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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싱지원 Apr 28. 2024

4월에 한 생각들

#1. 어떤 감각

 대개 깨달음은 특정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한가운데에서 얻어진다기보다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반추해 봤을 때 아주 희미한 한줄기 빛처럼 보이는 성질의 것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 아지랑이 같은 희미함은 글쓰기를 통해 비로소 선명해지는데 반해 어떤 감각은, 그러한 과정 없이도 그 자체로 강렬하다.

 

 #2. 미래에서 온 일기

 영화관/패밀리레스토랑 알바, 입시 학원 시간 강사, 신문사 인턴, 연봉 계약직 방송 기자, 프리랜서 아나운서, 정규직까지. 거의 모든 고용 형태를 겪은 나의 지난 20대. 그리고 노동자의 도시에 발령받아 입사 초부터 줄곧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우연이 나를 이 길로 이끌었다. 그 어떤 자격증이나 타이틀 보다도,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삶을 꾸려가고 있다는 게, 내 선택으로 삶을 채워나가고 있다는 게 나의 엄청난 자부심이다.

 사실은 합격증 받으면 쓰고 싶었던 글. 지금 내가 견디고 지나는 이 시간을, 가능하면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는 그 욕망이 불안을 만든다. 자주 불안하다. 그럴 때일수록 더 차분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을 해보자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3. 사랑 1

 매주 신림동 고시촌과 서울역을 오가며 빈말 없이 학원에 데려다주고, 모의고사 사이사이 자투리 시간에 함께 불광천을 걸어주고, 공부방에 예쁘게 깎은 과일과 따뜻한 차, 영양제를 담은 쟁반을 아무 소리 없이 놓고 가던 그의 행동들. 사랑이 보인다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이 행동들, 10여 년 전 수험생이던 내게 부모가 해주던 일들과 다름없다. 사랑은 제 각기 다른 모습이라지만 어쩌면 본질은 비슷한 게 아닐까. 부부란 무얼까... 서로의 부모가 되는 일은 아닐까. 보호자 서명란에 가지런히 적힌 그의 이름을 보면서 든 생각.


#4. 사랑 2

 어버이날을 맞아 일찍이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식사를 했다. 마음을 담은 용돈 봉투와 카네이션 화분, 그리고 나는 지수의 부모님에게, 지수는 나의 부모님에게 쓴 편지를 함께 전달했다. 약간의 자식 자랑, 어렵게 지냈던 그 옛날이야기, 교육관, 세대 갈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다행히 모두가 즐거운 자리였다.

 집으로 가는 차 안, 술꾼 둘을 상대하느라 지친 지수가 내 무릎을 베개 삼아 새근새근 잠자고, 운전하는 어머니와 조수석에 앉은 아버지가 나지막이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나는 창밖을 보며 네 분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랐다.

 야윈 아빠 얼굴이 내심 걸렸으나 아빠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담백하면서 동시에 멋지게 써낼 날을 고대하며 줄이기로 한다. 사랑은 때때로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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