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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Jun 01. 2023

보이지 않는 노동

급식 노동자들의 폐암 산재 인정

 얼마 전 창원의 유명 생선 구이집 여 사장님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늘 길게 늘어 선 대기줄, 근처만 지나가도 입맛을 자극하는 고소한 구이 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자리에서 십 년은 가뿐하게 넘겼을 거란 추측이 가능한, 사장님 내외분과 함께 걸어온 시간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인테리어도 비결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을까, 생각하며 종종 방문했던 곳인데 사장님의 폐암 소식이라니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남자 사장님은 홀에서 서빙을 하셔서 몇 마디 나눈 적은 있지만 여자 사장님과는 일면식도 없었습니다. 식당 안에서 열심히 생선을 굽느라 밖으로 나온 적 없었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의사가 요리할 때 나오는 미세먼지가 폐암의 주범이라 했던 말이 스쳤습니다. 여 사장님의 폐암은 가게 밖까지 새어 나오던 연기 때문이었겠지요.


 ‘폐암 발병 원인의 80%는 흡연이지만, 20%는 조리흄을 비롯한 생활환경이 영향을 미친다. 조리흄은 요리할 때 발생하는 고농도 미세먼지와 매연으로 발암물질로 분류된다.’     


 생선구이와 폐암. 두 단어 사이의 인과관계는 기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지금껏 급식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폐암에 걸려도 산재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초등학교 전면 급식이 시행된 게 1998년이니까 벌써 25년. 그사이 병들고 숨진 노동자들이 적지 않았을 텐데 그 인과 관계를 증명하기가 왜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급식 노동자의 폐암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아 산재 인정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21년부텁니다.


 일터에서건, 집에서건 간에 장소를 불문하고 여성들의 노동은 늘 평가 절하되어 왔던 것 같습니다. 가사 노동이야 백번, 아니 한 만 번 정도 양보해서 경제적으로 환산되기 어려운 구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적어도 일터에서는 계약을 맺고 노동과 임금이 교환되는 것이 이치인데 급식 노동자들은 밥 하는 아줌마로 불리곤 했습니다. 실제로 2017년 당시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이언주 의원이 "솔직히 조리사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고 밥하는 아줌마가 왜 정규직화가 돼야 하는 거냐?"라고 말한 적이 있었죠.      

 

 요리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한 끼 식사를 만드는 것도 참 일입니다. 이 정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면 그냥 사 먹고 마는 게 낫다는 생각도 자주 들 정도입니다. 한 사람의 한 끼가 이러한데, 수 백 명의 끼니를 매일 챙기는 일은 어떨까요. 수십 킬로그램의 재료를 나르고, 튀기고, 볶고, 담는 일, 중노동에 가깝습니다. 민주노총 설문조사에 따르면 급식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근골격계 질환을 앓고 있다고 합니다.

https://www.khan.co.kr/national/education/article/202206231550011  

   

 정부는 폐 질환에 걸린 급식노동자가 속출하자 지난 3월에야 뒤늦게 환기설비 개선방안 등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경남교육청도 오늘, 2026년까지 도내 894개 학교 급식실의 조리실 환기시설을 전면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후드 칸막이를 설치하고 조리흄 발생을 줄이기 위해 인덕션과 오븐을 활용한 식단을 개발, 보급하고, 추가로 경력과 나이에 관계없이 급식실 노동자들의 폐암 검진을 지원하기로 한 겁니다.     


 물론 지금이라도 정부와 도교육청이 나선 것은 다행입니다만,  ‘한국 사람은 밥심이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라며 먹는 일이 이다지도 중요하다고 하면서 그 중요한 일을 해내는 이들의 노동은 왜 번번이 평가절하 당해야 했는지, 우리 사회의 이중잣대에 속이 울렁거릴 지경입니다. 언제부터 필수 노동이 그림자 노동과 동의어가 된 걸까요.


 서울의 한 중학교 급식실에서 8년을 근무하고 폐암 1기 진단을 받은 한 급식노동자는 “제가 일하는 급식실은 700여 명이 먹을 음식을 만든다. 환풍기가 돌아가기에 당연히 환기가 되는 줄 알았다. 조리 중 뿌연 수증기와 연기가 가득 차 답답했지만 학생들의 급식시간을 맞추기 위해 일했다”며 “시설을 빨리 고쳐서 죽음의 일터가 아닌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급식실이 되게 해 달라"라고 호소했습니다.


 내 몸을 병들게 한 곳인데 아이들에게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주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는 이 마음을,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부디 이들의 바람처럼 학교 급식실이 건강한 일터로 탈바꿈할 수 있기를, 나아가 보이지 않는 노동들이 그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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