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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Jan 13. 2020

그러니까 내가 베트남에 간 이유는

다낭 여행기 


호이안 올드타운.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야경 명소다.

그러니까 내가 베트남에 가게 된 건 생일 선물 때문이다. 작년 12월, 엄마는 생일 선물로 다낭행 티켓을 끊어줬다. 나와 생일이 같은 동생은 새해가 밝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으로 떠났다. 


공항에서 나오자마자 후욱 끼치는 더운 바람, 이라고 쓰고 싶었지만 내가 베트남을 방문한 당시는 우기였다. 우리나라 늦여름, 초가을 날씨랑 비슷했다. 꽁꽁 얼어버린 몸과 마음을 달래러 떠난 여행이었으나, 그곳은 내 마음과 같이 매우 쓸쓸한 날씨였다. 한국에서 클룩으로 하노이로 가는 프라이빗 택시를 예약해두었다. 지체 없이 예약된 택시를 타고 하노이로 떠났다. 그곳으로 가는 동안 우중충한 비구름이 걷히고 해님이 떠주었다. 들뜬 나는 ‘이번 여행은 역시 운이 좋군’이라고 생각하며 하노이 호텔에 내렸다.


하노이를 온 가장 큰 목적은 올드타운 야경이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푼젤에 나올 법한 등불들의 향연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핑크색 플리스를 벗어던지고 민소매 원피스로 갈아입은 뒤, 점심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그랩이 잘 안 잡힌다고 해서 15분 - 20분 거리를 걸어갔는데, 우리만 걸어 다녔다. 모두들 택시를 타거나 자전거,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 시선이 집중됐지만 꾹 참고 ‘레드 게코’라는 맛집에 찾아갔다. 구글 지도가 가리킨 곳은 어느 허름한 식당이었다. 옆에서는 ‘헤이 컴온’이라 나를 부르는 하노이 청춘 남녀들이 뽀옹짝이 분명한 노래를 흔들어 재끼고 있었다. 나는 하노이 인싸에 속하지 못하는 찌질이기 때문에 ‘잇츠 오케이’를 외치며 그 옆 식당으로 들어갔다. 


주문 내용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옆 가게가 시끄러웠기 때문에 우린 메뉴판을 가리키며 볶음밥과 쌀국수, 새우튀김을 시켰다. 원래 코를 막으면 미각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귀가 들리지 않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겨우 짠맛과 기름 맛을 느끼며 식사를 마쳤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바로 호텔로 돌아갔다. 우리는 사촌네와 함께 놀러 온 것으로 보이는 한국인 가족 무리와 두 명의 외국인 여자와 함께 안방 비치로 향했다. 안방 비치는 ‘해외여행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내기에 딱이었다. 길게 펼쳐진 해안선, 일정하게 정렬되지 않은 수많은 선배드들, 원색의 페인트로 칠해진 해변의 바. 급하게 오느라 수영복을 챙기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안방비치. 예쁜 바들이 해안가를 따라 쭉 위치해있다. 꼭 들러보시길. 

우리를 비치로 안내한 삿갓을 쓴 언니는 그 비치 가장 가까운데 있는 바의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나는 진과 럼이 들어간 어떤 이름 모를 칵테일을 시키고 자리를 잡았다. 우리 옆에는 서양인 가족이 무리 지어 놀고 있었다. 내 비행기 티켓을 끊어준 엄마가 떠올랐지만 술 한 모금 들으키니 딴 세상에 와있다는 설렘이 그 생각을 사라지게 해 줬다. 끈적한 바람이 가져다주는 나른함에 취해 사진 백만 장을 찍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안방 비치가 생각보다 만족스러워서 다음 메인 코스가 너무 기대됐다. 머릿속에 나는 이미 라푼젤이었고, 수많은 불빛들이 나를 감쌌다. 실제로 본 올드타운은 등불을 날리기가 이제 유행하지 않는 듯했다. 사람들은 손에, 배에 등불을 매어놨다. 야경은 예뻤지만 그렇게 아름답진 않았다. 소원 배를 타고 등불을 띄우는 것보다 높은 곳에서 그 등불을 바라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강을 중심으로 양쪽에 많은 가게들이 위치해 있었는데, 더 많은 불빛을 내는 걸로 경쟁하듯 손님들을 불러 모았다. 


식당 '모닝글로리' 2층에서 바라본 올드타운. 맥주를 안 먹을 수 없는 분위기이다.

나는 맛이 좋다는 ‘모닝글로리’로 향했다. 예상대로 많은 사람들이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분위기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는데, 베트남 전통음식을 팔았다. 신서유기 베트남편에서 은지원이 ‘엄청 맛있어’를 연발했던 메뉴 반쎄오와 분짜, 대표 메뉴 모닝글로리를 주문했다. 이층 테라스 쪽에 앉았고, 어떤 창문도 닫혀있지 않았으며, 마침 날씨도 매우 따뜻했다. 이때 필요한 건, 톡 쏘고 가벼운 타이거 맥주였다. 크으 아무리 봐도 시금치 무침과 비슷한 모닝글로리는 맥주 안주로도 그만이었다. 다른 음식들도 양이 적은 대신 맛있었다. 


오랜만에 따뜻하고 북적이는 곳에 가니 마음이 설렜다. 여행에 온 것 같은 기분이 절로 나는 여행 첫째 날이 그렇게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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