 목록입니다.






1. 옷

예전에는 특이한 옷을 좋아해 하나 둘 사모았다면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후로는 더 살게 없어서 법복을 제외하고 구입한 옷은 없습니다. 기부할 옷이 몇 벌 있어 정리할 예정입니다. 모노톤의 받쳐 입기 쉬운 기본 템 몇 벌과 포인트를 줄 수 있는 특이한 옷 몇 벌이 있으니 더 살 게 없네요. 출근복으로 법복까지 완-성!


2. 가방

크고 큰 출근용 백팩 하나와 에코백 하나, 가끔 놀러 갈 때 매는 20만원대 퀼팅백 하나가 전부입니다. 그러고 보니 가방 모두 선물 받은 거네요. 어쩐지 가방을 산 기억이 없더라 했습니다. 출근용 백팩은 투박하지만 힙하고 에코백은 심플하며 퀼팅백은 유행을 타지 않는 스테디셀러입니다. 


3. 네일 제품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네일 제품을 사모았습니다. 천원 이천원 비싸 봐야 오천원인 네일 제품은 기분전환 삼아 구매하기 좋았습니다. 하지만 벗겨지는 게 지저분해 보여 금세 싫증이 나더군요. 결국 가지고 있던 것들을 전부 버렸습니다. 젤네일은 오래간다지만 손톱에 두껍게 올리는 게 답답해 보였고 기본만 해도 5만원이 넘어가니 가격이 너무 비싸보였어요. 요새는 포화시장이 되어 저렴해졌지만 깔끔한 손톱의 미학을 알고 나니 끌리지도 않습니다. 손이 가는 손톱깎이(손톱깎이도 손에 잘 맞는 게 있고 아닌 게 있어요)로 손톱을 넉넉하게 깎고 손톱을 정리하는 사포로 갈아 마무리하면 바짝 깎지 않아도 흰 손톱 없이 다듬을 수 있어요. 한 번 맛들리면 일주일에 두 번은 손톱을 정리하게 됩니다. 


4. 화장품

대학생 때 잦은 술자리로 피부가 뒤집어진 후 딱 맞는 기초 화장품을 찾아다녔습니다. 비싼 화장품을 여러 개 갈아치워 봤지만 모두 헛수고였죠. 그러다 성분이 순한 화장품을 사용했는데 제 피부에 찰떡이었습니다. 그렇게 피지오x로 몇 년을 버티다 동생이 쓰는 독x로션을 함께 쓰고 있는데 순하고 좋습니다. 겨울은 건조하니 다시 피지오x로 돌아가려 합니다. 하나 사두면 몇 개월은 쓰니 아깝지 않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어렸을 때 열심히 발랐던 비비크림과 파운데이션도 멀리하게 됐습니다. 무기자차라고 불리는 물리적 자외선 차단제를 대신 발라줍니다. 성분 좋고 백탁이 있는 자외선 차단제는 잘 바르면 다른 사람들 눈엔 그냥 화장한 것처럼 커버가 가능합니다. 섀도는 모두 정리하고 갈색 하나와 검은색 하나만 남겼습니다. 갈색 섀도로 눈썹과 눈두덩이 바탕을 바르고 검은색 섀도로 눈썹을 그려줍니다. 마무리는 말린 장밋빛 립스틱. 단촐한 화장이지만 제게 잘 어울리고 잘 맞습니다. 


5. 구두

하루에 만보씩 걷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무조건 발이 편한 신발을 선택합니다. 출퇴근길은 물론 주말에 놀러 갈 때도 운동화입니다. 가끔 꼭 필요할 때 신을 단화가 한 켤레 있으니 구두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발은 물론 허리 건강까지 위태롭게 하는 구두는 제 신발장에 들일 곳이 없답니다.


6. 지갑

저는 귀찮은 것, 무거운 것을 싫어합니다. 대학생 땐 중지갑을 들고 다녔고 그 후론 장지갑을 들고 다녔지만 실제로 쓰는 건 카드 한 장과 주민등록증 한 장이더군요. 엄마 선물로 사드린 닥스 지갑에 달려온 작은 카드지갑을 요긴하게 잘 쓰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거의 3년째 사용 중인 듯하네요. 주변 친구들의 명품 지갑을 봐도 무겁겠다는 생각만 들지 욕심이 나지 않습니다. 자주색 닥스 카드지갑이 최고입니다b


7. 다이어리, 플래너

1월 1일이 되면 저도 어쩔 수 없이 다이어리와 플래너를 구경하며 올해는 잘 쓸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기대를 걸어보곤 합니다. 대학생 때는 참 잘 썼는데 들춰보지도 않고 쌓여있는 걸 처분하고 나서는 잘 써봤자 짐만 되겠구나 싶어 구매하지 않습니다. 대신 매일 해야 할 일을 작은 메모지 한 장에 적고 지워나갑니다. 이마저도 귀찮을 때는 잠들기 전 내일은 무얼 해야지 정하고 실행합니다. 다행히 느리지만 천천히 할 일은 다 하고 즐겁게 삽니다.


8. 휴대폰

휴대폰 사용목적은 전화, 문자, 카톡, 인터넷, 음악 스트리밍, 브런치, 스마트폰뱅킹 정도입니다. 어려운 기능들은 아닌지 휴대폰이 고장 나지 않습니다. 액정이 깨져도 그냥 들고 다닙니다. 도저히 못 들고 다닐 때 바꾸는 데 최신형은 구입하지 않는 편입니다. 어차피 곧 또 다른 최신형이 나와 구식이 될 거라면 저렴한 기종을 선택하는 게 낫다는 판단입니다. 지난 휴대폰은 갤럭시 s4였습니다. 노래를 들으며 팔을 흔들다 날아가 액정이 깨져버린 휴대폰을 한참 들고 다니다 가족이 휴대폰을 바꾸면서 기존의 휴대폰을 저에게 넘겼습니다. 그래서 지금 휴대폰은 갤럭시 s8. 대체 휴대폰을 왜 바꾼 걸까 싶을 만큼 잘 쓰고 있습니다. 


9. 요금제

사용목적이 심플하다 보니 데이터도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알뜰 요금제를 쓰니 한 달에 만사천원정도 나옵니다. 5기가로 충분히 쓰고도 남습니다. 집에는 와이파이가 빵빵하니 가능한 걸 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5기가로 여행 가서 검색도 하고 운동할 때 노래도 듣습니다. 


10. 헬스장

매달 다짐하는 다이어트를 위해 운동은 필수지만 헬스장을 고집하진 않습니다. 집 근처에 공원도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코스로 훌륭하고 공원 옆에는 꽤 넓은 마을 주민 전용 무료 헬스장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사설과 비교하면 엉성할지 몰라도 제가 혼자 운동하기에는 훌륭합니다. 무게별 덤벨은 물론 기구가 20종이 넘으니까요. 하나하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며 운동을 합니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으로 깔짝대고 있어요. 예전에 멋도 모르고 비싼 pt를 받았다가 되려 허리 통증만 얻었던 경험 탓에 pt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도수치료받으며 하사 받았던 운동을 하니 몸이 좋아집니다. 


11. 펌, 염색

머리숱이 점점 줄고 있습니다. 한때는 4번의 탈색 끝에 얻은 금발을 자랑하고 다녔으나 싹둑 잘라버린 후로는 어떤 시술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펌은 물론 염색도 마찬가지입니다. 반곱슬인 덕에 감고 말리기만 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동생이 미용실을 간다길래 찾아봤더니 요즘은 거진 20만원 하더군요. 정말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펌과 염색을 하는 대신 좋은 샴푸를 써서 머리를 감고 영양제를 발라주려 합니다. 제 머리카락은 소중하니까요.


12. 술

한 때는 일주일 내내 과방에서 아침을 맞이했을 정도로 술독에 빠져 살았는데 술 마시는 것도 체력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한 시간쯤 지나면 즐거웠던 기분이 급격히 떨어질 뿐 아니라 즐거운 한 시간을 위해 마셔야 하는 술이 쓰게만 느껴집니다. 게다가 술은 그다음 날의 여파가 크더라구요. 숙취뿐 아니라 대부분의 술자리가 늦은 자리에 파하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져 리듬이 깨집니다. 즐거움 대비 비용이 크다는 걸 깨닫고 나서는 술을 즐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주 가끔 땡길때만 맥주 한 캔을 마십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치킨과 함께라면 맥주 한 잔 정도는 괜찮은 사치겠지요. 그 외에 진탕 마시는 술은 사절입니다. 


13. 유행

확실히 유행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인형 뽑기가 유행일 때도 500원 한 번 넣어본 적 없고 슬라임이 유행할 땐 저게 뭔지도 몰랐으니까요. 보통 sns로 유행이 퍼지는데 sns가 정신건강을 피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삭제해버리니 유행에 무감각해졌습니다. 아! 유행에 따라갔던 건 딱 한 번, 마카롱입니다. 작고 달달한 마카롱 하나에 세상을 가진 것처럼 행복해지더군요. 하지만 곧 그 맛에도 익숙해지니 잘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끔 친구들과 만날 때 힙한 카페를 검색해 찾아가 보고 딱딱한 의자에 후회하길 반복, 결국 카페도 항상 가는 카페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정말이지 유행과는 거리가 먼 삶입니다.    


14. 화장대

엄마는 항상 제 방에 화장대를 넣고 싶어 하셨습니다. 여자의 상징이라고 생각하셨나 봐요. 하지만 전 화장대가 필요 없습니다. 스킨, 로션은 씻은 후 화장실에서 바릅니다. 색조는 전신 거울 앞에서 선크림을 바르고 섀도우로 눈썹과 눈두덩이를 칠하고 립스틱을 바르는 게 전부입니다. 눈이 안 좋아서 거울을 코 앞에 두고 화장을 합니다. 화장대는 앉으면 거울과 사이가 멀어 오히려 불편합니다. 화장대가 있는 숙소에 가도 의자에 앉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서 거울에 얼굴을 바싹 들이대고 화장을 합니다. 화장대는 불편하기만 합니다.


15. 카페

도서관에서는 공부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대학생 때는 시험기간만 되면 24시간 카페로 갔습니다. 능률은 모르지만 공부하는 기분은 났습니다. 그 후로도 공부할 일이 생기면 무조건 카페로 갔습니다. 정작 집중하는 시간은 한 시간 정도고 오래 있으면 눈치가 보여 메뉴를 더 주문하니 돈이 만만치 않게 깨졌습니다. 하지만 커피는 영혼에 수혈하는 링겔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 카페를 포기하긴 힘들었습니다. 결국 방을 카페처럼 꾸몄습니다. 카페에서 늘 아쉬웠던 폭신한 의자부터 제 키에 맞는 알맞은 높이의 탁자, 햇빛을 완벽하게 차단해주지 못했던 카페 블라인드 대신 암막커튼까지. 어차피 모두 필요했던 물건들이라 불필요한 구매 없이 취향 저격 카페가 완성되었습니다. 취향이 고급지진 않아서 카누를 타고 얼음을 띄우면 그곳이 극락이 됩니다. 다음엔 원두를 직접 사서 갈아서 내려볼까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의 품격을 높이는 데엔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홈카페 덕분에 카페 갈 일이 줄었습니다. 친구를 만날 때를 제외하면 카페에 가지 않습니다. 






사실 이렇게 적어본 건 처음입니다. 내가 소비하지 않는 것들이 많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적은 것이니 이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내가 불편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위의 것들을 소비하지 않았을 때 불편하다면 그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불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조롭고 편안하며 안락합니다.


다음엔 제가 소비하는 것들에 대해 적어보고자 합니다. 가끔은 사람들은 대체 어디에 돈을 쓰는 걸까?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소비하지 않는, 소비하는 것들을 보고 공유해주신다면 참 감사할 것 같습니다. 


이상 미니멀리스트가 되고자 하는 비혼 여성의 비구매 목록이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법복을 샀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