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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Mar 18. 2019

노인복지회관을 가다

스물넷, 두 번째 휴학 생활 이야기, 네 번째

늙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마음이 몸에 있지 않다는 걸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는 시간을 돌리려다 한순간에 할머니가 되어버린 25살 혜자가 나온다. 할머니로 생활해본 혜자는 몸은 나이 들었지만 마음은 아직 젊은이와 다름없다는 걸 깨닫고는 이렇게 말한다. “몸은 그렇지만 마음은 아니잖아요. 늙어보니까 알겠더라고요. 마음이 몸에 있지 않다는 걸.” 이 이야기를 보고 있자니 내가 요즘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마음만은 이팔청춘”을 외치시는 분들이다.


내가 사는 곳 근처에는 드라마에 나오는 ‘홍보관’ 같은 곳이 있다. 광교노인복지관이란 곳인데, 건강 상품을 판매하는 드라마 속 홍보관과는 달리 주간에 치매노인을 돌봐드리고 여러 문화활동을 돕는 곳이다. 얼마 전부터 그곳에서 운영하는 컴퓨터 강의 강사님을 보조하는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처음 들어간 곳은 초급반이었는데 블로그를 꾸미고 게시물을 작성하는 것을 배우시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앞에서 설명하시며 시연하시면 각자 컴퓨터 앞에 앉은 20여 명의 어르신들이 이를 따라 하는 전형적인 컴퓨터 강의였다. 일반 컴퓨터 강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수강생들이 단기 기억을 어려워하신다는 것.


예를 들어 게시물에 사진을 삽입하는 것을 배운다고 하면,

“사진 누르시고 클라우드에 가셔서 사진 가져오세요. 그리고 편집하기 누르시고....”

일단 설명이 끝나면 일제히 사진을 찾아 헤매신다. 먼저 사진 삽입 버튼을 찾지 못한 어르신은 “학생 선생님”, “학생”, “애기 선생님”, “여기” 등 마음대로 나를 찾으신다. 여기서부터 나의 미션이 시작된다. 선생님의 다음 설명을 놓치지 않으면서 사진 버튼을 찾아드리고, 사진 이후의 과정을 까먹은 대부분의 어르신들의 기억을 찾아드리러 이동한다. “편집하기 누르신 다음에 이거 누르라고 하셨어요.” 단기 기억이 저장되지 않았는데 장기로 넘어갈 리도 없다. “클라우드는요. 저번에 사진 올리실 때 배우셨잖아요. 이렇게 가서 이렇게...”


이 내용을 20번 정도 반복하다 보면 게시물 1개를 작성했는데 어느새 1시간 반이 지나있다. 게시물을 올린 뒤가 제일 중요하다. 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초등학교 때 칭찬 스티커나 사탕을 받듯, 어르신들에게 콩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면 해피빈에서 게시물 1개당 콩 1-2개를 주는데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근데 하루에 두 번 쓴다고 콩을 두 번 받는 것은 아니라 첫 번째 게시물을 쓰고 콩 받기를 못 누른 어르신들은 진심으로 아쉬워하신다.) 콩 1개당 100원을 기부할 수 있다. 어르신들은 선생님이 알려주신 노인복지관에 콩을 기부하신다. 기부하려고 열심히 콩을 모으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컴퓨터를 공부하시는 어르신들을 보고 있으면 여러 생각이 든다.

제목이나 글을 쓰실 때 선생님이 만드신 예제를 그대로 하지 마시고 당신 생각대로 글을 쓰라고 하면 십중팔구 선생님 샘플대로 쓰고 계신다. 나나 선생님께 제목은 어떻게 쓰냐고 (방법 말고 글 자체를) 물어보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예전에 어른들이 스마트폰을 배우기 어려워하시는 이유가 ‘아무거나 눌러보다가 고장 날까 봐’라고 들었는데, ‘틀린’ 정답으로 쓸까 봐 걱정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으시다. 글은 정답이 없는 것이고, 당신 게시물이니 당신 마음대로 하셔라 해도 금방 고쳐지지 않는다. 선생님 예시 보려고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모습이 애처롭고 어쩐지 귀여우시다. 또 수업시간에 모든 내용을 적으면서 컴퓨터까지 따라 하려다 보니 요리조리 급하게 움직이시는 모습이 멋져 보인다. 우리가 ‘설마 그것까지 적을까?’라고 생각하는 것까지 적으신다. 상상 이상이다. 하나하나 적으신다. 조선시대 사람에게 한 할머니 노트를 드리고 블로그 제목 쓰라고 하면 쓸 수 있을 정도다. 아무튼 받아 적으랴 따라 하랴 바쁘신 어르신들의 모습이 점점 의욕이 없어지는 젊은 사람인 나에게 귀감이 된다.


봉사활동이 끝나고 일지 적을 때마다 생각한다. 앞으론 열심히 살겠습니다. 다음 주 봉사 올 때까지만이라도 지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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