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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깎이 Oct 04. 2022

무엇이 스타트업을 스타트업답게 만드나

페인포인트, 린스타트업, 외부 투자... 스타트업은 다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누가 수 백억 원을 투자받았다더라'는 얘기조차 진부하게 들렸던 스타트업계가 얼어붙었다. 미국발 인플레이션,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상황이 악화되고 국내 경기 또한 금리인상을 계기로 시중의 유동자금이 말라버리면서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 가던 거액의 투자금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짧은 기간 동안에도 부침을 겪고 있지만 어느샌가 스타트업이란 장르는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이자 취준생들이 꼽는 주요한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막상 '스타트업이 뭐냐'라고 묻는다면 스타트업 재직자들조차 선뜻 명쾌한 대답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성공한 스타트업을 가리키는, 스타트업의 부분집합이라 할 수 있는 '유니콘'은 비교적 명확한 정의가 존재한다. 즉,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보통 우리나라에서는 1조원)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의미하며,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우리나라의 유니콘 수는 23곳으로 집계됐다.


이에 비해 유니콘의 상위 개념인 스타트업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스타트업계의 바이블로 꼽히는 <린 스타트업>을 쓴 에릭 리스는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드는 조직이라면 모두 스타트업"이라고 정의했다. 큰 틀에서 맞는 말이지만 사람들 머릿속에 막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스타트업의 이미지와 연결되지는 않는 것 같다.


한글 위키백과에서는 스타트업을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 기업'으로 정의한다. 또한 자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는 작은 그룹이나 프로젝트성 회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스타트업을 신생 중소기업과 구별해내기가 쉽지 않다.


스타트업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네이버, 카카오, 배달의민족, 쿠팡 같은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우리 일상생활의 동반자가 된 '플랫폼' 기업들이다. 이제는 덩치가 너무 커버려 스타트업의 범주를 벗어났지만 이런 사례들을 보면 스타트업과 플랫폼이 동의어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하지만 모든 스타트업이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한테 익숙한 스타트업들이 대부분 플랫폼을 통해 많은 고객들을 끌어들였기 때문에 익숙해진 것이지 스타트업이 반드시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다.  



<창업가의 답>은 국내 대표 스타트업 창업가 1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을 다룬 책이다. 부제는 '혁신을 이룬 스타트업은 어떻게 데스밸리를 넘었나'이다.


이미 스타트업 창업가나 대표의 성공 스토리나 인터뷰를 다룬 기사와 책은 시중에 넘친다. 저자들은 "창업가의 고뇌, 팩트만으로는 증명 못할 그들의 꿈, 창업 팀원의 열정을 글로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이 책의 차별점은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긴 시간 동안 1대 1로 직접 인터뷰했다는 점이다. 심층 인터뷰를 통해 창업가의 생각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본 것이다.  


요즘 '핫'한 스타트업의 창업가를 다뤘지만 이 책 역시 '스타트업'이 무엇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나 답은 내놓지 않는다. 하지만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사례들을 하나씩 살펴보다 보면 '이런 회사도 스타트업이 될 수 있구나', '스타트업을 이런 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감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책에 소개된 스타트업의 면면을 살펴보면 '당근마켓'이나 '오늘의집'처럼전형적인 플랫폼을 운영하는 기업은 물론, 피자 프랜차이즈(고피자)나 축산 유통업(정육각) 등으로 다양하다.



이 책에서 다룬 스타트업 사례를 비롯해 그동안 듣고 보고 느끼며 개인적으로 정리해 본 스타트업의 대표적인 특징은 이런 것 같다.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 남들이 간과했던 소위 '페인포인트(pain point)' 해결에 집중한다.

문제 해결을 위해 '가설'을 세워 빠르게 실행하고 개선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소위 '린스타트업(Lean Startup)'이라고 부르는 방식이다.  

외부 투자를 유치해 단기간에 돈과 자원을 집중적으로 투입함으로써 급속한 성장(scale up)을 추구한다.


남들이 간과했던 소비자들이 가진 불만, 페인포인트 해결에서 사업기회를 엿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소 기능 제품을 갖고 빠른 실행에 나서며, 빠른 성장을 위해 외부 투자를 끌어들이는 신생 기업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기준을 충족시킨다면 규모가 크든 작든 스타트업으로 부를 만하다.


실제로 규모가 크더라도 동네 식당이나 우후죽순 생겨나는 프랜차이즈 매장을 스타트업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이들은 새로운 페인포인트를 발견하고 해결한다기보다, 기존의 시장에서 좀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해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존 시장의 룰을 바꾸려 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같은 피자 프랜차이즈라 하더라도 <창업가의 답>에서 소개된 '고피자'는 피자업계의 페인포인트에 집중한 경우다. 아직 피자업계에는 맥도날드 같은 프랜차이즈와 차별화되는 쉐이크쉑과 같은 소위 '패스트캐주얼' 브랜드가 없다는 점에 착안했다. 결국 화덕에서 구웠지만 패스트푸드처럼 빠른 고급진 피자를 먹고 싶어하는 고객들의 페인포인트를 찾아내 해결에 나선 것이다.


정육각도 그날그날 고기의 질이 차이를 보이는 동네 정육점의 문제(페인포인트)를 해결하기 위해 축산업 유통의 마지막 단계인 세절 공장(고기를 먹기 좋게 잘라내는 단계)과 소매점을 결합했다.  


물론, 새로운 페인포인트를 해결했다고 해서 스타트업이라고 부르진 않는다.

최근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는 사업가 겸 유튜버 자청<역행자들>에서는 당장 창업이 가능한 구체적인 사업 아이템들을 소개한다. 자청은 책에서 1인 가구를 위한 가구 조립 사업, 로고 제작업 등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지만 이를 해결해줄 사업이 부재한, 틈새시장을 노린 사업 아이템에 대해 설명한다.

이는 새로운 '페인포인트'를 해결해준다는 점에서 스타트업의 특징과 일치한다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업을 한다고 해서 스타트업으로 보긴 어려울 것 같다. 자청 스스로도 자신을 '무자본 창업가'라고 얘기하지, 스타트업 기업인으로 정의하진 않는다.



다음으로 문제해결을 위해 가설을 세우고 빠르게 검증해 나가는 '린스타트업' 방식 또한 스타트업을 규정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이를 위해 많은 스타트업들이 최소 기능제품이라고 불리는 MVP(Minimum Viable Product)를 출시해 빠르게 대응한다.


당근마켓은 전신인 판교 주변 직장인들의 물물교환을 도와주는 '판교장터 앱'을 창업한 지 딱 2주 만에 개발했다고 한다. 당근마켓의 모토는 '사용자 가치가 최우선이다. 그래야 살아남는다'이다. 이와 관련해 김용현 창업자는 '핵심만 빨리 만든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부연 설명했다.


'핵심만 빨리 만든다'는 당근마켓의 신조는 창업자들의 앞선 실패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당근마켓 창업자들은 앞서 카카오에 근무하면서 '카카오 마켓플레이스' 앱을 개발했는데, 제품 출시까지 8개월이 걸렸다. 개발에 오랜 시간이 걸렸을 뿐 아니라 성과 측면에서도 카카오 마켓플레이스는 카카오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한때 스타트업의 대명사였던 카카오도 조직이 커지면서 여타 대기업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빠르게 실행하는 린스타트업 방식이 스타트업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라라브레드'는 브런치카페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외식업체다. 애초 식빵 전문점을 내세워 서울 송파동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했다. 하지만 오픈 첫 달에 예상보다 매출이 부진하자 곧바로 파워블로거 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며 문제점 분석에 나섰다. 보통 외식업체들이 최소한 2~3달 정도는 추이를 지켜보는 것과 달리 재빨리 문제점 분석에 나섰고 곧이어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해 브런치카페로 피보팅(다른 사업 아이템이나 모델로 전환하는 것)에 나섰다.


실제로 라라브레드 창업자인 강호동 대표는 자신의 책 <이렇게만 하면 장사는 저절로 됩니다>에서 린스타트업 전략에 대해 소개하며 "어쩌면 외식업이야말로 이 전략(린스타트업)을 적용하기에 가장 적절한 분야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소비자의 반응을 가장 직접적으로, 가장 빠르게 확인할 수 있고 메뉴나 서비스를 즉각적으로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호동 대표 역시 자신의 회사나 사업을 스타트업으로 명명하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스타트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외부 투자를 유치해 고속 성장을 추구한다는 점이 될 것 같다. 한 마디로 남의 돈으로 비즈니스를 한다는 것이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쓴 김영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창업혁신팀장은 책에서 "스타트업에 도전한다는 말은 내 자금만이 아니라 외부 자금을 사용해서 사업을 진행한다는 뜻"이라며 "스타트업은 외부 투자를 통해 미래 가치를 인정받아 현실화하는 기업"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성장 방식을 대표하는 회사인 '쿠팡'은 한 해 1조 원이 넘는 적자를 기록하고도 계속해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며 시장점유율을 높여나가고 있다. 적자를 감수하고 회사의 덩치를 키워나가고, 누적된 적자는 외부 투자를 유치해 충당한다. 수익을 내야만 생존하는 전통적인 기업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즈니스 형태인 셈이다.


하지만 외부 투자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어느 순간 외부로부터의 자금 유입이 중단되면 회사가 존폐의 위기에 몰리게 된다.

실제로 최근 수산물 당일 배송 서비스 '오늘회'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오늘식탁'은 협력업체에 대금을 지급하지 못하면서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해 논란이 됐다. 지난 2017년 설립 후 약 170억 원의 누적 투자금을 유치하며 75만 명의 회원을 모았지만 재무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적자 성장을 이어가다 결국 사업을 잠정 중단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적자에도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계속해서 자금을 쏟아붓는 건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확보해 '게임 체인저'가 되거나 쿠팡처럼 대규모 기업공개 혹은 M&A(인수합병)를 통해 투자금의 몇 배를 회수할 수 있으리란 기대 때문이다. 하지만 시중에 유동자금이 많을 때는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던 투자자들도 요즘처럼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해지고 시중에 자금이 말라버리면 지갑을 닫기 마련이다.


남의 돈으로 사업을 키우는 것이 스타트업의 특징이라 하더라도 기업은 결국 쓴 돈보다 번 돈이 많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경기가 좋을 때는 부진한 실적이나 부풀려진 잠재력을 화려한 수사로 포장해 '스타트업이니까' 라며 투자를 끌어올 수 있지만, 시중에 자금이 줄어들고 자원이 한정되면 결국 막연한 가능성보다 숫자에 집중하게 된다.


스타트업의 겨울이 오면서 당분간 스타트업이란 이유로 예외를 인정받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 같다. 스타트업도 결국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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