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eseul Cho Dec 18. 2018

세 번째 인터뷰: 비주얼 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

SAP @ Silicon Valley 김희준 디자이너님

문과생이 만나 본 실리콘밸리의 비주얼 디자이너:

SAP 김희준 Senior Visual Designer & Illustrator

<Illustrated by. 김희준>


독일의 시가총액 1위 기업 중 전세계 190개국 29만 6000개 이상의 고객 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전사적 자원관리 프로그램 ERP와 공급망 관리 프로그램으로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요. 소프트웨어계의 강자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또한 이 회사의 프로그램을 사용합니다. 감이 좀 잡히시나요? 바로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SAP입니다.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두고 있는 SAP에서 현직자 분과의 인터뷰 만남을 고대하던 중, 시니어 비주얼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 김희준님을 만나 뵙게 되었습니다.


희준님, 안녕하세요. 바쁘실 텐데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연락 드린 실리콘밸리 무역관 인턴 조예슬입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도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 보다는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느낌으로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사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의 디자이너 직군에 대해 잘 모르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주로 어떤 일을 맡고 계신가요?

네, 아무래도 개발자나 엔지니어 직군이 높은 편입니다. 저는 현재 SAP의 클라우드 기반의 구매조달 비지니스 솔루션을 제공하는 서비스들의 비주얼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현재 제가 하는 일은 SAP에 들어가는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하는 일인데요.

각 프로덕팀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만든 디자인을 제가 검토하고 비주얼 디자인을 최종적으로 리뷰 해서 개발에 들어가게끔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또 전체 SAP 브랜드의 광고와 제품에 쓰일 Brand & Product illustrator 으로도 일을 하고 있습니다. 


<SAP내 서비스 디자인>


그렇군요. 샌프란시스코에 갑작스럽게 오시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학부시절에 유학이나 이민에 대한 생각이 있으셨던 건가요?

아니요, 저는 학창시절부터 유학이나 이민에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2010년 12월에 정말 하루아침에 이곳에 오기를 결정하게 되었어요. 우연하게 듣게 된 Tony Bennett 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라는 음악을 듣고 음악 속에 있는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샌프란시스코에 오는걸 결심하게 되었고 그 다음달인 2011년 1월에 미국에 오게 되었어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너무 좋아서 샌프란시스코에 계속 살고 싶어졌고 디자인을 처음으로 배우기를 결심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 여기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게 되었고 지금은 이민자로 이렇게 정착해서 살고 있네요.


혹시 희준님은 어떤 학창시절을 보내셨는지 어떤 학생이었는지 이야기를 해주실  있으신가요

일단 이야기를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고등학교 때 공부보다는 그림에 관심이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하고 싶지 않은 공부에 대한 압박이 항상 심했었고, 결국 고등학교 2학년 첫 학기 중간고사 때에는 OMR카드를 도화지 삼아서 그림을 그렸고 다시 제출하라는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림을 그려서 제출을 했어요, 반항심이 들었다거나 한 건 아니었는데 그냥 그 때는 공부대신에 그림을 하고 싶다는 제 표현을 그러한 방식으로 한 것 같아요. 


결국 학교에서 정학 처분이 내려지더라고요. 그래서 과감하게 중퇴를 결정했어요. 그런데 막상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도 매일 매일 반복되다 보니 너무 지루하더라고요. 그렇게 방황을 1년 가까이를 하다가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고 그림 쪽 재능을 살려 미대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검정고시를 준비해서 수능을 치기까지 주변의 시선이나 걱정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학생 시절부터 굉장히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 미대 진학 후에는 전공생활이 잘 맞으셨나요?

두려움은 항상 많았어요. 그냥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을 벗어나려고 했었어요. 


제가 전공한 미대 쪽이 순수미술이에요. 미대 신입생 때는 너무 재미있게 그림을 그렸었는데 1학년 마치고 군입대를 했고 2년이 지난 후 다시 복학한 뒤에는 돈도 벌면서 그림을 하고 싶었어요. 미술학원 강사, 호프집, 카페, 뷔페 등 알 바를 하다가 뭔가 새로운 일이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모은 돈과 대출을 받아 23살에 동네에 조그만 피자집을 창업하게 되었어요. 바로 옆에 작은 그림 작업실도 만들게 되었고요.



피자집이요? 대학생 신분으로 창업이 가능하셨나요? 정말 말 그대로 학생 사장님이셨겠어요.

네. 지금은 꽤 유명하지만 그 당시 정말 이름이 없었던 소규모 피자 브랜드의 몇 안 되는 지점 하나를 창업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린 나이에 장사를 쉽게 보고 1년 정도 생각하고 하게 된 일이 꽤나 운영이 잘 되면서 4년 가까이 계속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여유도 시간도 없었어요. 작업실은 그냥 친구들 아지트가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인생이 행복해 지기 보단 매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었고 피자장사를 그만하고 싶었어요. 


말씀을 들어보니 이 와중에 미국행을 결정하셨을 것 같은데요. 새로운 일을 찾아 떠나신 건가요? 하하

맞아요. 이 때 그 노래를 듣고 미국행을 결정하게 되었고 또 마침 피자집을 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서 가게를 다 정리하고 샌프란시스코로 여행하는 마음으로 떠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 웃기지만 정말 그 때 ‘아 샌프란시스코에 가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즉흥적인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일을 해야겠다 나 무엇인가 배워봐야겠다 등 어떤 거창한 계획이 있던 건 전혀 아니고요. 그냥 좀 쉬고 싶다는 마음이었죠. 


그 동안 모아둔 돈으로 정말 갑자기 연고 하나 없는 샌프란시스코에 오게 됐습니다. 이곳에서 친구도 사귀고 여러 가지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조금 더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Academy of Art University라는 학교에서 디자인전공으로 석사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에서 석사 과정은 어땠나요? 학부 전공과 다른 전공을 공부 하셨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한번도 해 본적이 없는 분야를 공부해야지 하다가 결국 디자인 전공을 선택했어요. 하하.  피자집을 하면서 제가 직접 전단지 디자인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시초가 되어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항상 컴맹이라 불려서 포토샵도 다룰 줄 몰랐던 제가 지금 디자이너 일을 하고 있다고 하면 놀라는 친구들이 꽤있어요.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이후에 학교 안에서 주어진 시스템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대한 여러 일을 경험해 보고 싶었고 인턴십 프로그램을 지원했고 덕분에 감사하게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에 위치한 디자인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경험을 쌓았습니다. 큰 회사는 아니었지만 크고 작은 다양한 디자인 일을 경험하게 되었고 지금 제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된 셈이죠.


< Illustrated by. 김희준>


처음 일을 맡으셨을 때 영어에 대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의외로 이 곳 실리콘밸리에서 엔지니어와 디자이너 분들이 처음부터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시더라고요.

영어에 대한 두려움은 처음 미국을 온 순간부터 가장 컸었고 지금도 영어를 하는 부분이 저에게는 가장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일을 하면 할수록 제 디자인과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아마 미국에 20년을 더 있는다 해도 항상 공부를 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정말 부딪혀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이론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 외국인과의 의사소통을 두려워하는 것이, 실제 일을 하고 부딪혀가며 배우는 것과는 상상 이상으로 다른 일이거든요. 저는 일단 영어나 일이나 어떤 부분에서든 먼저 시도를 해보고 넘어지다가 조금씩 습득해나가는 방향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시도하시는 것에 거침없으신 것 같아요. 저는 조금 계획 된 길로 가려는 성격이 강해서 희준님 이야기가 존경스럽게 느껴져요. 에이전시와 경험을 쌓으시고 이후 SAP는 따로 지원을 하신 건가요? 실리콘밸리는 리퍼럴을 통해 오퍼 받는 경우도 굉장히 많다고 하던데요.

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리퍼럴을 받아 인재를 추천 받는 편이죠. 저 같은 경우에는 스카우트의 느낌이 강했어요, Facebook, Pixar 등 에이전시의 큰 고객들 중의 하나가 SAP였는데 제가 그 회사의 일들을 많이 맡아서 했었어요, 그러던 중 SAP의 한 디자인팀에서 저에게 팀에 조인하라는 Offer를 주었고 저는 이직을 하게 되었어요. 항상 SAP로 출장을 왔을 때 여기 분위기를 보고 나도 이곳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거든요. 


비자 관련해서 조금 같이 말씀 드리자면, 저는 H1B를 거치지 않고 학교 졸업하자 마자 바로 영주권을 취득한 케이스에요. 사실 많은 학생들이 미국 비자 취득에 대해 걱정하기도 하고, 또 실제로도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정말 어떤 절실함을 가지고 일을 진행하다 보면 어느 정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같은 경우도 비자에 관련해서 정말 문외한이었지만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영주권 취득이 가능할지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조사했고, 제가 정말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는 부분을 어필해서 일을 진행 해왔었고 영주권 부분에 있어서 빠르게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학생 때부터 일을 해왔던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졸업과 동시에 바로 영주권 수속을 밟을 수 있도록 스폰서가 되어주었어요. 


<@SAP Silicon Valley>


맞습니다. OPT비자의 경우 회사에서 스폰서링을 해주지 않으면 연장이 어렵죠. 그런데 H1B를 거치지 않고 영주권을 취득하셨다니 정말 회사에서 탐나는 인재이셨나 봐요.

하하. 그렇다기보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능력이 있던 것이 중요한 작용을 한 것 같아요, 에이전시의 고객회사들 에게도 저는 그림을 그리는 디자이너라는 타이틀을 불러줬고 실제로 그림이 이용되는 디자인 일들은 제가 전담해서 했었어요.  저도 그림 그리는 일이 가장 자신이 있었고 또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지금 일하고 있는 SAP에서도 유일하게 그림으로 작업을 계속하는 디자이너로 인식이 되다 보니 관련된 일들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조금 더 가치를 알아주는 것 같아요. 


지원하는 직군에 연관된 능력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나는 이런 장점을 가지고 있고 내 이런 장점이 이런 식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거라 식의 어필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떤 식으로 제 능력을 활용해서 어떻게 협업할 지를 고민하기도 하고, 남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에 디자인을 접목하는 부분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런 부분을 회사에서도 좋게 봐준 것 같아요. 


아직 제가 완벽하게 익숙하지 않은 분야에 대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창의적으로 생각하기가 조금은 힘이 드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방면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일을 바라보시는 것 같아요. 혹시 지금 미국행을 막 결정하려는 청년들이 있다면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 있나요?

많은 것을 도전해보기를 추천 드려요. 그 일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인지 정말 중요한 일인지 내가 잘 할 수 있는지는 한번 저질러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는 것 같아요. 당연히 처음부터 일이 완벽하고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을 확률은 90퍼센트 이상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해보고 넘어졌다가 다시 방향을 틀게 되더라도 자신이 그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있었던 주변의 우려와 나의 두려움, 걱정에 비해서 그렇게 나쁘지 않은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 같고.. 또 무엇보다도 자기가 정말 선택한 것을 할 때에 훨씬 긍정적이고 활동적인 에너지가 나오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살면서 주변에서 정해준 방향과 선택 속에서 그냥 참으면서 살아갈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슬픈 일이죠.  


또 제 주변에서 미국행에 대해 고민상담을 요청하시는 많은 분들이 어떤 결정에 있어서 많이 두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너무 많은 계획을 하고 생각하게 되면 그 선택에 있어서 오히려 더 두려워 지고 결정하는 게 힘들어 지는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걱정에 집중하기보단 마음을 비우고 하고싶은 것에 집중하기를 추천 드려요. 저도 크게 계획하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작 흘러가는 노래하나 듣고 이곳에 오기를 결정하게 되었고, 만약 샌프란시스코에 왔다가 상상했었던 것 보다 별로였다면 몇 달 만에 다시 한국에서 또 하고 싶은 새로운 것을 찾았을 거에요.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인터뷰 영상도 촬영해 주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스크립트를 통해 이 글을 읽는 많은 분들이 해외 취업에 한발자국 더 용기를 내는 계기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www.instagram.com/kenysketch/



Interviewed by. 조예슬

KOTRA 실리콘밸리 무역관

K-Move 센터



작가의 이전글 J1 인턴 비자 준비는 국내vs.해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