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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Aug 27. 2020

비용에 대하여

지난날의 일기 다시 보기


3학년 1학기가 막 시작됐을 무렵 쓴 일기다.

다음 학기에 휴학을 했던 걸 보면 미래에 대한 고민이 가장 많았을 시기였던 것 같다.

나는 문득 어떤 수업을 듣다가 교수님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 괜찮은 위치에 서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

그들의 정량적 스펙에 대해 떠올렸다.

그렇게 사려면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좋은 학벌, 토익 점수, 논문, 대외 활동, 경력 등.

이런 것들이 바람직한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회비용이라는 생각에 다다랐다.


그렇다면 사회가 인정하는 좋은 삶이라는 것 말고 그냥 ‘나’로 존재하기 위해선 어떤 비용이 필요할지 생각해봤다.

오히려 순수한 ‘나’로 존재하는 게 더 힘들 것이다.

3년 전에 써놓은 글이지만 여전히 이 고민은 유효하다.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애쓴 것도 사실이고, 나만의 삶을 살아보려 한 것도 일정 부분 맞다.


내가 이전의 일기를 보고 느낀 점은 ‘사회적 내가 되는 것’이 당시에도 이만큼 힘들었구나’하는 것이었다.

‘사회화’라는 게 정량적인 스펙 말고도 시간과 감정을 들여야 하는 것이었지.

‘사회적인 나’가 되는 것도 ‘나 다운 나’가 되는 것도. 여전히 나는 갈길이 멀구나.





2017.03.08

세상에 ‘나’로 존재하는데 필요한 비용이 얼마쯤 될까.

이 비용이 ‘사회적 내가 되는데 필요한 비용’보다 많다면?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일단 그냥 세상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인간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을 열거해보겠다.

주거비용, 식사비용, 옷이나 장신구, 화장품을 사는데 쓰는 비용. 취업에 쓰는 비용. 경조사에 쓰는 비용 등.

우리가 사회의 일반 사람들처럼 살아가는데 쓰이는 비용들이다.


여기서 (누가 정한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잘, 아니면 그 정도만큼 살아보려고 쓰이는 비용 중에 대표적인 것들로는 ‘스펙 비용’이 있다.

이를테면 토익학원, 스피치학원, 자소서 첨삭, 계절학기 등등.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보는 더 나은 사람, 혹은 사람 구실을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꽤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그것도 누군가에겐 꽤 벅찬 비용을 힘든 티 내지 않고,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비용은 일단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비물질적인 비용의 대표적인 예는 시간과 감정이다.

흔히들 고 3 수험생이라면 들어봄직한 대사가 있지 않은가.

“너의 1년이 평생을 좌우한다.”

끔찍한 말이다. 대표적인 기회비용의 예라고 할 수 있다.

1년을 죽어라 공부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안정된, 보장된 미래?

뭐 요즘은 이조차도 (학벌 조차도) 미래를 확실히 보장할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이런 시간들을 기꺼이 희생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그렇다면 감정은 어떠한가? 우리에게 감정은 절제해야 하고, 적절히 컨트롤해야 하는 것이다.

성난 손톱을 드러냈다가는 건전한 사회인으로 취급받기 힘들다.

덕분에 감정은 소비된다기보다 소모되어간다. 마치 휴대폰의 대기전력처럼.

기계가 돌아가는 시간보다 대기하는 시간이 더 많은 까닭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비용들을 합쳐보면, 그냥 ‘나’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비용보다 클까, 작을까?

그냥 나로 살아간다면?

사회적 내가 되기 위해 필요한 비용들이 들지 않는 대신 세상의 눈총을 받겠지.

그냥 내가 되기보다 세상이 바라는 사람이 된다면?

그리고 정해진 길로 가지 않는데 드는 불안감이 들지 않겠지.


오늘도 덧셈 뺄 샘만 하는 산수 시간이 되어버린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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