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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터틀맘 Aug 13. 2020

2단계 뭣이 중헌디-  어쨌든 터틀이는 자란다

[수퍼터틀 키우기] 진단과 실천 사이 (3)

책만 읽다가 정작 터틀이의 말을 들어주는데 소홀했던 터틀맘. 터틀이의 불만에 이러면 안 되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뭣이 중헌디?

진단 기준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이,

(자폐나 ADHD는 혈액 검사나 뇌 스캔 같은 객관적인 진단 도구가 없다)  

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

(유전, 예방접종 부작용, 중금속 등 의견이 분분하나 결국 지금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지금 터틀이에게 그렇게 중요한가?


터틀이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제일 필요할까?

놀이치료와 진료는 일주일에 한 시간 남짓이지만 일상생활은 매일매일 계속이었다.


치료가 가능한지, 어떤 치료법이 있는지도 더 이상 공부하고 고민하기를 일단 멈췄다.

치료는 전문가에게

터틀이 키우기는 터틀맘이.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자. 터틀이의 불안도를 낮추고 안정감을 가지도록.

시험 범위가 정해진 학생처럼 터틀맘이 출발선에 섰다.   


[목표 1] 터틀이 말을 잘 들어주자

무릇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 마음을 이해하는 것의 첫 단추. 무슨 일이든 설령 이해가 안 될 지라도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겠지' 생각하며 터틀이 마음을 물어보고 들어주자. 터틀이가 말하는 속도가 아무리 느리더라도 중간에 자르지 말자.


(회사에서 항상 쓰던 '그래서 요점이 뭔데? So what?' 금지)


[목표 2] 터틀이가 친구들과 자주 어울릴 수 있도록 도와주자

터틀이가 사회성(social skill)이 우수해지도록 만들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른이 돼서 기본적인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연습시키자. 우선 친한 친구 한두 명 만들 수 있게 노력해보자.


(친구들 집에 데려오는 거 적극 지원. (오후에 외출하지 말고 집에 있어야겠군. 끙) 전학 와서 아는 엄마들 없는데 어쩌나.)


[목표 3] 숙제와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도록 연습시키자

터틀이가 일부러 안 하는 게 아니고 실행기능(executive function; 과제를 시작하고 끝내기, 다단계 지시를 기억하고 따르기, 옆길로 새지 않기, 계획하고 조직하고 스스로 확인하기 등)이 부족한 거라고 하니까 도와주자.


(한두 번 터틀이에게 얘기하다가 안 한다고 버럭 화내기 금지. 아니 이런 건 저절로 알게 되는 거 아니었나? 흑)


[목표 4] 칭찬과 애정 표현을 아끼지 말자  

우쭈쭈 폭풍 칭찬을 일삼자. 안아주고 쓰다듬고 뽀뽀하고 사랑을 표현하자.


(회사에서 유용했던 비판적 시각과 부족한 점 지적, 객관적인 분석 금지.

참고로 터틀맘은 접촉하는 걸 싫어해서 가족이나 친구와 팔짱 끼고 다녀본 적 거의 없음)




시험 범위에 목표까지 정하고

굳은 결심에 책임감을 불태우던 터틀맘.


삐-삐삐-삐-삐리릭

"터틀이니?"

"응"

"학교 잘 다녀왔어?"

"...응"

"배고파? 손 씻고 와. 엄마가 사과 줄게."

(터틀이 손 씻고 식탁 의자에 앉는다)

"오늘은 급식 뭐 나왔어? 괜찮았어?"

"(사과 먹으며)... 그냥"

"학교에서 재밌는 일 없었어?"

"(사각사각 먹고 있음)..."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뭐 했어?"

"(시큰둥)"

"왜, 무슨 일 있었어?"

"후~우"

"얘기해 봐, 터틀아"

"엄마, 질문은 하루에 하나만 해."

"!!!!!"


터틀이 말을 잘 들어주자? 말을 해야 잘 들어주지. 경청할 자세를 준비했더니 엄마를 귀찮아하다니, 요 녀석 봐라.


그러던 어느 날 터틀이가 오랜만에 말문을 열었다.

"엄마, 선생님이 이상해."

"(???) 왜?"

"말을 안 하고 혼내."

"(이게 무슨 소리야? 불길한 예감...) 선생님한테 혼났어? 뭐 하다가 혼난 거야?"

"있잖아.. 그... 글씨 쓰는.."

"글씨 잘 못 써서 혼났어?"

"아니이..글씨 쓰는 대회 같은 거 있잖아."

"아 경필 대회?"

"응"

"경필 대회 지난달에 한 거 아냐?"

"모르겠어. 한참 전에 했어."

"근데?"

"선생님이 글씨를 바르게 쓰라고 해서 잘 쓰려고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옆에 와서 빨리 내라고 하는 거야."

"(어이구 이 거북아) 시간 다 돼서 내라고 한 거야?"

"응 근데 난 몰랐지. 선생님이 뭐라고 해서 보니까 다른 애들은 다 했어."

"(으이구) 그럼 빨리 내야지."

"근데 선생님이 그거 한 페이지 가득 다 써야 한다고 했거든. 난 다 못 해서 쓰고 있는데 내라고 하니까 얼른 다 해야 하는데 생각하고 있었지."

"그래서 선생님이 뭐라고 하셨어?"

"선생님이 '낼 거야 말 꺼야?' 하면서 화난 목소리로 막 그러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니이. 선생님이 이상하잖아. 다 써야 한다고 했는데... 난 다 못 썼는데 빨리 내라고 하잖아!"

"(혈압 상승 시작)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혹시 말 안 하고 가만있었어?"

"몰라. 계속 쓰려고 했더니 선생님이 내꺼 빼앗아 가버렸어."

"(폭발 직전 심호흡) 후우...... 터틀아, 그럴 땐 '선생님, 다 못 했어요. 이것만 써서 낼게요' 말하고 얼른 써서 내든지 아님 '다 못 했어요. 그냥 낼까요?'하고 빨리 내든지 해야지."

"바르게 다 써야 한다고 선생님이 그랬단 말이야. 엄만 왜 나한테 그래!"

"그래, 선생님이 시작할 때 그렇게 말씀하셨을 거야. 근데 경필 대회를 하루 종일 할 수는 없거든. 한 시간 정도 경필 대회하고 그 담에는 다른 과목 수업을 하는 거야. 정해진 시간 내에 바르게 다 쓰라고 말씀하신 거야."

"(눈만 깜빡깜빡)..."    

"터틀아, 바르게 열심히 쓰는 것도 중요한데 다른 친구들이 어떻게 하는지도 봐봐. 주변에 다른 애들이 다 내고 혼자 안 낸 것 같으면 다 못해도 빨리 내야 하는 거야."

"아라~써~어. 나 좀 놀게."

 

아무리 터틀이를 이해하려고 해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다. 왜 그 상황에서 정지 상태로 말을 안 할까? 일부러 입을 다무는 게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당황해서 얼어붙은 건가? 근데 경필 대회가 끝난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이제야 불쑥 이야기를 꺼내다니. 도대체 왜 바로 말을 안 하는데??? 이제라도 말을 하니 다행인 건가? 이런 것까지 설명해서 가르쳐야 하면 터틀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내가 다 가르칠 수 있을까? 설명하고 가르치면 다 이해는 할까?


답답해서 속이 터져버릴 것 같고 터틀이 담임 선생님이 화내신 게 너무 이해가 갔다. 학교에서 저런 식으로 하면 반항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텐데... 선생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나? 경필 대회 한지가 언제인데 이제 와서 전화해서 말씀드리면 뜬금없고 이상하겠지? 전화한다면 뭐라 말씀드려야 하나? 나도 이해가 안 가는데 그래도 터틀이를 이해해달라고 부탁해야 하나?


터틀맘이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생각을 하는 동안 터틀이는 소파에 편하게 누워 곤충 책을 보고 있다. 우려와 걱정의 감정이 다시 분노로 바뀌는 찰나, 터틀맘의 핸드폰이 울렸다. 터틀맘 동생이었다.


"언니, 뭐해?" 한 마디에 봇물처럼 터진 하소연.


"애들 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기다려 줘야지."

"(열심히 하소연했는데 이 반응은 뭐지?) 뭐가 다 그래! 넌 몰라."

"언니, 친절하게 살살 달래 봐."

"나 원래 안 친절하잖아."

"ㅋㅋㅋ"

"어후~ 터틀이 지금도 소파에 누워있어. 왜 그리 눕는 걸 좋아하는지. 누워있는 거 보면 그냥 화가 나."

"그래? 난 우리 애들 누워서 인형 안고 딩굴딩굴하면 너무 귀엽던데."

"(허걱 이런 엄마도 있구나)...... 그래 너도 어릴 때 누워있는 거 좋아해서 내가 싫어했어."

"ㅋㅋㅋㅋㅋㅋㅋ"


느긋하고 상냥한 동생과 반대로 터틀맘은 성격 급하고 애교라곤 전혀 없이 담백한(?) 성격이다. 나름 개성이라며 본인의 성격에 만족감이 상당했는데 터틀이 엄마가 되고 나선 불리한 것 투성이었다.


친절하게 말하는 법 배우러 연기 학원이라도 다녀야 하나?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 주는, 터틀맘 동생같이 친절한 엄마를 만났다면 터틀이에게 훨씬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터틀이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내가 과연 해줄 수 있을까? 나는 터틀이에게 부적합한 엄마인가? 성격을 개조하거나 다시 태어나야 하는 걸까?


터틀이를 위해서 정해 놓은 목표들이 못하는 과목만 골라서 보는 시험같이 무겁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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