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기회주의자. 내 어린 시절을 저 두 마디로 줄일 수 있다. 그때는 여동생이 뭔가를 얻어내는 동안 가만히만 있으면 그 덤으로 나에게도 똑같은 것이 주어졌다. 귀한 아들인 남동생과 장녀인 나 사이에 끼어 영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자란 여동생은 어릴 때부터 물욕이 많고 좀체 자기 마음을 숨길 줄을 몰랐다. 핸드폰에 금이라도 가면 그 귀여운 얼굴을 지옥에서 온 악귀처럼 붉게 구기고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여동생은 갖고 싶은 물건이 생기면 아버지나 할머니에게 곧바로 달려갔고, 덕분에 핸드폰이 플립, 폴더, 슬라이드 형태로 유행이 바뀔 때마다 내 손에도 최신형이 쥐어졌다. 어른들이 종종 여동생 흠을 잡는 걸 잠자코 듣기만 하면 반대급부로 어른스럽다는 칭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원하는 것이 없는 듯 행동하라. 착한 아이로 있으면 언젠가는 칭찬과 함께 선물을 하사해 주겠노라!
어린아이 일 적에는 이 계시를 따르는 것이 유용했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생겼다. 항상 주어진 것에 맞추려고 하다 보니 정작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썩 달갑지 않지만 나는 그런 면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았다.
얼마 전 가족 여행을 갔을 때, 가기로 한 식당이 대기열이 길어, 근처의 어느 낡고 지저분한 식당에서 대충 요기를 하기로 한 적이 있었다. 여동생과 남동생이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동안 아버지와 나는 나온 음식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아버지는 음식이 입에 맞으시다며 ‘네가 나랑 식성이 비슷하구나.’라고 하셨고, 난 괜히 반발심이 들어 ‘아버지는 맵고 짠 걸 드시잖아요.’라고 답했다. 나는 분명 아버지를 닮아있다. 다만 식성이 그러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반발하지 못하는, 심지어 싫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성정이 닮은 것이다.
여행 마지막 날, 가족들과 있을 때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는 내가 그때는 더위를 못 이겨서 맥주 한 캔을 시켰다. 모처럼의 가족여행인 만큼 본심을 겉도는 우스갯소리나 계속하는 편이 나았겠지만, 맥주 캔을 손에 쥐고 있자니 취하지 않아도 괜스레 솔직한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 궁금한데, 왜 가족들에게 서운하다 말씀을 안 하세요? 할머니한테 어머니 그런 말씀은 서운합니다, 자식들한테 너희 때문에 마음이 상한다, 내가 속상하다 이런 말을 왜 안 하세요?’ 내가 그렇게 묻자 아버지는 언젠가 한번 할머니한테 들은 적 있는 이야기를 말해주셨다.
“내가 어릴 때 너희 할아버지가 트럭을 몰라고 시키면서, 어떤 때는 진흙길이라 바퀴가 빠질게 보이는 곳으로 가라고 하면,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너희 삼촌은 안 그랬다. ‘아부지, 저기로 가면 차가 빠집니다.’라고 하면서 너희 할아버지랑 싸웠지. 나는 너희 할아버지가 직접 깨달아야 아실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사람은 스스로 경험해봐야 알기 때문에 나는 그런 말 안 한다."
뭔가 더 말을 해보려고 했지만 여동생이 기다리는 손님이 많아 비켜줘야 할 것 같다고 해, 그쯤에서 그만뒀다. 더 이상 캐묻지 않아도 나는 그럴듯한 이야기 뒤에 숨은 뜻을 짐작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 버거워서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알아서 해결되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착한 아이로 있으면 언젠가는 보상이 온다.’는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성인인 이상 반드시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를 해야만 하는 순간이 온다. 그 순간을 좋게 넘어가기만 해서 얻어지는 “착한 사람”이란 트로피는 ‘후’하고 불면 바스러지는 부질없는 물건이다. 그 트로피가 아무리 빛나고 아름다워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삐뚤어진 방식으로 표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아버지도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힘들게 했다.
20대 끝무렵에 나는 갑자기 아주 어린아이처럼 굴기 시작했다. 그 대상이 되어 고생한 사람은 뻔하게도 남자 친구였다. 다른 즉흥적인 괴벽들은 낭만으로 포장할 수나 있겠지만, 나는 길거리에서 아무 말 없이 튀어나가서 술래잡기를 시작한다거나, 술을 먹으면 길바닥에 드러눕거나 도망을 치는 둥 전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했다. 남들 앞에서는 멀쩡하게 굴다가 남자 친구와 둘이 있으면 갑자기 이성을 내려놓고 망나니처럼 굴었다. 또 종종 운전을 하다가 실수를 해서 사고가 나는 상황을 가정하는 둥 내 안전이 걱정될만한 말을 우스갯소리로 했다. 어릴 때를 통틀어 그런 종류의 민폐가 되는 짓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지금 떠올리자면 등골이 오싹하게 부끄럽지만, 그건 아마 의사표현의 어설픈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두 마디였다.
관심받고 싶어.
거꾸로 이 두 마디를 직접 말하면 어떻게 될까? 너무 유치한가? 분명 그 대상이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준다는 확신이 있어야겠지만, 적어도 앞전에 말한 것과 같은 난리로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불필요한 과정을 건너뛸 수 있다. 물론 연인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는 좀 더 문명인처럼 말해야겠지만 말이다. 나는 그 방법을 배워나가는 중이다. 평생을 누군가 알아채 주기를 바라며 에둘러서 말하고 살아왔기에 그것이 그리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솔직한 진심을 말하는 것이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특히 가족들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가족들을 볼 때면 내 못난 점을 잔뜩 부각해놓은 흉한 캐리커쳐를 보는 것 같아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친구들을 만날 때처럼 마냥 편안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가족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 가족이, 우리 아버지가 행복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