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터틀 키우기] 프롤로그
아침 7시 초등학생 터틀이의 일과가 시작된다.
아침에 잠을 깨는데 30분
침대에서 화장실까지 걸어가는데 10분
식탁까지 오는데 10분
5분마다 “빨리 일어나, 아침 먹자”를 외치던 엄마의 목소리는 거의 고함소리로 변한다. 하지만 터틀이는 듣고 있는지 아닌지, 그 속도는 빨라지지 않는다. 어제 늦게 잤냐고? 10시 30분쯤 잠들었으니 분명히 8시간 30분 넘게 잤다.
아침 먹는 시간 30분
옷 입는데 20분
양치질하는데 20분
결국 오늘도 지각이다. 단순히 아침에 학교 갈 준비 하는데 거의 2시간(!)이 걸린 것이다. 그것도 엄마가 옆에서 지켜보며 계속 채근한 결과다. 터틀이 혼자 그대로 두면 정지 상태로 멈춰서 학교 갈 준비가 진행되지 않는다.
드디어 가방을 메고 현관문을 나서는 터틀이 뒤로 엄마가 소리친다. “빨리 뛰어가! 늦었어”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사라진 후 엄마는 한숨 돌린다……
과연 이것이 터틀이의 아침 스토리의 끝일까? 터틀이를 보내고 소파에 털썩 앉았던 엄마는 벌떡 일어나 중얼거리며 겉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어제 비 온걸 깜빡했네” 터틀이의 학교는 걸어서 5분 거리. 엄마는 등굣길을 따라 두리번거리며 터틀이를 찾는다. ‘벌써 학교에 도착했을 리는 없는데.. 앗 저기 있네!’ 보도블록 옆 화단 쪽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터틀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이로써 지각은 확정이다 흑 ㅠㅠ
다다다다 뛰어간 엄마가 “터틀아 뭐해!!!” 소리치며 아침부터 참아왔던 등짝 스매싱을 날리려는 순간, 뒤돌아본 터틀이가 씨익 웃으며 나뭇잎을 내민다.
“이 달팽이 정~말 크지?”
“................!!!!!”
비가 내린 후 산 밑에 있는 아파트 단지는 달팽이와 지렁이 천지다. 터틀이가 등굣길에 달팽이와 지렁이를 발견하고 혼자 즐거워하다 지각한 것이 몇 번째인가…
엄마가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어금니를 꽉 문다. “터틀아 달팽이 볼 시간이 어딨어! 빨리 가야지!!!” 터틀이를 일으켜 세우며 같이 뛴다. 교문으로 들어가는 터틀이를 보고서야 엄마는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아침 9시에 벌써 몸과 마음이 파김치다.
‘천성적으로 느린 아이들은 그럴 수 있어. 크면 다 나아진다.’
‘달팽이 보다가 지각하다니 천진난만하고 귀엽네 ㅎㅎ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
‘에이 남자애들은 보통 다 그래 그냥 둬’
‘엄마가 성격이 급해서 느린 아이를 이해 못하는 거야’
터틀이를 키우면서 속 터져하는 나에게 주변에서 해준 말들이다.
사실 터틀이가 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나도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터틀이는 어릴 때부터 조용하고 행동이 느린 편이었지만 한글과 숫자 익히기에선 오히려 빠른 편이었다. 그래서 크면 약간씩 빨라지겠거니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터틀이의 느린 속도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우선 숙제를 실제로 하는데 뿐만 아니라 숙제를 시작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무슨 옷을 입을까, 무얼 먹을까 같이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들을 결정하는데도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꾸물꾸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양말을 빨래 바구니에 가져다 놓는데 한 세월이 걸리고, 먹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항상 식사 도중 음식이 다 식어버린다. 샤워할 때 그만 나오라고 재촉하지 않으면 한 시간 넘게 걸리고, 심지어 잠자리에 드는 것도 오래 걸린다.
터틀이가 숙제(특히 관심 없는 주제의 숙제)를 하도록 하는 것은 최고 난이도에 속한다. 계속 옆에서 지켜보면서 딴짓하지 못하게 하고 끊임없이 채근해도 보통 아이들보다 서너 배의 시간이 걸린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닌 초등학생 터틀이의 느린 행동은 주변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은 터틀이가 모든 일을 시작하는데 꾸물대며 과제에 신경을 안 쓴다고 하셨다. 질문에 대답하는데 오래 걸리고 말도 천천히 하는 터틀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안 하는 듯이 보여서 반항적이라고 오해받기도 했다. 터틀이가 게으르다는 지적도 받았고, 엄마가 일해서 생활 습관을 바로 잡지 못해서 그렇다고도 했다.
느려도 너무 느린 터틀이를 바로잡기(?) 위해서 터틀맘은 매일같이 재촉하고 화내고 좌절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지난 몇 년을 지냈다. 빨리하라고 소리 지르며 평생을 보내는 게 아닐까 고민하면서.
‘수퍼터틀 키우기’는 터틀이를 키우면서 겪은 좌충우돌 이야기를 거북이 같이 느린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과 나누고자 시작했다. 성격 급한 범생이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고 터틀이와 하루 종일 지낸 일상의 기록이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나 심리상담사 같은 전문 지식은 부족하고, 느림보 병(?)을 고치는 특효약이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육아 비법도 없다.
하지만, 낮에는 속 터지고 밤에는 눈물로 혼술하던 터틀맘이 ADHD 아들과 엄마의 현실 스토리를 담은 책 “Buzz”를 통해 크게 위로받은 것처럼 수퍼터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가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