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기 전엔 가슴이 떨린다. 2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일상부터 거대한 세계를 담아낸 것이기에 알찬 모험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생기고 예쁜 캐릭터들의 로맨틱한 대사와 실제처럼 생동감 있는 동작은 마음을 설레게 하며 장엄하지만 아련한 배경은 상상 속의 추억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정작 영화가 마칠 때면 기억나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이 없다. 시간이 흘러 그 영화의 포스터를 다시 마주칠 때 마음속 어딘 가에서 영화 속 한 장면이 반짝 거리는 정도의 여운만이 있을 뿐이다.
미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장르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애니메이션은 캐릭터가 추구하는 가치와 그 가치를 쫓기 위해 내딛는 걸음을 중시한다. 캐릭터의 동기와 동선이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단위인 셈이다. 반대로 일본 애니에서는 두 인물이 가만히 눈빛 교환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는 흐른다. 인간의 심오한 내면을 중시하는 문화가 녹아들어 가 있다는 증거다. 그렇기 때문에 양 국가에서 만들어지는 애니메이션 영화 속 연출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흔히 미국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떠올리면 자존감 높고 모험을 즐기는 용감한 사람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에 세상을 낮게 보고 자신을 높이는 오만함을 상징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오해다. 현대의 미국인들은 현실의 벽을 실감하며 살아간다. 주위의 환경에 의해 자신이 쉽게 무너져 언제든 삶의 목표가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것인지는 몰라도 미국 애니 속 주인공들은 주위 사람들에게 쉽게 휘둘리고 나약해지는 면모를 자주 보여준다. 또한 악당을 한 없이 강하게 만들어 주인공의 자신감과 자존감을 손쉽게 무너뜨린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주인공의 표정은 다양해질 수밖에 없고 발걸음은 가볍고 불안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이 다소 평면적으로 연출될 수밖에 없다. 시대가 흘러 3D 애니메이션의 등장과 함께 평평한 배경들은 많이 사라졌지만 여전히 주인공과 세계관 사이에 또렷한 경계를 그어 사실상 스토리를 평평한 차원에 가두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릭터는 두꺼운 현실의 벽을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함에서 출발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로 하여금 미국 캐릭터들이 늘 자존감이 높다는 착각에 들게 한다.
의외로 한국에 있는 많은 애니메이션 팬들이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를 다 본 후 여운을 느껴 애니메이션 속 장면들을 그리워하는 반응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일본인들의 독특한 정서가 감동의 비결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감정을 대변하는 장면만이 그 비결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은 독특하긴 하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며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보다도 사회의 일부가 되어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니메이션 속에서도 현실과 친화적인 인물들이 많이 그려진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현실과 나 사이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어떤 형태로든 존재한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스토리를 쓰기 위해서 주인공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와 자아성찰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서 실현하기 힘든 삶의 태도를 반영한 것인지 몰라도 일본의 애니메이션의 엔딩은 주인공이 자신을 발견함으로 결론이 나지 않고 여전히 의문을 품은 채 크게 바뀌지 않는 인생을 이어가겠다는 암시로 끝을 맺게 된다. 그래서 영화가 초반부 장면처럼 일상적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지점이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여운을 느끼는 지점이다. 큰 모험을 마치고 일상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영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우리들의 심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사람들이 국산 애니메이션을 접할 기회가 부족해서 두 국가의 연출 양상이 독보적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미국과 일본 이외에 애니메이션 시장이 발달된 곳이 없으니 한국만의 애니메이션의 특징이라는 것은 만들어지기 힘들다고 본다. 어느 나라에서든지 그곳의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은 미국 애니를 닮거나 일본 애니를 닮아갈 것이다.
애니메이션의 매력은 애니메이션 제작의 한계에 달려있다. 이게 연극이나 뮤지컬 무대의 매력과 비슷한 것이기도 한데 비좁은 팔레트를 연극 무대 배경으로, 애니 캐릭터를 연극배우로 여겨서 비교해보자. 연극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은 배우들에게만 시선이 가지 않고 무대 데코레이션도 함께 보며 상황을 해석한다. 이때 무대의 양쪽 끝을 보면 그곳이 세계의 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무대 속 배경만이 연극 세계관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장면 교체를 통해 기존 배경과의 연속성을 체감한다. 애니메이션도 마찬가지다 한 장면의 배경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중요한 오브젝트를 제외한 나머지 사물들은 형편없게 그린다. 이는 애니메이션이 유사 현실임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실체감은 없어도 원근 효과로 공간감을 형성하여 우리에게 아늑함을 느끼게 해 준다. 그러나 많은 제작사들이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돌파하여 극도의 현실감을 제공하려고 한다. 결국 애니메이션이 실사영화와 고사양 3D 그래픽 게임과의 차이가 모호해져 가고 있다.
나는 가끔 어릴 적 장난감 성을 조립하며 놀던 때를 상기한다.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걸 알면서도 현실의 성보다도 더 멋있게 생각했다. 단순한 블록 주제에 실제 벽돌만큼의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그게 진심으로 탄생한 결과물일 때 무척 행복했다. 우리의 마음속 현실은 실제 현실보다 어설프기 때문에 배경을 극 현실적으로 묘사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람의 마음에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에 불과할 때 아름다운 것이다.
손그림 같은 옛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어린 시절의 추억이 정신적 자산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