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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랑시에르 Jan 04. 2025

신성의 그림자

누가 신의 아들인가.


 성북동 카페는 언제나 비슷한 온도와 소음을 유지했다. 테이블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대화하거나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창가 구석의 두 사람은 조금 달랐다. 대화의 무게가,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침묵의 밀도가 이들의 만남을 다르게 만들고 있었다. 호연이 테이블 위의 커피잔을 손으로 감싸며 말했다.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어?”


정태는 잔을 내려놓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떻게라니… 신앙의 핵심이지.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의 본질을 공유한다는.”


호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럼 물어볼게. 그 개념이 처음부터 있었을까?”


정태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니케아 공의회 이전의 교회사를 떠올리려 했다.

“아니, 초대 교회 때부터 정리된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리가 아니라는 건 아니잖아?”


호연은 미소를 지었다.

“진리라는 건 누가 정리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 신학도 결국 누군가가 만들어낸 서사야. 시대가 필요로 했기 때문에 생겨난 이야기라는 거지.”


정태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너무 단순한 접근이야. 삼위일체는 신학적 논리에서 자연스럽게 발전한 개념이고, 예수의 신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필연적으로 나온 거라고.”


호연은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필연적이었을까? 로마 황제들이 신의 아들이라 불렸다는 걸 생각해 봐. 카이사르가 그렇고, 아우구스투스가 그렇고. 신성을 부여받는 건 그 시대의 권위를 상징했지.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것도 어쩌면 비슷한 맥락일지 몰라. 신성은 힘과 설득을 위한 도구였을지도 모르잖아.”


정태는 손을 테이블 위에 얹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의 손가락이 커피잔의 가장자리를 부드럽게 따라갔다.


“그 말은… 예수의 신성이 교회가 필요해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거야?”


호연은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문에 비친 그의 얼굴은 바깥 풍경과 희미하게 겹쳐 있었다.


“그건 단순히 이야기였을 수도 있지. 하지만 이야기가 허구라고 해서 의미가 없는 건 아니야. 교회는 예수의 신성을 통해 뭔가를 전하고 싶었을 거야. 다만 그게 진리라기보단,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지.”


정태는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그럼 삼위일체는 뭐야? 단지 교회의 권력을 위해 만들어진 거라는 말이야?”


호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니케아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정립되었지. 그때 황제는 정치적 통합이 필요했어. 아타나시우스가 황제의 지지를 얻었고, 아리우스파는 패배했지. 교회의 힘은 하나의 정통성을 필요로 했고, 삼위일체는 그 정통성을 상징했어. 권력의 산물인 셈이지.”


정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내가 지금까지 믿어온 건…”


호연은 그의 말을 끊고 잔을 내려놓았다.

“너도 알잖아. 믿음이란 건 진리인지 아닌지에 앞서 그 믿음이 너에게 어떤 의미를 주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정태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길가에 떨어진 낙엽이 바람에 흩날렸다.


카페에서 나와 정태는 혼자 걸었다. 바람이 그의 머리칼을 휘날렸지만, 그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호연의 말은 그의 머릿속에 작은 균열을 냈다. 균열은 점점 벌어져 그의 믿음을 조각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조각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이 움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신학은 진리가 아니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이 찾고자 했던 진리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진리는 때로 허구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법이니까.


정태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머니에서 작은 십자가를 꺼냈다. 그것은 그의 아버지가 선물한 것이었다. 그는 십자가를 손에 쥔 채 속으로 중얼거렸다.

“진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곳에 있는 걸지도 몰라.”


그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의 그림자는 희미한 가로등 아래에서 점점 더 길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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