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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lowletterpot Dec 02. 2021

감정을 음식으로 다루지 않는 연습

Listen to your mind

가짜 배고픔임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게 될 때가 있다.


생각대로 일이 안 풀리거나, 해야 할 일이 왕창 쌓여 있거나 또는 여유시간이 많아 지루할 때 등등. 사람마다 다르지만 특히 나는 갑자기 생기는 시간에 약한 편이었다. 미리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이 취소되거나 바쁠 것이라 예상했는데 한가한 날이면 어김없이 음식을 찾았다. 냉동실에 오래 묵혀둔 떡도 이때 꺼내 먹고, 주섬주섬 계속 부엌과 방을 왔다 갔다 하며 무언가를 갈망했다. 제대로 밥을 안 먹어서 그런가 하며 밥을 차려 먹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배가 아무리 그득해도 시간이 있다면, 어떤 것이든 더 먹으며 그 시간을 채우려 했다. 


고치고 싶은 습관이었기에 이 방법, 저 방법 시도해보고 전문가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정작 솔루션 앞에서는 '내가 정말' 이 습관을 고치고 싶은지 머뭇거리게 되었다. 왜냐면 나는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붕 뜬 시간을 알차고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타임 킬링용 콘텐츠를 보며 주전부리를 먹는 시간이 사실은 반가웠다. '하면 안 되는데..' 하는 것들은 어째서 늘 재밌는 것인지 같은 패턴을 보이는 스스로가 막막했다. 


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우리가 음식을 찾게 되는 것(끼니때를 제외하고)은 많은 경우, 우리 앞에 놓인 감정을 회피하기 위해서이다. 압박감, 스트레스, 지루함, 화남, 짜증, 슬픔, 우울 등 부정적인 감정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우리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음식을 입에 넣게 된다.




내가 조금씩 지루한 시간을 음식으로 채우지 않게 된 것은 명상을 하며 배운 '다정한 호기심'의 개념 덕분이었다. 어떤 호기심은 무례하고, 어떤 호기심은 날카롭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례하지도 날카롭지도 않은 다정한 호기심이다. 다정한 호기심은 마음만 먹으면 우리 주변에 머무른다. 나는 내가 어떠한 순간에 약해지는지 관찰했다. 이때 습관적으로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않기 위해 그날의 상황과 감정을 기록해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습관에 관한 연구들에 따르면 습관을 만드는 신호는 대부분 아래 다섯 가지 중 하나에 속한다고 한다.


습관 발동 시간

습관 발동 장소

습관 발동 직전에 들었던 기분이나 생각

습관 발동 직전에 같이 있던 사람

습관 발동 직전에 한 행동


일탈의 순간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숨겨진 감정을 알아차리고 여기에 다정한 호기심을 더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경계하고 있는 습관이 발동했을 때 이 기준들을 참고하여 기록을 남겨두는 것은 당장의 실수는 막을 수 없을지 몰라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단순히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식을 먹는 것으로 감정을 해소하는 것은 자신을 다치게 하기 너무 쉽기 때문에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그리고 그 필요성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판단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코칭을 한 회원 중 한 분은 어린아이를 육아하고 있는 전업 주부이셨다. 그분은 출산을 하며 체중은 자연스럽게 내려왔는데,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며 스트레스를 음식으로 풀게 된다는 고민을 갖고 있었다. 낮에는 식사를 거르고, 아이가 잠들고 난 후 늦은 밤에 맥주와 과자를 먹는 습관이 생긴 것이다. 매일 술을 먹는 것이 좋지 않다고 인지하고는 있지만 외출도 어렵고, 제대로 된 숙면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녀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먹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랬듯 그녀 역시 이 습관을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포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맞아요, 제가 잘 알죠. 나는 그녀에게 다정한 호기심으로 스스로를 관찰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한 주동안 그녀는 먹은 시간, 먹기 전과 후의 기분,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무엇을 하며 먹었는지를 기록했다. 그리고 많은 양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저녁에는 과자나 배달 음식 등, 자신의 노력이 필요 없는 음식을 찾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먹기 전에는 주로 짜증이나 고생한 자신에 대한 보상 심리가 강하게 들었으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자 먹었지만 먹고 나서 기분이 긍정적으로 전환된 날은 금요일 딱 하루뿐이라는 것도 관찰할 수 있었다. 금요일은 그녀가 의지를 발휘하여 맥주의 양을 조절한 날이었다. 


그녀는 매일 똑같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던 자신의 기록을 보며,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정한 호기심으로 들여다보았다. 단순히 맥주와 안주일 수도 있고,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기분일 수도 있으며,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성취감일 수도 있고, 지루한 하루의 마무리를 자극적으로 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다. 꼭 한 가지가 아닐 것이며 정답이 있는 문제도 아니다.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한 주의 관찰로 모든 것이 변하는 마법이 일어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 함께 앞으로 육아 퇴근 후 긍정적인 기분이 필요할 때 무엇을 해야 할지 다양한 방법을 찾아나가기로 했다.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기분이 필요하다면 가족 구성원과 저녁 식사 당번을 정하거나, 밀프렙(meal prep)을 시도해볼 수 있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는 성취감이나 지루한 하루의 마무리에 자극이 필요하다면 매일 저녁 운동하는 루틴을 만드는 것이 도움이 된다. 


마음의 빈틈은 음식으로 메우려고 하면 점점 더 커진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내가 고치고 싶은 습관을 관찰하고, 그 속에 숨겨진 열망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체중을 줄이기 위해 습관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고치면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살이 빠져나간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사실은 나의 습관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정한 호기심으로 실수하는 스스를 바라보자. 그리고 계속해서 기회를 주고 또 주자. 한번에 완벽히 바뀔 것이라는 기대는 내려놓아야 한다. 나 역시 지금도 천천히, 아주 조금씩 감정을 음식으로 다루지 않는 연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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