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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글 Jan 17. 2022

4_이상한 문구점 아저씨

그 카메라로 나 좀 찍어줄 수 있어?

핸드폰 속 나의 추억 여행


나는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한다. 아, 정확히 말하자면 예전에 찍은 사진들을 들춰보는 걸 좋아한다. 예전의 사진을 보다 보면, 그때의 순간들이 생생히 기억이 난다.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 무엇을 했었는지 그때의 분위기 뿐만 아니라 그 날의 기분까지도.

그래서 그런가 나는 종종 핸드폰 속 사진첩 맨 꼭대기로 슈웅~ 올라간다. 천천히 스크롤을 내리며 사진을 보면서 지난날을 곱씹는다.


사진 뿐만 아니라 지난 일기를 들춰보는 일도 참 좋아한다. 나는 이런 걸 했고,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다 내가 하고, 다 내가 경험했던 것들인데도 생소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결국 내가 한 자그마한 일들이 모여 내 인생이 되는구나 싶다.



제주에 가면 사진 많이 찍어야지


워낙 사진도, 기록도 좋아하는 사람 인지라 제주 한 달 살이하면 사진을 많이 찍고 싶었다. 용량 큰 메모리 카드를 구입하고, 아름다운 영상도 담고 싶어 핸드폰 짐벌도 구입했다.

사진찍을 것들을 가득 담느라 늘 백팩매고 다님


대부분의 시간을 물에 있느라 많이 찍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늘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삼각대, DSLR, 핸드폰, 짐벌......그러다 보니 어딜가더라도 짐이 한가득 이었다. 이렇게 까지 해야할까? 싶었지만 아쉬움 하나 남겨두기 싫어 낑낑 거리면서 들고 다녔다.



벌써 제주에서 일주일이 지났다고?


제주에 온 지 일주일이 됐을 때였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길 줄 알았는데,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 사실이 너무나 놀라웠고, 아쉬운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제주에서 계속 살고 싶다. 돌아가기 싫다.’


하지만 나의 소박한 재주로는 제주에 살 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계속 제주에서 살 수 있을까 고민 하다가 로또를 사러가기로 했다.

‘로또 1등 되면 제주에서 계속 살아야지’

허무맹랑하지만 그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이런 말도 안되는 꿈이라도 이뤄지길 바라며 로또 판매 중이라고 쓰여있는 문구점에 들어갔다.



이상한 문구점


들어간 순간 여기가 문구점이 맞나 싶었다. 문구점 이라기엔 옷도 팔고, 기능성 속옷도 팔고, 복권과 담배도 팔고 심지어 신발도 팔았으니까.

문구점 안쪽에는 인상 좋은 남자 사장님이 계셨다. 나를 한참 보더니 관광객이냐고 물었다. 이렇게 카메라 매고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관광객이라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사장님은 한참 동안 표선 자랑을 하셨다. 여기만큼 조용하고, 바다가 아름답고, 가족끼리 지내기 딱 좋은 곳이 없다며.



아가씨, 그 카메라 사진 잘 나오나?


그렇게 한참 표선 자랑을 하신 사장님은 대뜸 내가 매고 있던 카메라를 가르켰다.

“아가씨! 그걸로 사진 찍으면 잘 나오나?”

내가 가지고 있던 카메라는 안 좋은 카메라도 아니고, 그렇다고 좋은 카메라도 아닌 딱 나 같은 카메라였다.

잘 찍진 못하지만, 잘 찍고 싶어서 고민 고민 하다 산 보급형 DSLR이었다.

마구 찍기에 부담 없는 카메라


“아, 이거요? 제가 잘 찍지는 못해서요. 잘 찍는 사람이 찍으면 잘 나오지 않을까요?”

사장님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카메라를 계속 바라보았다.


“그렇게 생긴 카메라는 다 잘 나올 것 같잖아~ 아가씨, 나 그 카메라로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어?”

“그럼요 찍어드릴 수 있죠”


예전에도 여수로 혼자 여행을 갔다가, 이 카메라로 사진 좀 찍어 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카메라, 좋은 카메라도 아닌데...... 나이 있으신 어른들이 보면 꽤 멋있어 보이나 보다.


아저씨는 어색한 미소와 함께 포즈를 취했고, 나는 열심히 왔다갔다 하며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필요 없어!


한 열 컷 정도 찍어드렸다. 사진을 잘 찍지 못하니, 어떻게 찍는게 좋을지 몰라서 한참을 찍어드렸다.


“잘 찍었나 모르겠네요. 연락처 알려주시면 제가 메세지로 사진 보내드릴게요”


그러자 사장님은 크게 손사래를 치셨다.


“됐어! 뭘 보내줘! 보내주지마!”


사장님의 말에 놀래서 잠시 벙쪄있었다. ‘보통 사진 가지려고 찍지 않나..? 왜 찍어 달라고 하셨지?’


“아..? 그러면 사장님 사진이 어떻게 나왔는지 보여드릴까요?”


사장님은 또 한번 크게 웃으셨다.

“아냐 아냐 아냐 됐어~! 안 봐도 괜찮아!! 열심히 찍던데 뭐, 잘 나왔겠지”


나는 이 상황을 알 수가 없어 눈만 또르르 굴렸다.


“그냥~ 아가씨 카메라에 찍혀보고 싶었어. 그리고 아가씨가 열심히 찍던데 뭐,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거야. 난 마음으로 받으면 충분해”


사장님의 단호한 거절에 어쩔수 없이 나는 인사를 드리며 가게를 나왔다. 그냥 멋있어 보이는 카메라에 찍혀보고 싶으셨던 걸까 아님 여행자였던 나에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걸까? 지금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진은 마음으로 찍고 마음으로 전달한다는 사장님의 말이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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