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프라하 D+22
프라하의 마지막날. 프라하 숙소에서도 터미널까지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기에 시간대를 앞으로 당겨 이른 아침시간으로 변경하고 하루동안의 계획을 짰다. 전날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 돌아섰던 프라하성을 갈 예정이었다. 프라하성의 오디오 가이드와 성을 투어하는 데 드는 비용은 한화로 약 5만원 정도. 막상 성을 들어갔는데 오디오 가이드를 듣고 있으니 내가 왜 이것들을 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을 시작한 지 절반이 넘었다. 유럽의 거리는 이제 다 비슷하게 보이는 것이다. 생전 관심도 없던 역사를 알겠다며 궁궐을 보고 건축양식을 보고 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왜 남의 궐을 보고 다니고 있는지. 종교도 없는 내가 왜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쁘다, 멋스럽다. 그리고 이렇게 여행을 씩씩하게 다니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다. 그런데 이상하다. 내가 지금 여기서 뭘하고 있는거지? 쉬러 온 여행이 아니다. 그렇다면 기를 쓰고 열심히 다녀야 하는 여행이다. 그런데 내가 하고 있는 여행은 그 지역의 랜드마크와 남들에게 보여주기식 여행이지, 진짜를 가져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배가 고파서 그런가? 프라하성에서 내려와 좋아하는 굴뚝빵을 먹고 카를교로와 머리에 별 박힌 동상에게 물었다.
“저 지금 이렇게 여행하는 게 맞아요?”
동상에 너도나도 손을 얹으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불쑥 한국어로 이야기하는데 몇몇 사람들이 나를 스윽 쳐다본다. 분명 한국인이다. 아니, 나는 좀 전에 그들이 손목에 찬 다이소 스트랩을 봤다. 죄다 신혼부부들이다. 그들은 내 물음에 저들끼리 쿡쿡 웃는다. 멀리 트램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구급차 지나가는 소리도. 벨소리와 신호흠 소리는 이제 지긋지긋해지기 시작했다. 이토록 낭만 가득한 도시에서 나는 조금씩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마켓도 이제는 재미가 없다. 그다지 먹고 싶은 음식도 업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72시간 교통권을 구매했기 떄문에 무작정 트램에 타 댄싱하우스와 슈 성당을 보러갔다. 입장료가 있다. 입장료를 내고 둘러보고 나오니 진짜로 내가 지금 뭘하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본질이 뭘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진짜 여행인 것 같은데, 정작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여행이 죄다 엉망진창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도장꺠기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식 퍼포먼스가 하고 싶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숙소로 돌아왔다. 침대 위에 가만히 누워 콜록콜록 기침을 하며 높다란 천장만 바라보다 하루를 마무리했다. 앞으로 남은 여행지는 세 곳 정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나의 작가로서의 지향성에도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엇을 써야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저 책이 나오고, 무언가를 홍보하고,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을 만들었다고 자랑하는 그런 과정을 사랑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글을 통해 대단히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열의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아주 오래전에는 분명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마음이 누그러졌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들은 점점 용서가 되며 물러졌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기간 글을 쓰면서 점점 내 자신에 대해 드러내는 일보다는 내가 아닌 허구에 대해 쓰는 것이 더 편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내가 작가를 잘 해낼 수 있을까? 내가 이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프라하에서는 몸도 마음도 완전히 지쳐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