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특급] 노동하는 예술가들 -모네에서 세잔까지1

구히달

by 케이블샐러드

예술가라는 말과 노동이라는 말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지만 예술과 노동은 연필과 지우개만큼 잘 어울리는 짝꿍이다. 예술과 노동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혹 지금 이 글을 읽기 시작한 당신은 예술가와 노동자를 연결할 수 있나요?


없다면 왜 없으며 있다면 왜 있는지 지금 당신이 있는 곳으로 가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 그럴 수 없으니 그냥 여기에서 혼자 이야기를 풀어가야겠다.


한 예술가가 작품을 만든다. 완성된 작품은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이때 관람객은 전시장 ( 혹은 그 어떤 장소 )에서 작가를 배제하고 완성된 작품 만을 보게 된다. 음악을 듣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관람할 때 무대 위에 연주자 (혹은 연기자)와 관객은 동시간에 같은 흐름 속에서 예술 행위를 감상한다. 실시간 적으로 일어나는 이 행위를 통해 관람객은 연주자의 눈빛 , 손과 몸의 움직임 , 시간의 흐름을 함께 공유하게 된다.


그렇지만 미술은 조금 다르다. 미술품은 대부분 작가가 혼자 작업실에서 완성한 작품을 전시장에 전시하고 관람객은 이미 완성되어 박제되어 있는 미술품을 보게 된다. 예술 작품은 항구를 떠나 홀로 바다를 항해한다. 이 배 안에는 선장이 없다. 분명 만든 사람이 정확히 존재 하지만 작가의 품을 떠나 관람객을 만나는 미술작품은 마치 표류하는 배처럼 전시장 안을 떠돈다. 운이 좋아 만든 이가 목적한 대로 도착할 수도 있지만 때로 작품은 예상치 못한 바람을 만나거나 거친 파도를 만나 전혀 새로운 곳에 당도하기도 한다.


전시장 안에는 작품이 멋대로 떠돌지 않도록 많은 장치들이 필요하다. 관마다 캡션도 달아야 하고 그림 아래에 제목도 붙여야 하고 전시 해설가도 필요하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게도 여러 예술 감상 행위 중 관람객의 능동성에 가장 기대야 하는 미술감상은 생각보다 귀찮고 번거 롭다.


배가 목적지에 잘 도착하도록 돕는 많은 것들이 있어도 관람객이 함께 노를 젓고 닻을 내리지 않으면 미술작품은 곧 전시장 안을 표류 하고 만다. 그렇게 험난한 관람을 마치고 나면 관람객에게 예술가라는 존재 자체는 자칫 희미해 지기 쉽다. 예술가가 작품을 떠나보내고 자신의 존재감을 명확히 나타내기란 좀처럼 힘들다. 한 작가를 특정하는 회고전 정도라면 모를까.


오늘 나는 현재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모네에서 세잔까지: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걸잔 전'을 통해 노동하는 예술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예술작품 이란 하나의 그림 너머에서 하나의 인간이 부단히도 반복적이게 노동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우리는 자주 작품 너머의 노동자를 망각한다. 한 사람의 예술가는 아침에 일어나 작업실로 출근한다. 출근을 했는지 지각은 안 했는지 조기퇴근을 한건 아닌지 확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예술가는 어쨌든 작업실로 출근한다. 누군가는 손을 풀기 위해 가벼운 드로잉을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어제 그리던 작업을 바로 이어서 시작할 수도 있다. 예술가는 주로 사용하는 크기의 붓을 꺼내 들고 주로 사용하는 물감을 팔레트에 짠다.

비슷한 농도로 희석된 물감을 비슷한 붓터치로 그려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그는 길게는 10시간 짧게는 6시간 정도 작품을 만들고 작업실에서 퇴근한다. 그리고 다음날이 되면 또다시 작업실에 출근해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다. 전시 일정이 잡혀있다면 누군가처럼 예술가도 야근을 한다.


혹시 당신에게 며칠 동안 밤이고 낮이고 식사도 하지 않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다가 초췌해진 몰골로 나와서는 "드디어 걸작을 완성했다."라고 말하는 예술가가 자리 잡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영감은 어느 날 불현듯 나무에서 떨어지는 감처럼 뚝 떨어질 때도 있지만 그 영감이 실제적인 작품이 되기까지 이런 과정을 나는 '머리에서 손까지'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머리에서 손까지 전달되는 과정은 정말이지 지루하고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서야 완성되는 경우가 많다. ( 어느 날 뚝 떨어지는 영감만큼 머리에서 손까지 급행으로 달려 나가는 경우도 아주 가끔 있다.)


몇 해 전 동일한 미술관에서 피카소와 베이컨의 작품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내게 가장 큰 인상을 남겨준 것은 원화의 아우라 보다 원화와 거의 똑같은 색감, 구도로 만들어진 완벽한 판화 한점이었다.

베이컨은 거의 동일한 작품을 두 개 만들었다. 유화도 많은 힘이 필요하지만 판화는 더욱 그렇다. 거기에서 나는 뒤틀리고 기괴하고 관습을 구겨버린 전위적인 화가 너머의 성실한 노동자를 보았다.


베이컨뿐 만 아니라 달리 역시도 정확한 스케치와 계산 아래 그림을 그렸고 피카소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위해 수많은 습작을 그렸다. 세상의 어떤 천재 예술가도 단 한숨에 걸작을 완성하지 않는다.

또 한 사람의 예술가가 만들어낸 많은 작품들 중 모든 작품이 걸작의 반열에 들지 못하는 것도 그 증거다.

몇 개의 걸작을 위한 수많은 범작들이 있다. 대부분의 예술 작품은 맥락 안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

이 사람의 작품이 이 사람의 다른 작품들과 어떤 차별점이 있고 그 차별점으로 인해 어떤 면이 더 뛰어난지 평가받는다. 단 하나의 작품으로는 가치를 결정하기 힘들다. 생각해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들인데 종종 예술의 세계에서는 잊히는 부분인 것 같다.


한 예술가의 노동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부분은 그의 붓질을 살펴보는 것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당연하다. 어떤 화가는 붓질을 뚝뚝 끊어서 하고 어떤 화가는 물감을 뭉개면서 붓질을 한다. 이 붓질 습관 때문에 한 사람의 독특한 화풍이 만들어지고 어떤 작품을 보든 그 예술가를 찾아낼 수 있는 특징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당신이 그림을 좋아하고 앞으로도 그림을 감상할 예정이라면 다음에는 작품 너머 한 사람의 노동자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그 노동자가 반복적이게 만들어낸 붓질을 발견한다면 전시장 안에서 누가 누구의 그림인지 도통 모르겠다.라는 소리는 조금 줄어들지도 모른다.


이번 '세잔에서 모네까지' 전에는 꽤나 많은 인상파와 후기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이 왔지만 가장 대중적인 작가들 위주로만 이야기를 풀어갈 예정이다.



인상파의 센터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1.14-1926.12.5 프랑스)


인상파라는 단어의 시작이자 끝이고 인상파의 모든 것인 클로드 모네. 한국에 오는 작품들은 아무래도 그 작가의 대표작인 경우는 드물고 많은 연작 중의 하나 이거나 드로잉인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에 온 모네의 작품들도 그의 대표작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세 점 이상의 작품수로 인해 그의 그림 그리는 습관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는 있었다. 모네는 인상파의 모든 것인 만큼 말년에도 야외에서 그림을 그렸고 해가 있는 동안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의 작품과 이전 미술사 사조와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속도다. 몇 년에 걸쳐 천천히 스튜디오 안에서 완성하던 유화와 다르게 모네는 야외에서 빠르게 그림을 완성했다. 이것은 인상파를 이해하면 당연하게 알아지는 것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에서 스케치를 하고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했다. 여담으로 인상주의를 이해할 때 혼란이 오는 상황은 바로 인상주의라는 단어가 몇몇 부분을 제외하고 당대의 화가 전체를 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네의 작업 방식은 인상주의를 이해하는데 표본과도 같다.


그는 우선 이젤과 캔버스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적당한 구도를 설정하고 빛을 관찰한다. 여기에 주관이나 개인의 감성 같은 것은 없다. 그저 내가 현재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그린다. 내가 본 것을 그리는 것

이것이 모더니즘과 이전 시대의 미술을 구분 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인데 비록 모네가 개인의 감성이나 주관을 배제했다고는 하나 결국 하나의 절대적인 진리나 공통된 그림 언어가 아닌 개인이 본 것을 그린다는 개념이 미술사를 크게 바꾸어 놓은 중요한 사건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된다. 이것만 알아도 고전 미술과 현대미술이 도대체 어떤 큰 차이가 있는지를 구분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은 지금 미술사에서 가장 커다란 짐덩어리를 적당한 자리에 놓은 것이다.


모네의 그림을 보면 그의 그림은 매우 얇다. 얇은지 두꺼운지 어떻게 알 수 있나 라고 반문한다면 전시장에서 이 선을 넘지 마시오.라고 표시된 선을 지키면서 최대한 가까이에서 그림을 보면 된다. 그러면 화가가 그어 놓은 붓 자국과 물감 뒤로 비쳐오는 캔버스의 질감을 볼 수 있다. 캔버스의 질감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한다면 여름이면 많이 들고 다니는 에코백을 떠올리면 된다. 에코백의 주재료인 광목 혹은 리넨이 캔버스의 주재료이다. 어쩌면 지금 당신 옆에도 있을지 모를 그 에코백의 질감과 비슷한 것이 눈에 보였다면 아 이 그림은 상당히 얇게 물감을 칠한 거구나 라고 생각하면 된다.



쿨 로드 모네 수련연못 1907


그림이 얇다는 것은 작가가 그림을 그릴 때 기름을 많이 섞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수채화 좀 그려봤다면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물을 많이 한 채로 그림을 그리면 종이의 질감이 그대로 보이는 것처럼 위대한 화가들의 그림 역시 그렇다. 그들은 물을 많이 섞었던 당신처럼 기름을 많이 섞어 유화물감을 희석한 거다. 모네는 빠르게 작업하기 위해 기름을 많이 섞어 그렸고 그렇게 완성된 유화는 수채화처럼 캔버스의 질감을 보여주는 얇은 그림이 된다. 얇다는 개념은 얄팍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그림이 얇아 짐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림이 투명해진다. (수채화의 투명함과는 다르지만 말이다. 기본적으로 유화는 불투명 물감이라고 여기면 된다.) 그리고 이때 사용되는 기름은 휘발되는 테레핀이나 페트롤을 사용하기 때문에 그림이 마르고 나면 기름은 날아가고 소량의 물감만 남는다. 유화 물감에는 기본적으로 린시드라고 하는 아마씨유 기름이 섞여 있고 유화 자체가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성질이 뛰어나 물감이 마르고 난 뒤 특유의 광택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많은 유화 작품들이 전시장 안에서 반짝반짝 빛을 내는 것이다.


모네 작품에는 그 광택이 거의 없다. 물감 자체를 적게 사용하고 기름은 휘발되어 사라져 버렸다. 캔버스는 광목이나 리넨을 사용하기 때문에 천이라는 특성상 밑 칠을 무지하게 해서 그 틈을 다 메꾸지 않는 이상 물감은 천 안으로 흡수되기 때문에 더더욱 그림은 얇아진다. 광택을 잃은 그림은 반짝 거리는 작품보다 훨씬 고요하고 정적으로 보이게 된다. 그렇지만 또 유화 자체의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특성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얇게 칠해졌음 에도 유화 작품은 보다 더 깊이를 간직하게 된다.


클로드 모네 아발의절벽 에트레타 1885

비교적 두텁고 마티에르를 살려서 그린 이 그림조차도 모네의 정갈함을 보았다. 오랑주리에 있는 모네의 걸작 수련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명암이나 형태가 아닌 빛 자체를 그리고자 했던 모네의 예술적 염원을 생각한다면 그에게 유화의 마티에르는 큰 관심사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신이 모네의 그림을 보고 느꼈던 특별함은 그의 숙련된 그림 실력과 유명세를 떠나 그의 작업 방식에서 오는 그 어떤 특별함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거기에 시간이 앗아간 광택과 시간이 주어준 혜택이 더해져 그의 그림은 전시장 안에서 더 뛰어난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물론 광택이 적어 누군가 에게는 눈에 덜 들어오는 작품일 수도 있다. 인상파의 절대적 중심인 클로드 모네라는 이름 아래에 매일 야외에 나가 기름을 많이 섞어 빠르게 그림을 그려나간 한 노동자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의 그림들은 대부분 동일하고 반복적인 방식으로 그려졌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예술가와 공장의 노동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한쪽은 무언가 인류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작품을 만들었고 누군가는 사용되고 소모되는 공산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제외하고 매일 반복적인 일을 한다는 개념으로 본다면 모네 역시 노동자이다.


물론 모네는 자신이 행한 노동의 대가를 차고 넘치도록 받았다는 또 다른 차이점이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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