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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인 Mar 18. 2019

자, 이제 자소서를 써보자

스물넷, 두 번째 휴학 이야기, 다섯 번째

아이엠 그라운드 자기소개하기. 나는 수인. 리드미컬하게 돌아가는 박자 위에 신명 나게 불러 젖혀 보는 내 이름이 어딘가 어색하다. 흠, 내가 만 22년 동안 줄기차게 들어왔던 내 이름이 낯설게 느껴지는 이유는 자기소개서 속 나와 지금의 나의 간극이 크기 때문일 거다. 


자기소개서를 썼던 경험을 떠올려봤다. 대학 입시를 위해 4개의 자소서를 썼고, 학내 언론사 입사 때 한번, 동아리 입반 때 한번, FD 지원할 때 두 번, 영화제 자원활동가 한번, 마지막으로 스타트업 인턴 지원 때 한번. 꽤 많이 썼다. 대학 입시 때 4개 중 1개, FD 지원할 때 한번, 인턴 한번 고배를 마셨다. 꽤 높은 타율로 합격했었던 거 같은데 이렇게 쓰고 보니 높은 거 같지도 않네. 흥, 열심히 쓰긴 했었다.


내가 자소서를 쓴 이유는 간단하다. 기업에 지원하기 위해서다. 왜 지원을 하냐면 졸업 후 취업할 때 뭐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서고. 며칠 전 마지막 휴학인데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학교에서 개최한 취업 선배와의 만남을 신청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들으러 갔다가 무거운 마음만 들고 나왔다. 직무 관련 설명을 듣고 경험 삼아 인턴에 지원해보기로 했다. 실패도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 보통 실패를 했을 때의 나를 위로하기 위한 방패막이 같은 것이다. 나중의 나를 위해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각설하고. 채용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인적 사항에 적힌 몇 가지 항목이 내가 살아온 20여 년의 세월을 함축해놨다. 어질게 살라는 뜻의 내 이름부터, 대학, 전공, 경력, 자격증, 어학 시험까지. 내가 가진 여러 숫자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 같았다. 적힌 내용이 허위로 판명될 경우 합격이 취소될 수 있다는 어마어마한 경고문을 읽으며 나를 증명해줄 숫자들이 잘못 적히지 않게 조심했다. 숫자들의 방을 지나니 어느덧 글자들의 방이 보였다. 


그 칸 안에 지금까지 내가 이룬 것, 실패한 것, 그것을 통해 배운 것, 타인과 함께한 것을 쓰란다. 가만 보자. 자소서 특강 들을 때는 빅픽쳐를 잘 그릴 수 있었는데 하얀 바탕 위 커서만 깜빡거린다. 깜빡깜빡. 내 눈도 깜빡깜빡. 흰 바탕이 나를 먹어버리는 거 같다.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지는 않고 계속 그 자리에서 깜빡. 누가 내 인생을 4000자의 네모 속에 압축해줬으면 좋겠다. 사례하겠다. 


아무튼 마감 6시간을 남기고 자기소개서를 완성해 제출했다. 경험 삼아 한 것 치고는 열심히 했는데 완성도가 똥망이다. 그래 다음을 기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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