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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민주 Dec 14. 2024

진짜 야경은요, 사람이 드문 곳에서 봐야 해요! 둘이!

#22 베를린~프라하 D+20


구체적인 여행 계획은 없어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했던 부분이 있다면 바로 위치다. 이틀 전, 드레스덴으로 출발할 때에도 숙소에서 5분 거리에 터미널이 있었기 때문에 이른 새벽에 나올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늦은 아침에 프라하행 버스를 탔겠지만 이번에는 일정을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프라하행으로 가는 버스는 오전 7시 출발. 미리 짐을 싸두고 살금살금 나가는 길. 전날 스치듯 만난 룸메이트는 퇴사를 하자마자 베를린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고 했다. 퇴사사유를 묻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머리를 짚으며 내게 말했다.


“뭐, 다 사람 문제죠, 뭐.“


그녀는 병원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태움이 있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화를 냈고, 나중에는 눈물이 났다. 우리는 밤새 회사에 대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늦은 시각까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생각하는 면이 비슷해 성향을 물어보니 내가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ENTJ 성향이란다. 그 친구가 했던 대부분에 생각에 공감이 되어 속상하면서도 조금은 위로가 되었던 것 같다. 때로 여행은 사람 때문에 조금 더 머물고 싶어지는가 보다. 그날 베를린을 떠나는 게 어찌나 아쉽던지.



그러나 프라하에 도착하자마자 생각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프라하의 첫인상은. 끄덕임. 아, 그래서 다들 ‘프라하’ 하는구나, 싶었다. 프라하는 거리의 풍경만 보더라도 숨을 헙, 하고 멈추게 만드는 도시였다. 파리가 낭만에 물들어 있다면, 프라하는 낭만에 취해 있는 도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프라하에 머무는 것이 되려 힘들었다. 너무 연약하고, 낭만적으로 보여서.


캐리어 없이 여행을 시작했기 때문에 한 손에 가득 짐을 든 채 거리를 걷는데 터미널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배시시 웃음이 났다. 도시의 첫인상은 끝까지 비슷한 편인 것 같다.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분위기. 프라하의 첫인상이 그랬다. 특별하거나 대단히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 아닌데 어쩐지 포근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여유로움이 가득한 곳. 사랑에 빠지기 쉬울 것 같은 곳. 그곳의 분위기가 그랬다. 베를린에서 프라하로 넘어오면서 너무 분위가 달라져서일까. 처음엔 그 낯간지러운 느낌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또 걸렸던 것 같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늦은 점심을 먹고 나도 1시가 되지 않은 시각. 남은 시간 동안 무얼 할까 둘러보는데 야경 투어가 있단다. 조금 몸이 힘들긴 했지만 일찍 온 김에 뭐라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일 예약이 가능한지를 물어보는데 곧바로 돌아오는 대답. “물론이죠!”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자,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도시의 분위기가 가장 크게 휙휙 바뀌는 곳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럽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에 가장 근접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리고 프라하는 역사책에서나 볼법한 그 유명한 인물, ’카를 4세’의 동상과 카를교가 있는 곳이다. 작은 도시였기 때문에 실은 큰 기대가 없었다. 그저 발레 공연을 조금 보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시간을 보낼 생각이었다.



트램을 타고 강을 건너 프라하성 근처의 골목골목을 둘러보며 투어 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카프카 뮤지엄을 들리고, 근처의 쿠키샵에서 시간을 보내고, 마침 카를교 근처에 마켓이 크게 열려 저녁도 해결하고, 길거리 공연도 보고, 남은 시간에 카페에 앉아 글을 몇 편 썼다. 저녁 시간이 되어 투어 장소로 집합하는데 멀리서봐도 내향성이 풍겨오는 가이드쌤이 수줍게 인사를 한다. 말없이 나눠주는 수신기를 모두들 말없이 착용하고 걷는 길. 가이드쌤은 구글맵에도 없는 공원으로 한밤에 우리를 끌고(?) 간다. 사람이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 처음엔 조금 당황했다. 내가 지금 이 길로 가는 게 맞는가? 어쩐지 투어가 저렴하다 싶더니, 혹시 이상한 곳으로 가는 건 아니겠지? 심지어 가는 길이 가파르기까지 해서 이 낭만적인 곳에서 무슨 밤 등산을 하나 싶기까지 했다.



”프라하는 야경을 봐야 하는 도시에요. 사람들은 프라하성 쪽에서 야경을 많이들 보지만, 여기 동네 사람들만 아는 야경 맛집이 있죠. 여긴 동네 사람들도 잘 안 다녀요. “


다들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조심 따라가는데 선생님의 한 마디에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로 강아지 한 마리도 다니지 않는 길에 그녀를 따라 15분 정도 더 걸으니 나오는 탁 트인 풍경. 다음날 많은 높은 곳을 올라봤지만 그날 밤에 보았던 풍경만큼이나 시원하게 보인 곳이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한 밤의 프라하성과 시내 전망은 참 예뻤던 것 같다. 그동안 보았던 수많은 야경과 전망 중에 최고의 풍경. 그러나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를 플래시에 의지에 걷는 게 맞나 싶은 즈음, 가이드쌤이 카메라를 달라며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혼자 올 때 이렇게 사진 찍고 가야죠.


카메라에도 후레시가 내장이 되어 있어요, 선생님! 이라고 말하려다 입을 꾹 다물고 포즈를 취했다. 나중에 보니 사진들이 죄다 흔들려 있지만 그날 밤에 대부분의 주요 명소를 구경한듯하다. 프라하성과 수도원, 그리고 카를교와 오페라하우스, 시민회관과 화약탑까지. 천문시계 앞의 마켓까지 둘러보는 길. 이동하는 날은 아무것도 못한다고 생각했는데 뭐라도 하니 기쁜 마음으로 만족스럽게 해산하려는데 대뜸 선생님이 몸을 돌려 우리에게 말하는 게 아닌가.


“내일 아침에도 여기 공원에 올라가 보세요. 아침 풍경도 매우 볼만하거든요. 프라하는 치안이 서울보다 안전해요. 가끔 개가 다닐 순 있는데, 개들은 사람한테 관심 없어요.”


“그래도 사람이 너무 없으면 위험...”


“야경이든, 풍경이든 이런 건 사람이 드문 곳에서 봐야죠, 둘이!”


가이드쌤은 그 말과 함께 내게 눈을 찡긋해 보인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지.


아, 여긴 신혼여행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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