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소시민의 일기
살다 보면 억울하게 '한소리' 듣는 경우가 많다. 평소라면 발끈해 정정해주었을 텐데 회사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상사라면 더더욱.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적을 많이 만들면 좋지 않다는 거였다. 적이 많을수록 회사에 정 붙이기 힘들고 외로워지니까. 돈 벌러 가는 회사에서 외로운 감정이 대수냐 하겠지만 돈 벌러 가는 곳에서도 외로움은 사무치기 마찬가지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불가능. 언제쯤 그 정도의 내공이 쌓일지 궁금하다. 억울하게 듣는 '한소리'는 자꾸만 신경을 거스르고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꿍하고 돌 하나를 마음에 얹어놓은 것 같다. 사소한 일도 신경질이 나고 불을 뿜는다. 릴랙스 릴랙스-를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후...
말할까 말까 하다가 말했다.
제가 이러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이러해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러이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개뿔. 잘 좀 알아보고 말하지. 지구 백 바퀴쯤 돌려 전한 말에 상대방은 니가 걱정돼서 그랬어 앞으로 조심해-라며 넘겼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감사하다고 했다. 제기랄.
갈까 말까 할 땐 가고, 먹을까 먹지 말까 할 땐 먹지 말고, 말할까 말까 할 땐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다.
적을 만들지 않고 평탄하게 직장생활을 하려면 눈 감고 귀 닫고 입 닫아야 한다던데 눈을 말똥하게 뜨고 귀는 활짝 열고 입은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으면 한 마디는 해야 직성이 풀린다. 직성이 풀리고 나면 남는 건 없다는데 직성이 풀린 거로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화병으로 죽진 않겠다.
직성을 풀었으면 남는 것 없이 속 시원하기만 해야 할 텐데 괜히 말했나 말하지 말걸 하는 찌질한 감정이 저 밑바닥에 조그맣게 남는다.
사이다 캐릭터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고구마 하나 먹고 사이다 한 모금 들이키고 더 목말라 입을 쩝쩝댈 상이다. 나는.
앞으론 오해할 일 없게 일처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껄끄러운 말이 오갔으니 조금이라도 남은 관계의 껄끄러움을 세척하기 위해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이다가 더 필요하지만, 긴가민가하는 찌질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지만 말하지 않았다면 목이 막혀 죽었을 것이고 두고두고 그때 말할걸 후회했을 거니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는 선택을 했기에 난 나 자신을 쓰다듬어준다. 잘했어. 잘했어.
살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를 품 속에만 끌어안고 있을 때가 많다. 친구에게 조언하고 싶을 때도 꾹 참고 연인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을 때도 꾹 참고 상사에게는 더 많은걸 꾹 참는다. 하지만 정말 해야 할 것 같을 때는 각오하고 지른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말 한마디가 천냥 빚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가 천냥 빚도 만들어내는 사회니까.
모두가 쿨하게 할 말 하고 사는 사회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그랬음 내 상처도 만만치 않았을걸-하고 자조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여전히 의문인 채로 남아있다.
소심한 소시민은 말할까 말까 할 때 말한다. 지구 백 바퀴쯤 돌려서 공손하게. 고달프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