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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섭 Aug 15. 2020

다만 이 영화를 기시감에서 구하소서

[신작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주의: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아직 관람 전이라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소서.

요즘 새로운 드라마, 영화 콘텐츠를 접하면 스스로에게 묻는 게 있다.

"무엇이 새로운가?"

라는 질문인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보고 새롭다고 느낀 포인트는 딱 하나였다. 좋은 건지 아닌 지는 모르겠다. 그에 앞서 기시감이 든 부분들에 대해 먼저 써볼까 한다.

영화의 캐릭터 포스터. 메인 포스터도 그렇고 비주얼이 진짜 죽인다.

또 가족, 그놈의 가족

주인공 김인남(황정민 분)은 전직 국가기관 소속으로 추정되는 떠돌이 킬러다. 인남이 비정한 살육을 이어가며 무언가를 뒤쫓는 게 이 영화의 메인 줄거리인데, 사실 그가 그렇게까지 하는 동기는 간단하다. 바로 가족. 헤어진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심 그리고 딸로 추정되는 아이를 구해야겠다는 사명감이 그를 움직인다. 한편 그와 대척점에 있는 레이(이정재 분)는 어떠한가. 미친놈처럼 많은 이들을 희생시키면서 인남을 쫓아 죽이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인남이 자신의 형을 죽였기 때문이다. 비록 오랫동안 연이 끊긴 형이었음에도 말이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가 보다.

가족의 복수를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사실 시청자 입장에서 납득은 간다. 현실에서 누군가 내 가족을 해코지하면 찾아가 복수하고 싶은 게 보통 사람 심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만큼 가족이라는 키워드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만큼 신선하지는 않다. 보편적인 공감대를 담보하는 안전한 설정이기에 영화에서 자주 등장해왔다. 때문에 인물들의 동기가 가족의 복수인 것은 더 이상 새롭지는 않다. 현실이 아니라 이것은 영화다.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만큼 단점도 크기에, 이제 '가족'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제거한 추적극을 보고 싶다.

인남과 레이의 첫 격투 씬. 상당히 임팩트가 있었다.

거대 조직에 맞선 한 남자의 고군분투

한 남자가 혈혈단신의 몸으로 거대 조직에 맞서는 플롯은 액션 추격극의 공식이다. 존 윅, 테이큰, 아저씨 등 우리는 비슷한 이야기들을 많이 접해왔다. 특히나 이 영화는 테이큰, 아저씨와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장기매매라는 소재, 아내 혹은 딸을 구출하러 서사가 그렇다. 물론 무대가 태국이라는 것이 다르기는 하다. 그러나 그 여정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계속해서 수동적인 약자로 묘사된다는 사실은, 시대 흐름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적절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한 남자의 추적극이라는 이야기 골격은 득 보다 실이 크다 생각한다.

이러한 뻔한 플롯이 가지는 또 하나의 문제는 '리얼리티의 훼손'이다. 인남은 칼을 몇 번이나 맞아도 다시 일어나고 심지어 멀쩡하게 뛰어다닌다. 그에게 날아오는 수십 발의 총알은 한 발도 그를 맞추지 못한다. 물론 이 영화가 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것이 아님은 잘 알겠으나 그렇다고 단순히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황당하리 만큼 전투의 현실성이 떨어진다. 관객들이 이 장면들을 영화적 판타지로 받아들이고 넘어간다면, 그것은 '아 그래, 영화니까 넘어가지 뭐'라는 관객들의 오랜 피로감의 누적에서 오는 관용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런 장르물의 경쟁력이 '스토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스토리까지도' 신선하다면 두고두고 회자될 웰메이드의 반영에 오를 거라 감히 추측해본다.

홍경표 촬영감독이 직접 찍은 스틸 이미지라고 한다. 고전 영화의 한 장면 같은데 분위기 미쳤다.

새롭지 않은 지점들을 지적하며 영화를 까내렸지만 사실 나는 꽤 재밌게 봤다. 특유의 누리끼리하면서 필름 입자가 보이는 룩과 화려한 액션들 그리고 카리스마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 등 장점도 꽤 있었다. 그리고 초중반의 쫓고 쫓기는 모습에서 오는 스릴도 있었고 장소도 계속 넘어가며 꽤 빠른 호흡을 자랑했기에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런 몰입감, 긴장감은 후반부의 총과 폭탄이 펑펑 터지는 액션이 만들어내는 카타르시스로 승화됐다. 사실 애초에 이런 것을 기대하고 갔기에(스토리에 대한 기대는 1도 없었다) 만족스러운 2시간이었다. 아마 이 영화를 찾은 많은 관객들이 스크린에서 기대한 것이 이런 것이라면 그 니즈는 잘 충족한 게 아닐까. 이렇게 생각해보면 또 영화가 꼭 다방면으로 웰메이드여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적어도 이런 기대감을 충족시켰으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앞에 언급한 진짜 신선하다고 느낀 딱 한 가지 포인트는, 바로 배우 박정민이다. 포스터, 예고편에서 꽁꽁 숨긴 이유가 있었다. 성별마저 바꿔버린 과감한 도전에 한 번 놀랐고, 또 그걸 찰떡같이 소화해내는 연기력에 두 번 놀랐다. 이젠 대배우 호칭을 붙여야 할 것 같다. 연기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 하면 이제 가장 먼저 박정민이 떠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