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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letterpot Nov 25. 2021

완벽주의 탈출법

Listen to your mind

많은 순간, 완벽주의적인 성향이 나에게 독이 되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계속해서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지 못할 거라면 아예 시작도 하지 않았다. '다음에 제대로' 해내자는 생각으로 해야 할 일을 미루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내가 만든 작은 우물 안에 갇혀 있었고, 그 세상이 전부라고 믿게 되었다. 그 작은 우물에서 안전하게 뛰어다니며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물 안에서의 안전한 점프도 점프였기에, 나는 완벽주의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대학교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는 나와 정반대였다. 그녀는 스스로를 검열하느라 해야 할 일을 못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복잡한 일도 그녀 앞에 가면 가벼워졌고, 별 거 아닌 게 되었다. 나는 그게 참 신기했다. 

그때까지 내 세상에선 모든 일이 쉽게 흐르는 법이 없었다. 작은 일도 심각하게 걱정하며 여러 각도에서 그 걱정을 조각조각 들여다보았다. 스스로가 너무 피곤했지만 그렇게 살지 않는 법을 알지 못했다. 


원래 반대가 끌린다고 했던가. 내가 첫눈에 그녀를 알아본 이후 나와 그녀는 10년 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서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조금씩 닮아갔다. 같이 살고, 함께 수많은 여행을 떠나고 돌아오며 나는 그녀에게 삶의 태도를 배웠다. 1g의 불안은 1g으로만 대하는 법을 알게 되었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나는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전하는 코치가 되었다. '건강'이라는 말에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내가 만난 이들은 자신의 삶을 잘 꾸려가고 싶어 하는, 건강하게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어디에서 발휘되느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누구나 완벽주의자가 되는 지점이 있었다. 


특히 많은 사람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초기에 완벽주의자가 되곤 한다. 식단은 이래야 하고, 운동은 몇 시간을 해야 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의 목록들을 마음속에 줄 세워 놓는다.



부지런한 성격의 한 수강생이 기억에 남는다. 그의 하루는 매일 아침 일어나 To do list를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꼼꼼히 하루를 계획하고, 이 시간표를 빈틈없이 따라가는 것이 그에겐 아주 중요했다. 문제는 그가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그는 많은 유튜브 영상과 블로그 글들을 정독하여 식단 계획과 운동 루틴을 짰고, 이 모든 것을 기록할 다이어트 노트도 마련했다. 


하지만 우리의 일상은 늘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그의 저녁이 샐러드로 계획되어 있는 오늘, 갑작스러운 회식이 생겼다. 찝찝한 마음이었지만 한 잔 두 잔 술이 들어가다 보니, 어느 순간 그의 마음에는 '에라, 모르겠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미 충분히 배가 불렀지만, 맛있는 안주 앞에서 수저를 내려놓기란 원래 힘든 일이다. 잔뜩 취하고 배부른 채로 집에 돌아와 당연히 그날의 운동도 거르고, 그다음 날도, 그 다다음날도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하나라도 계획을 지키지 못하게 되면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는 것이 완벽주의자의 다이어트이다. 그들은 노트에 빈칸이 생기는 경우를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스트레스는 또 다른 일탈을 만들고, 어느새 단단히 쌓아 올렸던 다이어트는 모래성이 되고 만다. 


어떻게 하면 제대로 잘하려는 마음이 오히려 브레이크가 되는 상황을 막을 수 있을까?


내가 아는 답은 단 하나, JUST DO IT. 

그냥 하는 것이다.


운동을 못 하게 된 날은 자기 전 10분 스트레칭이라도 하면 된다. 과식 한 날은 그다음 끼니를 조금 더 가볍게 챙기면 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그런 날들이 쌓이는 것이 완벽주의자에겐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거에 내가 그랬듯, 그들은 언제나 완벽한 상황이 되기를 기다린다. 완벽한 상황에서 시작하여 완벽한 끝을 맺고 싶어 한다. 하지만 사실 그 어떤 일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완벽은 환상이다. 


이 환상에 더 심하게 집착할 경우,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된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들은 못하는 것이 싫어서 아예 시작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5분 지각할 상황이라면, 아예 결석을 해버리고 마음속으로 이를 합리화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나는 잘 해내야 해, 완벽해야 해"라는 생각은 자신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렸고, 모든 일이 무거웠던 그때의 내가 그제야 이해가 갔다. 스스로가 늘 부족하다고 느끼기에, 더욱더 증명하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 하지만 어떤 성취든 자신을 갉아먹는 불편과 불안, 혐오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결과와 타인의 판단에 무게를 두면서 과정 속 자신의 노력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나는 부지런한 그가 다시 일상의 리듬을 회복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이야기했다. 기준을 당신 안으로 가져와서 당신이 해낸 것들에 집중해보라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몇 kg를 빼는 다이어트가 아닌 자신이 만들어놓은 틀을 깨고, 그 안의 나를 마주하는 연습이라고.


오늘 운동을 못했어도 아침을 챙겨 먹으려는 노력을 했다면, "운동 안 했네, 망했다"가 아닌 "평소에 늦잠 자느라 아침 잘 못 챙겨 먹는데, 오늘은 아침 챙겨 먹어서 점심도 적당히 먹었네. 내일은 아침도 챙겨 먹고 운동도 해봐야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누군가에겐 너무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완벽주의자들에겐 그렇지 않다. 그들은 잘한 일은 당연한 것이니 흘려버리고, 못한 일은 두고두고 곱씹으며 마음에 담는다. 기준의 엄격함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부족함을 확대하고 용납하지 않는다.



작가 김연수는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시작하기 완벽한 때는 없다. 조금 더 준비된 모습도 필요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마음먹은 일이 무엇이든 지금 있는 그곳에서 시작했으면 한다. 때로는 무기력이, 때로는 인정 욕구가, 때로는 두려움들이 완벽주의의 탈을 쓰고 당신을 막아설 것이다. 그럴 땐 그저 걸음을 내딛으면 된다. 환상이 사라지길 기다리지 말고, 걸음을 내디뎌 그 탈을 벗겨내 본다면 당신도 알게 될 것이다. 언제나 아주 작은 한 걸음이면 충분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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