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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컵 싫어!


“얘들아, 내일은 건강검진이 있으니까 몸을 깨끗하게 씻고, 편한 옷을 입고 오세요.”


30년 전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선생님께 듣던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게 되었다.


“선생님. 건강검진이 뭐예요?"

“응. 여러분들이 건강한지 아닌지 여러 가지 검사를 해요.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 선생님께서 내일 우리 학교로 오신답니다.”


요즘 초등학생은 1, 4학년에는 반드시 병원에 방문하여 건강검진을 받게 되어있다. 나머지 학년은 학교 보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키, 몸무게, 시력 등을 검사한다.

우리 학교는 다문화 학생의 비율이 40퍼센트가 넘는다. 안타깝게도 학부모님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여유가 없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병원 인력 출장을 요청했는데 감사하게도 허락해주셨다.


다른 학교에서 1학년 담임을 할 때에는 건강검진 기간과 방문 가능한 병원을 안내했다. 그리고 약 2-3주 기간 동안 검진을 독려했다. 그러면 어느새 학생들이 제출한 검사 결과지가 한 묶음으로 정리되었다.

선배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현재 우리 학교는 일반적인 방식이면 검진 참여율이 너무 낮아서 절대 안 된다고 하셨다. 대화가 통하지 않고 연락이 원활하게 되지 않는 학부모님께 검진을 독려하는 방식보다는 하루 바짝 신경 쓰는 것이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얘들아, 오늘 깨끗하게 씻고 왔니?”

“네.”

“그럼 내려가자.”

보송보송한 아이들을 데리고 과학실로 이동했다. (모든 학생이 그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흰 가운을 입고 환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이하는 병원 관계자분들이 왠지 반가웠다.

“얘들아, 이제부터 키랑 몸무게 잴 거야. 신발 벗고 올라와서 가만히 서 있으면 된단다.”

“네!”

아이들은 이거 많이 해봤다면서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의 순서를 기다렸다.


다음은 시력검사 순서.

“선생님 왜 숟가락을 줘요?”

“야, 이걸로 눈 가리는 거야.”

시력검사를 경험한 아이는 숟가락이라고 표현한 아이들 대놓고 무시했다. 검사해 주시는 간호사님은 아이들의 인지능력(?)을 고려하여 숫자 위주로 짚어주셨다. 역시 센스 만점이셨다.


청력검사와 가슴둘레를 잰 뒤 아이들은 화장실 앞으로 이동했다. 소변검사 코너에는 무려 세 분의 간호사 선생님들이 앉아 계셨다.


“얘들아,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여기에 받아오세요.”

“어떻게 받아요?”

“왜 받아요?”

“더러워요.”


대혼란이 일어났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이런 혼란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설명을 해주셨다.


“소변을 통해서 건강을 알아볼 수 있어서 그래요. 오늘 소변검사를 잘해야 피검사를 안 할 수 있어요. 여러분 주사 싫죠? 그럼 빨리 소변 받아오세요.”


‘주사’라는 소리에 아이들은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서둘러 종이컵을 받아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삼십육계 줄행랑도 이 정도는 아닐 듯싶었다.


여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도망치듯 화장실로는 들어왔는데, 그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바지를 내리고 쉬가 나올 때 종이컵을 살짝 갖다 대면 되는 거야.”

용감하게 도전하는 아이는 종이컵 가득 소변을 받았다. 너무 많은 양이었지만 그래도 일단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다. 간호사 선생님께 가서 스틱을 받아 검사를 받았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해요?”

비타민 느낌이 가득한 밝은색(?) 종이컵이 내 눈앞에 넘실거렸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 친절하게 대답해 주었다.

“화장실 변기에 다시 버리고 물을 내리면 됩니다. 후.”


남자 화장실도 난리가 났다. 들어갈 수도 안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한 발은 화장실 안에 한 발은 화장실 밖에 걸친 채로 시선은 화장실 밖으로 돌렸다.

“얘들아, 바지를 내리고 쉬가 나올 때 종이컵을 살짝 갖다 대면 되는 거야.”


아직 한국어가 서툰 외국 아이는 내 앞으로 와서 양손을 펼치고 어깨를 올렸다 내렸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바딤. 이렇게. 이렇게.”

무릎을 양쪽으로 굽혀서 하체로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든 뒤 가운데 부분에 종이컵을 갖다 댔다. 다른 손으로는 소변이 나오는 시늉을 하면서 설명을 했다.

“받아. 받아. 이렇게. 또르르. 또르르. 오케이?”

최선을 다해 설명하는 나를 본 간호사 선생님들의 웃음이 터졌다. 엉거주춤한 자세를 유지하며 나도 같이 씨익 웃었다.


“선생님, 저는 아무리 해도 오줌이 안 나와요.”

“자, 식수대 가서 종이컵에 물을 받아 두 컵 마시고 오세요.”

소변을 받아야 하는 종이컵의 용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물 두 컵을 원 샷 하고 온 어린이들은 의자에 앉아서 신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나는 계속 밀려오는 종이컵 부대에게 소변 받는 법을 설명해야 했고, 소변을 어디에 버리는지 설명해야 했고, 소변이 안 나오면 물을 더 마셔보라고 권유해야 했다. (숨차요 헉헉)


“오줌이 안 나와요. 엉엉.”

급기야 한 어린이가 아무리 물을 마셔도 오줌이 안 나온다며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지만 뭐라고 해야 하기에 어린이 배 위에 손을 올렸다.

“선생님 손은 약손이다. 오줌아 빨리 나와라.”

진심을 담아 아이의 배를 문질렀다.


몇 분 뒤 아이는 찰랑찰랑 한 소변 종이컵을 들고나왔다. 그야말로 대홍수였다.


상황을 겨우 마무리하고 연구실에 돌아왔다.


“선생님 고생했으니 우리 커피 한잔해요.”


옆 반 선생님이 건네주시는 종이컵을 보는데 속이 울렁울렁했다.


당분간 종이컵과는 거리를 둘 예정이다.

 

나는야 환경 지킴이!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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