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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끄 Dec 03. 2019

화장실 손님

첫 번째 무서운 이야기


  어렸을 때 저와 제 여동생은 할머니 댁에 놀러 가는 것을 정말 좋아했습니다. 할머니 댁은 시골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이었는데, 너른 마당이 있어서 초등학생이었던 저희들에게는 놀이터나 다름없었어요. 거기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는 저희를 혼내시는 법이 없었죠.      


  좋은 추억이 많지만 역시, 할머니 댁의 화장실만 생각하면 지금도 신경이 곤두섭니다.  화장실은 나무 바닥으로 된 거실에 위치해있었어요. 모두가 잠든 밤에 혼자 나와 화장실을 갈 때면 바닥 삐걱거리는 소리에 귀청이 떨어질 것 같았습니다. ‘화장실 손님’이 처음 찾아온 건 TV에서 어린아이들이 실종 뒤 살해된 사건을 본 날이었어요. 겨우 잠들었다가 새벽에 소변이 마려워서 깬 저는 안방 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바지를 내리고 볼일을 보고 있었는데, 그때      



  “똑똑똑”     


  하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구세요?”     



  하지만 제 물음에 아무도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또 “똑똑똑”고 한 번 더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저는 여동생이 기다리나 보다 싶어 얼른 손을 씻고 화장실 문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문 밖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여동생에게 어젯밤에 화장실 문 앞에서 장난을 치지 않았냐고 물었습니다. 여동생은 그런 적 없다더군요. 할머니께 간밤의 일을 말씀드렸더니 “네가 잘 못 들었겠지.”라시며 좀체 믿어주시질 않았어요. 나중에는 “도둑괭이가 들어와서 문을 두드리고 간 거다.”라는 동화 같은 구실로 둘러대시기도 했습니다. 어렸던 저도 납득할 수가 없었죠. 현관문이 잠겨있는데 들어올 수 있을 리도 없고, 문을 일정하게 세 번 두드리는 것은 고양이에게 불가능할 테니까요.     



  그날 이후 밤에 화장실을 갈 때면 매번 노크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억지로 소변을 참던 저는 언제부터인가는 그게 견딜만해지더군요. 저는 그 존재를 ‘손님’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똑똑똑”

  “누구세요?”

  “…….”

  “잠깐만 기다려요, 손님. 금방 나갈게요.”

  “똑똑똑”




  이런 식으로 대화가 아닌 대화를 해보기도 했죠. 거기다 과장을 섞어 여동생에게 무용담을 늘어놓고는 했습니다. 하루는 잠을 자던 여동생이 제가 밤에 화장실에 가는 걸 보고 따라 나왔어요. 저는 여동생에게 문 밖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어요. 저는 혼자 있을 때만 그런 소리가 나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문제는 여동생을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뒤부터였습니다. 우리는 화장실 안에서 잠시 숨죽이고 있었어요. 여동생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말했어요.     



  “에이, 언니야. 아무 소리도 안 나네. 거짓말 치지 마라.”      


 그때,     


  “똑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희 둘은 깜짝 놀라 딱딱하게 굳었어요. 하지만 여동생 앞에서 괜히 센 척을 하고 싶었던 저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화장실 손님’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기다려요, 손님. 안에 사람 있어요.”

  “…….”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또,     


  “똑똑똑”      



  하고 문을 두들겼습니다. 저는 한술 더 떠 으름장을 놓았어요. 그러지 말았어야 했죠.     



  “자꾸 두들기면 문짝을 없애버릴 거예요.”

  “…….”     



  그때였습니다.      



  “쾅!”

  “꺄아악!”     



  저희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쾅! 쾅!” 바깥의 존재는 문을 계속 두들겨 댔습니다. 여동생과 저는 겁에 질려 울면서 할머니를 목이 터져라 불렀어요.      



  “할머니!! 할머니!!!!”

  “쾅쾅쾅! 쾅쾅쾅!!”     


  그때 문이 벌컥 열렸습니다. “꺄악!” 저는 너무 무서워서 눈을 질끈 감았습니다.     


  “아이고, 야들아. 와 이라고 있노? 문이 안 열리드나.”     



  할머니였습니다. 여동생과 저는 귀신이 있다는 둥 문을 쾅쾅거렸다는 둥 횡설수설 호소했지만 믿어주시질 않았어요. 부모님도 저희 자매가 야밤에 화장실 문을 못 열어서 두들겼다고만 알고 계셨습니다. 저희는 한동안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도 무서움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나중에는 할머니 댁에 안 가겠다고 떼를 쓰던 것도 그만두었죠. 하지만 절대 자고 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시험공부나 숙제 핑계를 대면서 해가 지고 나면 어떻게든 그곳에서 벗어났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말씀은 안 하셔도 서운해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것 때문에 엄마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어요.      



  제가 중학생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수험생일 때 할머니마저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할머니의 49제 날은 잔비가 내렸어요. 평소에 감정표현을 잘 안 하는 아빠도 절에서 할머니의 옷가지들을 태우면서는 안경을 벗고 눈가를 훔치셨습니다. 저도 여동생도 죄송한 마음에 많이 울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비가 많이 왔습니다. 엄마와 여동생은 뒷좌석에 잠들어 있었는데, 아빠는 조수석에 앉은 저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너희가 왜 할머니 집에서 안 자려고 했는지 안다.”

  “네?”




  그 뒤에 아빠가 들려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제야 말씀을 하시는 이유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할머니 댁 주변에 주택가가 제법 들어섰지만, 아빠가 어릴 때는 앞에 깔린 비포장 도로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대요. 그래서 도둑이 들일은 없었지만, 할아버지는 멧돼지나 너구리들이 못 들어오게 벽돌담을 둘러치셨습니다. 외동아들이었던 아빠는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면 심심해서 마당에 살고 있는 곤충들을 가지고 놀고는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는 누가 “똑똑똑”하고 작은 돌멩이로 담벼락을 때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누구야?”     



  아빠가 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잘못 들었나 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또 “똑똑똑”하는 소리가 났어요. 분명 벽 너머에 누군가 있다고 확신한 아빠는 감나무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건너편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두들기는 소리는 아빠가 감나무에서 내려오자마자 또 시작되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아빠는 소리가 나는 쪽 담벼락 제일 밑의 헐거운 벽돌을 끄집어냈어요.      



  “어?”     



  거기에는 마치 피멍이 든 것처럼 시커먼 발이 두 개가 있었습니다. 그 크기가 세숫대야 만했는데 두툼한 발가락에 비해 발톱들이 너무나 작아서 그냥 혹들이 달린 살덩이 같았대요. 아빠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하지만 발목 위의 존재가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하고 싶었어요. 아빠가 후다닥 달려가 집안에서 의자를 꺼내어 올 때까지도 분명 그 발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의자에 올라가 조심스럽게 담 너머를 봤는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할아버지께 그 일을 말씀드렸지만 믿어주지 않으셨대요. 너구리가 땅을 파는 소리일 거라고만 하셨죠. 그 뒤로 아빠는 무서워서 마당에서 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집을 나설 때나 돌아올 때면 마당을 지나쳐야 했고 담벼락 너머의 존재는 어김없이 “똑똑똑”하고 담벼락을 두드렸어요. 어느 날 마당을 지나다가 또 그 소리를 들은 아빠는 답답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대체 왜 자꾸 두드리는데? 나한테 뭐 원하는 게 있나?”

  “... 똑”     



  아빠는 깜짝 놀랐어요. 항상 세 번씩 두드리던 것이 한번 두드린 건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빠는 문득 담벼락 너머의 존재가 기다 아니다로는 대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너는 귀신이가?’하고 물어봤지만 그 존재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아빠는 자기 생각이 틀렸나 보다 하고 집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려는 찰나.     



  “똑”     



  하고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대요. 아빠는 겁에 하얗게 질렸습니다. 그것이 담장을 넘어 마당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 뒤로도 그놈은 아빠가 현관 근처로만 가면 어김없이 “똑똑똑”하고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중에는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바로 바깥벽을 똑똑똑 두드렸고요. 한 번은 할아버지를 현관으로 마중 나갔다가 신발끈을 풀고 계신 할아버지 뒤로 또 그 검게 불어 터진 발을 마주쳤대요. 아빠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는데,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드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디 너구리가 새끼를 깠나, 썩는 냄새가 나네.”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기침을 하셨는데, 이상하게 그 뒤로 호흡기가 안 좋아지셨습니다. 병원에서는 단순한 감기라고 했지만 밤새도록 할아버지 기침소리가 들려오면 아빠는 자기 탓인 것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었어요. 할머니는 이상하게 생각하셨대요. 아들이 요즘 따라 마당에서 놀지도 않고, 이제는 아예 방 바깥으로 나오려고 하질 않았으니까요.      



  할머니는 아들이 자꾸 귀신이 있다는 둥 헛소리를 하니 답답하셨는지 친한 비구니 스님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조언대로 개 오줌을 얻어다가 마당 곳곳에 뿌리셨어요. 종교나 미신을 아주 싫어하는 할아버지께는 비밀로 하시고요.



  그날 밤 아빠는 소변이 마려워서 깨는 바람에 화장실을 가려고 방에서 나왔습니다.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는 그날따라 우렛소리처럼 커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아빠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똑똑똑”     



  현관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문 바깥에는 시커먼 그림자가 서있었습니다. 아빠는 금방 누구인지 알아봤어요. 할아버지였습니다.      



  “똑똑똑”     



  할아버지는 얼굴에 수포가 돋아나 있었고, 발이 퉁퉁 불어 슬리퍼를 꽉 채우고 있었습니다. 자세히 들어보니 뭔가 웅얼거리는 소리도 났는데, “억울해... 아니야... 억울해…….”라는 말이었어요. 아빠는 한동안 얼어서 움직이지를 못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안방에서 주무시는 할머니를 깨웠대요. 할머니가 나와 거실 불을 켜자 할아버지는 노크를 멈췄습니다.      




  “아니, 너거 아부지 와 저러고 있노.”     



  할머니는 현관으로 다가가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아... 안 돼.” 아빠는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지만 그럴 틈도 없이 할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얼굴에는 수포가 없었고 발도 정상적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빠를 보면서 투덜거리셨죠.     



  “에이, 잠깐 담배 한 대 피러 나갔는데, 문을 와 잠궈놨노.”

  “빨리 들어와 자이소.”



  아빠는 문을 잠근 적이 없었습니다. 아까 본 것은 분명 할아버지가 아닌 다른 존재였어요. 불길한 예감이 든 아빠는 자기 방으로 돌아와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습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았습니다.      



  “똑똑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게 집안으로 들어왔어…….’ 아빠는 숨을 쉬기 어려울 정도로 무서웠습니다. “똑똑똑”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는 밤새도록 계속되었고 아빠는 한 숨도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날이 밝아지고 나니 소리가 멈췄습니다. 아빠는 바로 할머니가 자주 가시던 절로 냅다 뛰었어요. 절에 가까워질수록 아침 예불하는 소리가 커졌고, 아빠는 그제야 긴장이 좀 풀리는지 눈물이 억수같이 쏟아졌대요. 스님들은 웬 꼬마가 새벽에 통곡을 하면서 절로 들어오니 무슨 일인가 싶어서 하던 기도를 멈췄는데, 그 할머니와 친하신 비구니 스님께서 걸어 나와 아빠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스님은 아빠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보살님 얘길 들었을 때는 도깨비장난인 줄 알았더니 역신이었구나. 쯧쯧.”     



  아마 생전에 역병에 걸려서 마을에서 쫓겨난 자일 것이라고 하시며 아빠에게 몇 가지 당부를 하셨어요. 귀신을 의식하면 계속 말을 걸어오니까 절대 대답해주지 말아야 한다.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사실을 얘기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제일 무서웠던 건 한번 집안에 들인 역신은 내보내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어요. 불안해하는 아빠에게 스님은 종이에 뭔가를 적어주셨대요. 이걸 화장실 문 눈에 안 보이는 곳에다가 써 놓으라고요.     



  그날 밤 아빠는 몰래 의자를 들고 화장실로 가서 문 윗면에 스님이 주신 글자를 유성 펜으로 눌러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소변을 보려는 찰나,     



  “쾅쾅쾅!” “쾅쾅쾅!!”     



  하고 문을 때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빠는 겁에 질렸어요. 하지만 스님이 절대 대답하지 말라고 했던 것이 기억나 입을 틀어막고 숨을 죽였어요. 역신은 문이 부서져라 두들겨댔습니다.      



  “쾅쾅쾅!”     



  아빠는 너무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소변이 그대로 나와 바지를 적시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쿵쿵쿵하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확 하고 열렸습니다. 아빠는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어요.     



  “으악!”

  “뭐고? 야가 와 이라노, 문이 안 열리드나?”     



  다행히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할머니였습니다. 아빠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주저앉아 잘못했다고 엉엉 통곡을 했대요. 할머니는 별일이다 싶어서 문을 여닫아보셨어요. 당연히 문은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에 쓴 문자는 그 요괴를 대상에 묶어두는 주박 같은 것이었을 거라고 아빠는 말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야밤에 간간히 화장실에서나 약하게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났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그를 무시했고 그런 만큼 역신의 기운은 더 약해지는 것 같았대요.     



  “그럼 내가 문을 없애버리겠다고 해서 역신이 화가 난 건가?”

  “아빠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아니면 문을 없애달라는 거였나?”

  “…….”     



  아빠는 마지막 제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어요. 할머니 댁은 여러 사람들이 전전하다가 이제는 빈집이 되었고, 곧 재개발로 헐릴 예정이라고 합니다. 화장실 문이 철거되면, 역신이 혹시 풀려나게 되지 않을까 저는 가끔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혼자 방에 있는 때면 괜히 자꾸만 방문을 흘끔 쳐다보게 됩니다. 누군가 문을 두드릴까 봐요.     



  “똑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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