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킹엄 궁전
깃발이 걸려있을 때는 여왕이 관저에 있음을 의미한다
런던 여행에서 마주한 영국 여왕이 거주하는 곳 '버킹엄 궁전'과 버킹엄 궁전 근위병 교대식
영국의 상징 '여왕(The Queen)에 관한 이야기'와 로열패밀리, 영국 왕실(Royal Family) 이야기이다.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과 광장부터 시작된 길은 영국의 최대 왕립 공원인 하이드 공원(hyde park)을 지나서 버킹엄 팰리스 가든(Buckingham Palace Garden)으로 향한다.
버킹엄 팰리스 가든의 끝에는 여왕이 거주하고 있는 황금빛 천사가 사람들을 반기는 버킹엄 궁전이 나온다.
1703년에 개인이 지은 건물은 1837년 당시 재위했던 빅토리아 여왕이 이 곳으로 공식 거주지를 이전해 오면서 이후 역대 왕들이 거주지와 집무실이 되었다. 현재는 영국을 대표하는 궁전으로 엘리자베스 여왕(Elizabeth Alexandra Mary)이 사용하고 있다.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영국 지도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 아일랜드 England, Scotland and Ireland
잉글랜드 왕이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를 겸직
1603년 잉글랜드 왕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사망한 후, 스코틀랜드 왕국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왕위를 이어받아 제임스 1세로 즉위하였다. 이때부터 1707년까지 잉글랜드의 군주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의 군주를 겸직했다.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의 통합: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Great Britain Kingdom) 탄생
1707년 연합 법에 의해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아일랜드 왕국 통합과 이후 독립
1801년 연합 법에 의해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과 아일랜드 왕국이 그레이트 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1922년 12월 6일 아일랜드 자유국이 독립하고, 아일랜드령의 북 아일랜드 지방은 영국에 흡수됨에 따라, 1927년 4월 12일 나라 이름을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으로 개정하였다. 그리고 오늘날과 같은 영토가 확정되었다.
영국 왕과 여왕의 역사
1707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통합된 그레이트 브리튼 시대의 왕조는
스튜어트 왕가(1707–1714)이며, 이후
하노버 왕가(1714–1901),
작센코부르크고 타 왕가(1901–1917) 그리고
오늘날의 윈저 왕가(1917–현재)에 이른다.
빅토리아 여왕
특히, 가장 오랜 기간 통치하였으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던 대영 제국의 최전성기를 보냈던 시기의 하노버 왕가의 알렉산드리나 빅토리아 여왕은 제국주의 시대의 영토확장에 전력을 쏟았다. 이로 인해 영국은 여러 대륙에 걸쳐 식민을 확보하고 식민제국을 수립하였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살렸던 빅토리아 여왕은, 화목한 가정과 엄격한 도덕주의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특히 빅토리아 시대의 보수적인 성 문화는 20세기 들어 자유주의적 성향이 짙어짐에 따른 무분별함의 정화와 반성 차원으로 대안으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현재 94세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1926~)은 빅토리아 여왕이 재위했던 64년의 통치 기간을 넘어서 영국의 최장수 통치자가 되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전 세계 군주들 가운데서 최고령이며 최장기간 재위하는 군주이며, 오늘날 영국 시민들이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뽑는 영국의 가치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상징 중에 하나가 되었다.
로열 베이비의 의미: 영국의 인종과 문화
왕위 계승 서열 7위 남아의 이름은 아치 해리슨 마운트배튼 윈저. 영국 해리(34) 왕자와 부인 메건 마클(37) 왕자비 사이에서 태어난 영국 왕실의 로열 베이비의 공식 이름이다. 아이의 탄생은 세간의 이목을 주목시켰다.
영실 왕국 최초의 검은빛의 피부색이 조금 더 두드러진 왕자의 탄생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
2018 EU 인종차별 보고서나 World Values Survey 등에서 조사한 인종차별 지도를 보면 영국은 많은 수의 유럽이나 영연방 국가들에 비해 인종에 대해 관용도가 높은 국가로 분류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영국은 타인종에 대해 이웃, 직장 동료, 이성 친구, 심지어는 정치 지도자에까지 유색 인종에 대한 시각에서 유럽의 여느 국가들보다 유연한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그러한 실 사례를 보여준 것이 영국 왕실의 결혼문화의 변화다. 350년 만의 최초의 평민 출신과의 결혼, 그리고 타국가, 흑인, 이혼 경력이 있는 유명인과의 결혼은 영국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흑인 로열 베이비의 탄생은 '인종'에 대한 비차별적인 영국인들의 시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영국 왕실의 종교와 오늘날의 영국
영국은 유럽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복잡한 국가 중 하나다. 영국 전체의 국교는 없지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각각 독자적인 교회가 공식적인 종교로 간주되고 있다. 잉글랜드는 개신교의 성공회가, 스코틀랜드 역시 개신교파의 장로회가 국가의 정식 종교로 인정되고 있다.
16~17세기를 지나며 유럽 내에 로마 가톨릭의 부패와 지도자들의 무능력에 대한 반발로서 종교개혁이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는 종교개혁과 계몽사상 등으로 교황권과 왕권이 동시에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를 지나면서 잉글랜드도 종교개혁으로 개신교의 성공회가 자리 잡게 된다.
다만 당시 잉글랜드 종교개혁의 발단은 당시 왕이었던 헨리 8세의 사적인 이유에 있었다. 왕은 새로운 여인과의 재혼을 꿈꾸게 되는데, 보수적이던 당시의 정통교리에 대한 반발심과, 로마 가톨릭 대주교와의 대립이 지속되어 갈등이 깊어졌다. 왕과 관련된 일련의 이야기는, 당시 부패하고 세속화되었던 로마 가톨릭에 대한 반발심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헨리 8세
절대적인 가치로 빛나던 '신의 뜻을 구하고 따른다'는 국가의 원동력은 인간의 야욕과 야심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강력한 바람이 반영된 종교개혁운동은 깊이 민중의 마음을 포착하여 역사를 움직였고 지금의 영국의 성공회로 이어졌다. 영국의 성공회는 이후 오늘날까지 공식적으로 잉글랜드의 종교로 채택되고 있다.
오늘날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종교를 가진 사람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에 대한 반발심으로 시작된 종교개혁 운동, 그러나 오늘날 영국은 종교를 가진 사람보다 가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국가가 되었다.
'인간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버린 오늘날, 그래서 '신의 뜻을 구하고 따르는 믿음'을 상실해 버린 오늘날이 되었지만 언제나 인간적이었던 영국의 변화의 모습, 그리고 결국 돌아갈 영국의 모습까지.
영국이 아름다운 이유는 친근하면서도 위엄 있는 그 매력 있는 모습 때문이다. 변화하지만 언제나 본질을 잃지 않는 모습. 그 모습을 언제나 기대해 본다.
-영국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 시도하는 일들
: 참고 글
https://science-infuse.tistory.com/m/7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