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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Mar 13. 2024

파도에 몸을 맡겨

24년 3월

 

 마음에 큰 돌덩이 하나 앉은 기분으로 지냈다. 사람 들고나가는 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지만 위에 선배 하나 없이 모든 비를 내가 맞아야 한다는 생각에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다. 다 각자의 최선의 선택이고, 나라고 그가 처한 상황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지는 않지만 떠난 선배들에 대한 원망과 불합리한 상황을 묵과하는 조직에 대한 실망. 이런 복합적인 부정적 감정이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그런 속도 모르고 승진 일찍 하겠다며, 잘 풀린 케이스 아니냐며, 기회가 찾아왔다는 모 선배들의 이야기가 더 기가 찼다.


 프리랜서 채용을 했다. 자꾸만 우리 노동시장을 더 열악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일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수도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겠지. 최저도 안 되는 임금을 받더라도 기업 행사, 사내 방송 같은 일을 겸할 수 있고 학업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하다못해 대학원을 다닐 수도 있을 테니. 그렇지만 지역은 사정이 다르다. 그래서 직원을 채용해야 한다고, 대부분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많을 테니 생활 임금 이상의 처우를 제공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지만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그렇게 되었다.


 물론 조직에서 인정받으면서 중요 업무들을 하게 되는 기쁨도 있었다.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과 일 하는 행위 자체의 즐거움도 여전하다. 늘 좋을 수만은 없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지만 고통의 한가운데에선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주어집니까!’라며 신을 원망하게 되는 것 마저도 인생이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이러한 사정들로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낸 날이 적지 않았다.      


 최근에는 아이에 대한 생각을 자주 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내 생의 가장 큰 업적이 되지 않을까. 생명을 만들고 품고 낳는 일 전부가 마치 창조주의 능력처럼 느껴진 탓이다. 그 생각은 자연히 언젠가 아이를 갖게 된다면 꼭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로 흘렀다. 살아보니 세상은 복잡하고 어렵고 내 마음처럼 안 되는 게 더 많지만, 무언가를 소망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무척 즐거운 일이라고. 마음을 다 내어주고 싶은 정도의 깊은 사랑을 하는 일, 오늘처럼 볕이 따스한 날 공원을 걷는 일, 이 모든 것들을 나만 느끼기엔 너무 아쉽다고 해야 할까. 아이를 갖겠다는 마음은 내 삶에 대한 긍정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총선이 다가온다. 산단 특집에 이어 선관위 법정 토론, 개표 방송까지 일이 그야말로 휘몰아치겠지만 파도에 몸을 맡겨보려고 한다. 높고 거친 파도가 어쩌면 타기 더 좋은, 재밌는 파도일지도. 내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은 태연하게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것들에 힘을 쏟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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