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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Sep 21. 2022

'샤오미'엔 있고 '소니'엔 없는 것

<플랫포노베이션하라> 플랫폼의 존재 이유는 가치교환에 기반을 둔 '상생'

이탈리아 피렌체 북서부에 위치한 도시 '프라토'. 지난 14세기부터 700년간 이탈리아 최대 섬유 생산지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인구 20만 명이 채 안 되는 이 작은 도시는 이탈리아 최대 규모 섬유 산지이기도 하다. 이곳에 모여있는 7200여 중소기업들은 네트워크를 형성해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연간 50억 유로 수준의 매출을 올렸다.


이름난 대기업도 없이, 고만고만한 중소기업들이 모여 어떻게 이런 막대한 매출을 올릴 수 있을까. 여기엔 '임파나토레(impannatore)'라 불리는 중개업체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파나토레는 이 지역 중소 섬유업체들을 조직해 최적의 조합을 만들어낸다. 수많은 영세업체들을 동원해 고객의 입맛에 맞게 맞춤형 생산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대기업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다. 또한 마케팅을 전담하며 최신 유행을 선도해 나간다.



일본 소니(Sony)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전자기기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최고 기업이었다. 하지만 소니는 기술력이 뛰어난 제품을 출시하고도 시장에서 외면당하면서 점차 최고의 자리에서 한 계단씩 내려와야 했다. 1980년대 VHS 방식과 경쟁했던 베타맥스 방식의 비디오 플레이어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들어 듣는 음악의 표준이 된 CD와 경쟁했던 미니디스크(MD) 또한 기술에서 앞섰지만 유행에서 밀린 경우다.


소니는 2000년대 들어서도 남들보다 한 발 빠른 혁신 기술 제품을 선보였다. 2004년에 출시한 이북(e-book) 리더기인 '리브리(Librie)'란 제품이다. 이북 리더기의 대명사가 된 아마존의 킨들보다도 3년이나 빨랐다. 하지만 지금 소니의 리브리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에서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임파나토레의 성공과 소니의 실패는 '플랫폼' 화(化)하는 데 성공했느냐란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도 읽힐 수 있다.

'임파나토레'는 자체 생산 시설이 없지만 지역 영세기업들을 끌어들여 '상생'할 수 있는 효과적인 협력 체계를 만들어냈다. 일종의 '플랫폼'을 구축한 셈이다. 반대로 소니는 전자책을 활성화하기 위해 함께 가야 할 동반자, 출판업체들을 '리브리'란 혁신적인 제품이자 플랫폼에 끌어들이는 데 실패했다. 공급자가 없는 플랫폼에 고객이 찾아올 리 만무하다.


디지털 혁신 전문가인 연세대 산업공학과 박희준 교수는 저서 <플랫포노베이션하라>에서 이와 같은 사례들을 언급하며 '플랫폼을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불확실성 시대에 기업이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플랫포노베이션'이 필수적이라고 말한다.

'플랫포노베이션'이란 플랫폼(Platform)과 이노베이션(Innovation)의 합성어로, 플랫폼 기반의 혁신 활동을 의미한다.



구글, 아마존, 쿠팡, 배달의민족 등 국내외를 막론하고 플랫폼 기업들이 전통적인 비즈니스 생태계를 흔들고 새로운 주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갈수록 플랫폼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관심은 과연 어떤 플랫폼이 살아남을 것인가이다.


이와 관련해 저자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한다. 플랫폼의 존재 이유와 철학은 "참여자 간의 가치 교환에 기반을 둔 상생"이라고 주장한다. 참여자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가치를 교환하면서 서로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공간은 모두 '플랫폼'으로 정의될 수 있다. 반대로 “상생을 구현하지 못하면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실패한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성공적인 플랫폼이 되기 위해선 플랫폼에 참여하는 모두가 이득을 얻어가도록 ‘상생(相生)’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앞서 예를 든 소니의 사례처럼 플랫폼의 한 축인 공급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플랫폼은 살아남을 수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가전부터 생필품 이르기까지 1600여 종의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의 제조업체 샤오미는 지난 2020년 기준으로 직접 생산하는 제품이 전체의 25%에 불과하다. 대신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는 400여 기업을 샤오미 생태계에 끌어들여 연구개발, 디자인, 마케팅, 구매, 생산, 유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제조업체이면서도 자체적인 플랫폼을 구축, 참여 업체들이 각자의 특장점을 살려가며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고 원하는 제품을 빠르게 생산하면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여러 업체가 협업하면서 생길 수 있는 혼란이나 비효율을 줄이기 위해 샤오미는 미유아이(MIUI) 라는 자체 소프트웨어 운영체제를 개발해 업체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플랫폼이 흔들리지 않도록 자체 '프로토콜'을 개발해 단단히 고정시킨 것이다.   



최근 스타트업계 최고 화제는 '포토샵'으로 유명한 디자인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어도비가 역시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스타트업 피그마를 인수했다는 소식이다. 인수금액이 올해 피그마 예상 매출액의 50배에 달하는 200억 달러(약 28조원)로 알려지면서 화제를 넘어 논란이 됐다.

수치만 놓고 보면 어도비의 이번 인수는 소위 바가지를 쓴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인수 소식이 알려진 직후 어도비 주가가 17%나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피그마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현장에서는 이번 결정을 과감하지만 현명한 선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클라우드 기반의 피그마는 대다수 디자이너들이 선호하는 대세 '플랫폼'이 되었고 이러한 추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피그마 인수와 관련해 우리나라에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있을지 모르겠다. 네이버가 신생 스타트업으로서 고군분투하던 시절, 신문사에 인수를 타진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신문이 사양산업이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고, 온라인이 머지않아 대세가 되리라는 공감대가 확산하고 있었다.

물론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대략 20년의 세월이 흘러 신문사들은 지금 네이버가 마련해 놓은 장터 한 구석에 매대를 놓고 다른 언론사들과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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