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프라하 D+21
기침이 심해졌다. 드레스덴의 여파에 이어 프라하 야경 투어를 하는 동안 멋을 부리겠다며 옷을 얇게 입은데다 늦은 시각까지 밖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드레스덴에서도 프라하에서도 비를 쫄딱 맞아서일까. 콜록콜록 거센 기침을 하는데 숙소를 함께 쓰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져온 약을 챙겨 먹고, 오늘 무얼할까 고민하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심지어 눈까지 온다.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이었다면 몸이 아파도 원래 보려 했던 목적을 달성했겠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오늘 하루는 계속 실내에서 따뜻하게 머무는 거야. 그래서 실내 공연을 두 개 예매하고, 카를교와 존레넌벽 정도만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티켓을 예매해 놓고 트램을 타고 카를교로 가는 길. 늦은 아침에 다리 위는 소원을 빌러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끊임없이 쏟아져내리던 눈은 프라하의 풍경을 한층 더 아름답게 만들었지만 당시 나는 열이 펄펄 끓고 있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무리해서 드레스덴에 갔나? 앞으로 남은 일정까지 3주나 더 있는데 이 감기가 낫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를교에서 간단히 소원을 빌고 프라하성으로 향했다. 보려 했던 공연은 프라하성의 성벽 안쪽에 있는 로브코비츠 궁전에서 작게 세 개의 악기 합주를 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동유럽에서는 주로 음악을 들어야지, 하고 생각했지만 막상 공연장에서는 약 기운에 취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카페에선 해야 했던 일을 하거나 쉬면서 시간을 보냈다. 오전 동안 했던 일은 굴뚝빵 먹기가 전부. 허무하게 시간을 흘려보낸 것 같아 속상하면서도 그런 생각을 할 틈 없이 기침이 쉴새 없이 나왔다. 그날은 재즈공연을 하기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건 천문시계탑을 내려다보며 풍경을 보고 감탄하고, 기침이 멎지 않아 스타벅스에서 애플티를 마시며 시간을 보냈던 것뿐.
‘레두타 재즈 클럽’은 유명한 곳이다. 딱히 하고 싶은 곳도, 머물 곳도 없었던 나는 가장 먼저 공연장 내부로 들어와 풀이 죽은 채 앉아 있었다. 멍하니 김이 빠지는 중인 병맥주를 바라보고 있는데 ”할로“하며 인사를 건네던 옆자리의 인연. 그녀는 자신을 ‘이나’라고 소개하며 내 이름을 물었고, 공연장에 와 보는 게 오랜만이라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왔다고 했고, 영어를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애석하게도 내가 그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파파고와 바디랭귀지가 전부였다.
그러나 우리는 프라하 여행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찍었던 사진을 보여주며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 30분가량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깐 기다리는데 그녀의 남편이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가 앉은자리는 서로 경계선이 없는 소파석이었고, 나를 제외한 두 커플, 그러니까 네 명의 덩치가 꽤 컸다는 거다. 양쪽으로 할머니 두 분이 앉는데 물컹한 살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달됐다. 아무리 내 몸을 줄여보아도 살이 닿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게다가 외쪽에 앉은 다른 할머니가 이나 할머니에게 조금만 옆으로 가라고 짜증을 내기까지 했다. 이나 할머니는 자신도 자리가 없다며 자리를 보여준다. 두 사람은 공연 내내 아옹다옹하더니 결국 내가 다리를 꼬는 곳으로 합의를 보았다. 공연은 즐거웠고, 양쪽으로 앉은 사람들도 모두 좋았는데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나는 분명 돈을 두 배로 주고 VIP석을 예매해 편하게 보려고 했는데, 이게 VIP석인지, 아니면 불편한 석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을 보는 동안 나는 명절 분위기 같은 공연장의 분위기가 참 좋다고 생각했다. 평소 명절 분위기 같은 다정함을 좋아하는 편이다. 보컬이었던 가수는 그날 자신의 아들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며 자랑을 했고, 91세의 아버지를 특별히 초대해 함께 합주를 하며 공연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그리고 언어를 완전히 알아듣진 못했지만 그날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간만에 마주친 다정한 분위기에 나는 잠깐 취해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