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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락울 Nov 11. 2019

말할까 말까 하다가 말했다.

소심한 소시민의 일기

살다 보면 억울하게 '한소리' 듣는 경우가 많다. 평소라면 발끈해 정정해주었을 텐데 회사에서는 그것도 쉽지 않다. 상사라면 더더욱.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적을 많이 만들면 좋지 않다는 거였다. 적이 많을수록 회사에 정 붙이기 힘들고 외로워지니까. 돈 벌러 가는 회사에서 외로운 감정이 대수냐 하겠지만 돈 벌러 가는 곳에서도 외로움은 사무치기 마찬가지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수 있는 탄탄한 내공의 소유자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불가능. 언제쯤 그 정도의 내공이 쌓일지 궁금하다. 억울하게 듣는 '한소리'는 자꾸만 신경을 거스르고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꿍하고 돌 하나를 마음에 얹어놓은 것 같다. 사소한 일도 신경질이 나고 불을 뿜는다. 릴랙스 릴랙스-를 외쳐도 소용이 없었다. 후...


말할까 말까 하다가 말했다. 


제가 이러이러하지 않았습니다. 이러이러해서 착오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이러이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하긴 개뿔. 잘 좀 알아보고 말하지. 지구 백 바퀴쯤 돌려 전한 말에 상대방은 니가 걱정돼서 그랬어 앞으로 조심해-라며 넘겼다. 오해해서 미안하다는 말은 돌아오지 않았다. 괜히 감사하다고 했다. 제기랄.






갈까 말까 할 땐 가고, 먹을까 먹지 말까 할 땐 먹지 말고, 말할까 말까 할 땐 말하지 말라고 했던가.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다. 


적을 만들지 않고 평탄하게 직장생활을 하려면 눈 감고 귀 닫고 입 닫아야 한다던데 눈을 말똥하게 뜨고 귀는 활짝 열고 입은 근질거려 참을 수가 없다. 용납할 수 없는 선을 넘으면 한 마디는 해야 직성이 풀린다. 직성이 풀리고 나면 남는 건 없다는데 직성이 풀린 거로 어느 정도 위안이 된다. 화병으로 죽진 않겠다.


직성을 풀었으면 남는 것 없이 속 시원하기만 해야 할 텐데 괜히 말했나 말하지 말걸 하는 찌질한 감정이 저 밑바닥에 조그맣게 남는다.


사이다 캐릭터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고구마 하나 먹고 사이다 한 모금 들이키고 더 목말라 입을 쩝쩝댈 상이다. 나는.






앞으론 오해할 일 없게 일처리를 제대로 해야 할 것이다. 껄끄러운 말이 오갔으니 조금이라도 남은 관계의 껄끄러움을 세척하기 위해 더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는다. 사이다가 더 필요하지만, 긴가민가하는 찌질한 마음이 아직 남아있지만 말하지 않았다면 목이 막혀 죽었을 것이고 두고두고 그때 말할걸 후회했을 거니까.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는 선택을 했기에 난 나 자신을 쓰다듬어준다. 잘했어. 잘했어.


살다 보면 수많은 이야기를 품 속에만 끌어안고 있을 때가 많다. 친구에게 조언하고 싶을 때도 꾹 참고 연인에게 한 마디 하고 싶을 때도 꾹 참고 상사에게는 더 많은걸 꾹 참는다. 하지만 정말 해야 할 것 같을 때는 각오하고 지른다. 물론 아주 조심스럽게. 말 한마디가 천냥 빚도 갚는다지만 말 한마디가 천냥 빚도 만들어내는 사회니까.


모두가 쿨하게 할 말 하고 사는 사회면 좋으련만- 하고 생각하다가도 아니야 그랬음 내 상처도 만만치 않았을걸-하고 자조한다.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는 사회가 좋은 사회일까? 여전히 의문인 채로 남아있다.


소심한 소시민은 말할까 말까 할 때 말한다. 지구 백 바퀴쯤 돌려서 공손하게. 고달프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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