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옥별아star a Apr 22. 2019

여행의 의미-옥스포드와 한국의 스카이캐슬

-이름 보다는 본질


'학벌이란 무엇일까?'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학교의 이름' 또는 '내가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이름'

아마도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되는 때때로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개인적으로 여행하게 되는 곳에서 기회가 된다면 그 지역 대학교 캠퍼스와, 대학가 주변의 젊은이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아간다. 유서가 깊은 곳이라면 더욱.


우연히 지나치게 되는 곳이라도 그곳에서 보게 되는 학생들과 학교의 분위기가 맘에 들면 멈춰가기도 한다. 그리고 학교나 지역, 학생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되고 정보를 찾아보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지역을, 사람들을, 문화를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그만큼 '교육'이란 어느 나라든, 그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유럽 여행 중에는 벨기에 겐트의 겐트(Gent) 대학교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Strasbrough)의 스트라스부르 대학교, 그리고 영국 런던에 있던 옥스포드 대학교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겐트 대학교와 스트라스부르 대학교는 지역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규모가 커서 지역에 미치는 영향력이 적지 않으며, 시민들과 소통하는 대학교들이다. 



여타의 유럽 지역의 대학교들보다도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열려 있는 모습이었던 대학들. 그리고 지역의 중심이 되어 사람들이 오고 가는 길목에서 누구나에게 자유롭게 길을 터 내어 주었던 대학들이다. 

다른 화려한 대학들보다도 그 정겨운 분위기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그러한 편안함은 여행 후에도 오랫동안 지역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기억되게 한다.


내게는 '공부하는 곳', '학생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 '미래를 꿈꾸는 곳'의 의미는 생각보다 강렬하다는 것을 여행 중에 느끼게 되곤 한다.


 아마도 그러한 것에 집중하게 되는 것은 새로운 가치(value)를 찾아내게 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교육의 가치, 공부의 가치, 배움의 가치가 그것이다.


어느 집단이든 그 다수를 보면 그 집단의 성격이나 성향을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학생들의 모습을 통해서 학교의 가치를 알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지역을 이해하게 되기도 하며,  그 지역의 시민들을,  그리고 나아가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를 깨닫게 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단순히 학교의 이름과 명성을 넘어선 '교육의 의미'와 '학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학벌은 그저 무언가의 명함이나 스펙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학교의 이름을 빛내주는 사람과 학벌의 가치를 세워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이름이 아니라, 본질이다. 이름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고 다른 이에게도 기준을 가지는 자세가 그것이다.



제대로 된 방식이라면 교육은 한 사람의 성품과 가치를 올바르게 정립해 나가는데 도움이 된다. 학교의 교육, 문화, 가르침의 인문, 사회과학, 교양은 한 사람을 사회인으로서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다른 사람들과 조화로운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준다. 그것이 교육이고, 학교의 역할이고, 학교의 이름이 가진 가치이다. 


그런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양성시켜 사회에 내보내는 일,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이 힘을 발휘하여 사회를 보다 긍정적으로 이끌고 발전적으로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는 일. 그것이 훌륭한 학교의 교육이 가지는 힘이며, 그러므로 그 가치는 '학벌'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의 이름(name)에만 집중할 뿐, 그 이름이 왜(why) 중요한지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름이 중요한 이유는 그 사람이 올바른 가치관과 교육으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사람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돈을 많이 버는 직장에 들어가고,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나고, 가지고 싶은 것을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는데 익숙하다. 외적인 것에 몰두하는 일, 그것은 가장 쉬우면서도 간단하기 때문이다.


학벌이 결과가 아니라, 시작이 되기를.

학벌로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그 사람의 학교가 인정받게 되기를.

그러한 태도로 우리 모두가 깐깐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 누군가의 가치는 쉽게 형성되지도 판단해서도 않되는 것이므로.





가장 최근에 학교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던 경우는 최순실 사태이다. 그리고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이다.





이화여대와 최순실 사태


이화여대 특혜를 받고 입학을 한 최순실 딸 정혜라의 부정입학이 이화여대 학생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소위 힘 있고 배경 있는 집안의 자녀들의 입시 특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사건이다. 누군가는 그러한 일은 '당연하다'라고 한다. 세상은 그런 거라고,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이 원하는 대로 되는 법이라고.

그러나 다른 편의 누군가는 반대로 이야기한다.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거라고. 버텨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시켜 내야 하는 거는 거라고.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하는 것이라고.



이화여자 대학교의 학생과 졸업생들이 힘을 모아, 단 한 사람의 부정 특혜 입학에 대해 들고 일어섰던 것은 그들은 그러한 사회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었던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들은 부모, 재산, 외모, 환경으로 각각 다른 상황에서 살아간다. 그렇지만 '교육'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을 한다.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주는 기회를. 결핍과 상처를 긍정적으로 꽃 피울 수 있는 힘과 열정을 준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행동으로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비록 힘에 편승하고 타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이를 용납하는 분위기가 있다 해도, 그것이 옳지 않다고 인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화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이화여대 학생들의 용기는 몇몇 어른들의 욕심과 그릇된 선택들을 드러내어 학교의 약점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었다. 학교의 이름 아래 수동적으로 서 있는 학생들이 아니라, 배움을 통해서 더 유연한 사고로 세상을 마주치는 강인한 사람들로 성장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름의 가치가 아니라, 무엇이 중요한지 본질을 배워나가는 모습.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단지 보이는 것으로 모든 것을 인정하게 되어버리는 그런 사회일까?

힘 있는 사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에 대해 쉽게 인정함으로 더 큰 불합리와 불공평을 낳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아닐까?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어야 하는 냉철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교육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학벌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더 날카로운 잣대로 바라보고, 겸손함과 비판을 수용하는 태도를 기대해야 한다.


좋은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이뤄낸 성과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축적된 경험들로 학벌로 사람에 대해 기대하게 되거나 인정하게 된다. 그러나 단편적인 가치 판단보다는 그 사람의 내면과 본질을 바라보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에게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가치를 정립하는 일에 있어서도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열정이 있다면 기회를 얻고 같은 선상에서 시작하고 결과를 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사회를 꿈꾸는 일 , 그것을 우리는 잃지 않고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스카이 캐슬


얼마 전 종영한 스카이캐슬이라는 드라마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학벌과 보이는 조건들이 가지는 사회적인 가치에만 신경 쓰다 보면 자신의 '이름'만 있을 뿐,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잃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잘하는 것은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싶은 것들로만 리스트에 가득하고 자신이 베풀 수 있는 것들, 줄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된다. 보이는 것은 화려하고 가득 채워져 있는데, 막상 집에 들어가 쌀통을 열었을 때 쌀 한 톨이 보이지 않는, 그러한 양식 없는 삶, 계속 채워도 허기진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조건이나 물질, 이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에는 너무 멀리 가는 경우도 있다. 집에 맛있는 밥 한 공기 없는 사람이 바깥에서 맛있는 것들을 가득 시키고 남기고도 오면, 그것이 행복일까?

자신이 원하는 조건들과 외적인 것들을 채우고, 집 안에 자신이 신경 써야 하는 꽃나무, 가족, 강아지 이런 것들이 죽어가는지도 모른다면 그것이 인생일까?





이름보다는 본질


학교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훌륭한 몇몇의 사람들로 학교의 이름은 빛난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사람들의 가치를 동등하게 밝혀 주는 것은 아니다. 개개인의 가치는 학교에서 올바른 교육과 교양을 받음으로 채워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채우는 일만큼 비워내는 일도 중요하다. 높아지는 일만큼 낮아지는 일도 중요하다. 외적인 것을 신경 쓰는 것만큼 내적인 것에 집중하고 가치를 새기는 일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삶은 유혹과 넘어짐과 어려움이 가득하다. 그럴수록 내실을 더욱 신경 써야 한다. 외출하며 들고나가는 가방만큼 집 안에 있는 작은 꽃 화분에도 관심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행의 의미- 프라하 여행 시 꼭 들러야 할 곳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