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숨을 죽이고 다음을 준비하기
면접시간 오전 10시 10분.
면접 장소로 올라가기 전 한 입에 청심원을 털어냈다. 면접자 대기실에는 책상이 세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방금 벗어둔 것 같은 외투만 있었는데, 앞 순서에 다른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머리 손질할 시간을 아끼고자 며칠 전에 C컬 펌을 했더니 자꾸만 엇방향으로 꼬이는 머리가 신경 쓰인다.
마지막 단계까지 와서일까, 며칠 전부터 마음이 울렁였다. 자신이 넘쳤다가도 이내 곧 부족한 면만 보였다. 그로다 면접 전 날은 또 갑자기 마음이 가벼워졌다. 합격해도 지난한 회사생활이 다른 곳에서 이어질 뿐이라는 생각이 드니 한껏 부풀었던 기대가 피슉- 빠져나갔다.
서울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고층 회의실이었다. 3:1 면접이었는데, 청심원의 효과인지 50분이 어떻게 갔는 지 모를 정도로 마냥 신나게 대답했다. 며칠 동안 만들었던 예상 질문지에 있던 질문들이라 무난히 답변할 수 있었다. 덧붙여 적어도 5번은 면접관들을 빵 터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엉덩이를 떼기 직전에 날아든 마지막 질문에 아차 싶었다.
"원래 평소 성격도 이러세요?"
"네..?"
"이렇게 하이텐션..."
"앗..네..평소 성격입니다."
보수적으로 유명한 회사에서 너무 날것의 모습을 보였구나. 좋은 의미였을까 나쁜 의미였을까 괜히 찝찝한 마음으로 면접장을 나왔다. 그래도 면접 분위기는 좋았으니까 기대해볼만 하지 않을까? 작은 희망으로 연말을 보냈다.
2주가 지나도록 연락이 없었다. 2주 동안 김칫국을 너무 마셔서 김치찜을 만들고, 이미 입사하고 퇴사까지 한 기분이었다. 내 마음은 한껏 너덜너덜해졌다.
아침 8시 50분, 결과 안내 문자가 왔다. 덜컹덜컹 뛰는 심장을 부여 잡고 화면을 켰다. 작은 기대가 무색하게 여지 없는 탈락이었다.
현 회사에 다시 정 붙이기?
원하던 회사에 가지 못했다는 것보다 지금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한다는 것이 더 답답했다. 이직을 준비하던 근 2개월동안 회사에 남아있던 정을 탈탈 털어버렸기 때문에 다시 정 붙이기가 최우선과제였다. 그동안 회사에서 답이 없는 상황을 마주할 때면 '어차피 곧 떠날테니까. 내가 참자^^'라는 생각으로 흘려보냈는데, 이제는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까? 최종탈락 이후 멘탈을 잡기 어려웠던 가장 큰 이유였다.
아니 근데, 잠깐만? 회사에 다시 정을 붙일 필요 있나? 정이 없는 동안 스트레스 없이 잘 다녔는데? 직장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어쩌면 이 모든 상황이 영속된다는 믿음 아래 시작되는 것 같다. (벗어날 출구가 없다는 생각때문에)
조각난 멘탈 이어 붙이기
1. 자기 위로 단계
최종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임원들과 내가 맞지 않는 다는 것이다. 들어가서도 맞지 않았을 것이라 심심한 위로를 해본다. 넘어져서 샌 길에서 또 다른 보석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지금 회사도 처음엔 실망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좋은 선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겠지.
2. 현실 인정 단계
김치국을 잔뜩 마신 후 가장 힘든 건 현실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미 상상 속 바뀐 미래에 살고 있는데 현실로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 상상은 욕심이었음을 알되 마음이 떠난 이점은 이용해 보려 한다.
존재하는 현실을 보되 가벼운 마음은 유지하자. 회사에 정을 뗐던 것처럼 반복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를 떼어놓는 연습을 해보자.'이 정도는 뭐. 어차피 언젠가 그만둘텐데. 그럼 다시 리셋인 걸!'
3. 다시 다음을 준비
이 단계가 가장 중요하다. 내가 지금 이 회사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준비를 할 수 있을 지 똑똑하게 생각해보자. 이직 생각이 없더라도 이직을 준비해보면 좋은 점이 있다. 지금 내게 부족한 점이 무엇이고, 앞으로 내 커리어를 위해 어떤 일을 더 하면 좋은 지 알 수 있다. 마침 요즘 업무 계획 수립 시즌이라 Next Step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려고 한다. 이 업무가 나의 커리어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가를 판단해보자.
그래도...솔직히 많이 아쉽다. 하지만 쓰러져 누운 곳에 꽃이 피어날 수 있듯이 어떤 기회가 나를 찾아올 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도 있다. 섣불리 김칫국을 마셨던 이전보다 조금은 겸손해지기도 했다. 아마 내게 필요한 건 약간의 겸손함이었을 지도 모른다. 올해 목표는 숨죽이며 기회를 노리는 것!
이직을 준비하는 모든 이준생 분들, 숱한 탈락의 고베가 날아와도 우리 멘탈을 단단히 잡아보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