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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끄 Jan 09. 2021

분실물

두 번째 무서운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인테리어 회사를 다니고 있는 <목각 이야기꾼>의 열렬한 팬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 겪은 무서운 사건이 있었는데, 한번 사연으로 보내봅니다. 이야기꾼님의 목소리로 들어보고 싶어서요.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이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시키는 곳이었습니다. 야자가 끝나면 엄마나 아빠가 매일 저를 태우러 오셨는데, 그날은 전국적으로 폭설이 와서 친구들이랑 같이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아빠가 계속 고집을 피우는 바람 결국 엄마가 저를 데리러 학교까지 오셨어요. 엄마는 길이 미끄러워 차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가지 못해서 학교 언덕길 밑에서 저를 기다리셨어요. 저는 내리막을 내려가다가 그만 미끄러져 엉덩이를 찧었습니다.



  "에이씨, 온 김에 위에까지 와주지. 자빠져서 치마 다 버렸잖아."



  저는 뒷좌석에 올라타며 괜히 심술을 부렸어요.



  "하이고, 저 혼자 넘어져놓고 나한테 성질이야. 타기 싫으면 내릴래?"



  저는 가방을 차 바닥에 집어던지고 등을 돌린 채 뒷좌석에 누웠습니다. 엄청 짜증이 났었는데, 엄마가 히터를 빵빵하게 틀어놔서 몸이 좀 녹고 나니 기분이 금방 풀리더라고요. 그렇다고 짜증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는 좀 자존심 상하고, 집에나 빨리 도착했으면 했어요.


  하지만 평소에 버스로 10분이면 가는 거린데, 그날은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그런지 길은 차량들로 꽉 들어차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30분이 지나고, 40분이 지나도. 창밖은 저희 학교가 위치한 공단의 살벌한 풍경 그대로였습니다. 저는 핸드폰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





  꿈속에서 저는 시골 동네의 좁은 차도 한가운데를 걷고 있었어요. 도로변에는 새시가 갈색 알루미늄이나 나무로 만들어진 구식 상가건물들이 있었는데, 간판은 빨간색 파란색 붓글씨로 되어 있었습니다. '철수네 철물점', '햇님과일상회', '영순약방'... 무슨 흑백영화처럼 세상이 새까맣고, 길에는 저 말고는 아무도 없었어요.




  저는 곧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요. 옛날 폰트로 시외버스 공용정류장이라고 되어있었어요. 버스가 빼곡하게 대어져 있었는데, 모두 시동이 다 꺼져있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순간 너무 무섭고, 한기가 들어 몸이 오들오들 떨리더라고요. 주변을 둘러보니 언제 왔는지 사방에 눈이 쌓여 있었어요. 그런데 문득 어떤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뭔가 내가 잊어버리고 있는 게 있는데... 뭐였더라?'



  학교에 뭘 놔두고 왔던 걸까요? 문제집이나 수행 평가지였나? 핸드폰? 아니야, 훨씬 더 중요한 건데. 저는 두리번거리며 버스터미널 주위를 걸어 다녔어요. 제가 뭘 찾고 있는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에요. 버스들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며 뭐라도 눈에 띄는 게 없는지 확인했습니다. 추위에 몸이 오그라들었지만 제가 잊고 있었던 뭔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어요. 처음엔 빠른 걸음으로 돌아다니다가, 더 이상 안 되겠다는 기분이 들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제가 잊어버리고 있는 게 뭔지 기억 나질 않았고, 버스터미널에는 아무도 없어 누구에게 물어볼 수조차 없었습니다. 저는 계속 미친 사람처럼 찾아 헤맸어요.


  너무 무서웠습니다. 계속 눈물이 났어요.




  "영주야, 일어나! 영주야!"

  "헉!"



  엄마가 부르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히터의 깝깝한 공기로 들어찬 차 안이었어요. 저는 정신이 미처 다 깨어나지 못한 상태로 엉엉 울며 엄마에게 횡설수설 말했습니다.




  "흑, 어허어... 엉... 엄마, 엄마. 지금 차 돌려야 돼. 다시 돌아가야 돼. 엉엉."

  "괜찮아, 영주야. 너 지금 잠에서 덜 깬 거야."



  운전대를 잡고 있었던 엄마는 고개만 뒤로 저를 보시며 타일렀어요.



  "안돼, 놔두고 왔어. 엉엉. 내가 잘못했어."



  저는 그렇게 한참을 훌쩍이면서 헛소리를 했습니다. 그 꿈은 정말 너무 생생했거든요. 너무 추워서 발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느낌. 이유도 알 수 없는 죄책감은 너무 무거워서 숨도 쉬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괜찮아, 영주야. 엄마 여기 있어."



  엄마는 앞뒤가 꽉 막힌 자동차 전용도로 위에 갇혀서 귀신이 씐 것처럼 헛소리를 하는 딸을 달래야 했습니다. 평소에 10분 걸리는 집까지는 두 시간이 한참 넘고 나서야 도착했습니다. 제 기억 속에서는 엄마가 전혀 흔들림 없이 평상심 그대로였는데, 사실 정말 많이 무서우셨대요.


  저희 집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저도 정신이 들었어요. 난생처음 겪은 경험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또 창피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했어요. 꿈에서 나온 장소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는데,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았거든요. 엄마한테 꿈 이야기를 하면서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엄마는 제 말을 끊고 말씀하셨어요.



  "입시 스트레스인가 보지. 깊게 생각하지 마. 그건 그렇고 집에 들어가면 아빠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서 걱정시키지 말고 씻고 잠이나 자. 너네 아빠 오늘 늦게 퇴근해서 피곤할 거야."



  집에 와보니 아빠는 맥주를 한 캔 하시고 TV를 틀어놓은 채로 안마의자에 잠들어 계셨어요. 저는 엄마 말대로 들어가서 샤워부터 하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아까까지 분명 잠들어있던 아빠가 식탁에 앉아 눈을 부릅뜨고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순간 등골이 오싹했습니다.



"아빠, 안 자?"



  제가 그렇게 묻자 아빠는 그제야 "어 응, 자야지."하고 멋쩍게 말씀하시며 방 안으로 들어가셨어요.



  눈은 새벽에 그쳤지만 그 여파로 도로가 얼어서 몇 중 추돌사고가 일어났다느니, 보일러나 수도계량기 동파사고가 많이 생겼다느니 뉴스에 난리가 났어요.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아침밥 먹을 때 잠시 TV에서 스쳐 지나갈 뿐이지, 학교 가고 나면 저랑은 관계없는 이야기였죠. 수업 듣고 급식 먹고 수업 듣고 석식 먹고 야자하고 집에 가고.


  엄마 차 안에서 꿨던 그 꿈을 친구들한테 털어놓기도 했는데, 다들 가위눌려본 경험이나, 헛것을 봤다거나 하는 경험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 일도 별 일 아닌 것 같고 그래서, 금방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학교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뭔가 중요한 걸 잊어버린 것 같은 불안감은 계속 남아있었습니다. 마치 그 꿈이 저에게 씨앗을 심은 것처럼요.



  며칠 뒤에 또 폭설이 내렸습니다. 이쯤 되면 학교에서 일찍 집에 보내줄 법도 한데, 저희 학교는 여전히 야자를 고집했어요. 딱히 명문고도 아니고, 학생들을 오래 붙잡아두는 게 교장선생님의 유일한 자부심이었을 거예요. 야자 마칠 시간쯤에 엄마 카톡이 왔어요. 이번엔 아빠가 저를 데리러 온다고요.


  저는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학교 언덕을 신중하게 내려왔습니다. 아빠 차는 금방 찾을 수 있었어요. 저는 조수석에 타려다가 엄마가 앉아 있길래, 뒷좌석에 가방을 던져 넣으며 올라탔습니다.




"엄마도 같이 왔네?"

"응? 아빠만 왔는데?"



  아빠 말을 듣고 저는 고개를 들어 조수석을 봤는데,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분명히 누군가 타고 있었는데... 소름이 돋더라고요.



"뭐지? 귀신인가, 하하."



저는 일부러 농담하듯이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대꾸를 하지 않으셨어요. 한참 동안을요. 룸미러로 아빠 표정이라도 보려고 했지만, 내비게이션이 안경에 비쳐서 알 수가 없었어요. 길은 지난번에 눈이 왔을 때처럼 대로변은 완전히 꽉 막혀서 움직이지를 않았습니다. 저는 괜히 무섭고 어색하기도 해서 엄마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요.




저    : 엄마, 나 귀신 봤다?

엄마 : 무슨 소리야. 아빠는 아직 안 왔어?

저    : 왔는데, 차 타기 전에 봤을 때 분명 조수석에 엄마가 있었거든? 아무튼 누가 있었어.

저    : 아닌가?

저    : 그런데 타고 보니 아빠밖에 없는 거야.

엄마 : 아이고 얘가 또 왜 이래.

엄마 : 영주야, 아빠한테 아무 얘기하지 마라. 아빠 그런 얘기 싫어해.

저    : 왜? 아빠한테 얘기했는데, 아빠 좀 이상해. 아무 말도 안 해.

엄마 : 아휴. 그냥 와. 헛소리하지 말고.



  아빠가 워낙 과묵하신 편이라 저는 크게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는데, 엄마가 그런 말을 하니까 기분이 싸하더라고요. 빨리 집에 갔으면 좋겠는데, 창 밖에 차들은 꿈쩍도 안 하는 게 글른 것 같고, 그냥 페이스북을 구경하면서 시답잖은 댓글이나 달았어요. 그러다 보니 히터에 긴장감이 점점 녹아가지고 저는 또 잠에 들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또 지난번에 봤던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도로 양 옆에는 그때처럼 옛날 상가들이 들어서있었어요. 하늘은 시커먼데 눈이 풀풀 내려오면서 바닥에 소복이 쌓여 눈이 부셨습니다. 저는 천천히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눈은 점점 쌓여가는데 이상하게도 눈 밟는 소리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혼자 걷고 있었어요.



  '아닌가? 나 말고 누가 있어.'



  저는 둘이서 걷고 있었어요. 제 손을 누가 잡고 앞서서 가고 있었습니다. 익숙한 뒷모습. '아빠다.' 저는 안심이 되었어요. 아빠는 과묵하지만 늘 제가 해달라는 걸 거절하는 법이 없으셨어요. 그래서 어릴 적에는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했었죠.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점점 눈이 쌓이더니 제 무릎까지 왔어요.


  아니 다시 보니 제 키가 작아진 거였습니다. 제 시선의 높이는 어린아이처럼 아빠의 허리춤에 채 닿지 못했어요.


  아빠는 여전히 성큼성큼 걷고 있는데, 저는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아빠, 천천히 가!' 소리치고 싶은데 말이 목구멍에 걸려서 나오지를 않았어요.



  '괜찮아. 아빠 손만 놓지 않으면 되니까.'



  우리는 곧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어요.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위태로운 건물. 저도 무너져 내릴 것 같았습니다. 지난번처럼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닥쳐왔기 때문이었어요.



  갑자기 늘어선 버스 중 한대가 쿠르릉하고 시동이 걸리더니 천천히 후진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아빠가 제 손을 놓았어요. '안돼!' 저는 속으로만 외칠뿐 아무 소리도 낼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저를 놔두고 그 버스로 달려갔어요. 눈은 어느새 제 허리춤까지 쌓였고, 제가 안간힘을 써도 제 시간만 슬로모션처럼 천천히 흘러 아빠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어요. 버스 문이 열리면서 아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탔습니다. 저는 엉엉 울었어요.



'가지 마, 아빠. 가지 마.'



  버스는 빙글 후진을 하더니 천천히 터미널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뒷 창문으로 아빠의 얼굴이 보였어요. 분명히 저를 보고 있었어요. 저는 펑펑 울면서 어떻게든 따라가려고 애를 썼지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를 않았어요. 차는 점점 멀어져 가고 아빠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졌습니다. 저는 모든 희망을 잃고 주저앉았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누군가가 제 머리채를 잡는 것 같더니 제 얼굴은 눈더미에 파묻혔습니다. 숨이 막혀왔습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손으로 어떻게든 제 머리를 잡은 손을 떼어보려고 했지만 그 손은 돌덩이처럼 단단했어요.



  '살려주세요!'



  저는 속으로라도 악을 썼습니다. 누군가 나를 제발 도와달라고요. 그리고, 어느 순간 그 손은 갑자기 제 머리를 놓아주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숨을 쉴 수 있었어요. 그리고 뒤를 돌아 그 손의 주인을 봤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었어요.



  '할머니?'



  돌아가신 할머니였습니다. 얼굴이 거무죽죽하고, 손발이 앙상하게 말랐는데 눈은 새빨개서 저를 노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할머니는 다시 손을 제 머리로 뻗쳐왔습니다.




  "아아아아악!!"

  "왜? 뭐야!"



  저는 몸부림을 치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주변을 보니 저는 저희 집 아파트 주차장이었어요. 아빠는 잠든 저를 깨우려고 어깨에 손을 얹었다가 저에게 한방 맞은 상태였죠. 온몸이 떨리고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를 않았어요.


  아직 충격에서 덜 깨어난 저는 아빠의 부축을 받고 집에 들어가면서도 엉엉 울면서 헛소리를 했어요.  아빠가 나를 놔두고 갔다는 둥, 할머니가 나를 죽이려고 했다는 둥. 아빠는 제가 무서운 꿈을 꿨다고, 잠이 덜 깨서 그런 거라고 저를 타이르면서 방까지 데려다주셨어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토요일이라 출근 안 하실 텐데 아빠가 안 계셨어요. 엄마한테 아빠 어디 갔냐고 물어봤더니, 절에 가셨다고 했어요. 저는 핸드폰을 보면서 식탁에 차려진 밥을 먹었습니다. 어제 꿈 때문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어요.



  "나도 아빠 따라 절에라도 가볼까, 엄마. 나 요즘 무슨 귀신에 씐 거 같아."



  그 말을 듣고 엄마는 개던 빨래를 내버려 두고 식탁에 마주 앉으셨습니다.



  "너네 아빠는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그리고 엄마가 그날 해준 얘기는 머리털이 곤두서게 무서우면서도, 가슴이 죄일 듯 안타까웠어요.





  "너는 모르겠지만, 아빠한테는 쌍둥이 여동생이 있었어. 이란성쌍둥이가."



  그때가 아직 60년대였으니 사람들이 아직 먹을게 부족하던 시기였대요. 할아버지는 철물점을 하셨는데, 살림이 넉넉하지는 못해서 할머니도 식모일을 하셔야 했어요.


  그런데 이미 자식이 자매가 있는 상태에서 아빠와 아빠의 쌍둥이 여동생이 태어난 거죠. 매일 끼니 때우기도 힘든 상황에 먹여야 할 입이 둘이나 늘었으니, 할머니는 잔인한 결심을 했어요.


  아빠는 그대로 두고 쌍둥이 여자 아기를 죽으라고 엎드려 놓은 거죠.


  그런데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는지, 쌍둥이 여동생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순했대요. 아빠는 천방지축으로 돌아다니고 울거나 떼를 쓰기도 했는데, 여동생은 그렇게 조용하고 애를 먹이는 법이 없었어요. 밥도 잘 안 먹어서 쌍둥이인데도 아빠보다 두어 살은 어린것처럼 체구가 작고 볼품없었대요. 마치 자기 입장을 아는 것처럼 최소한의 폐만 끼치고 살았던 거죠.


  아빠가 7살이 되던 해, 할아버지는 없는 형편에도 어떻게든 아빠를 학교에 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동네에는 학교가 없어서 아빠는 시외버스를 타고 한 시간을 가야 있는 국민학교를 다녀야 했습니다. 요즘처럼 데려다주는 건 꿈도 못 꿨어요. 할아버지는 가게를 봐야 했고, 할머니는 식모일을 가면서 공짜 끼니를 먹이려고 두 누나를 데려가셨으니까요.


  아빠는 매일 아침이면 삶은 고구마를 책가방에 챙겨 넣고 여동생을 깨워 손을 붙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여동생은 버스터미널 맞은편의 기사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이모(할머니의 언니)에게 맡기고 아빠는 혼자 버스에 올라타고 학교에 가는 거죠.



  문제의 그날은 기록적으로 폭설이 왔대요. 아빠는 여느 때처럼 비슷한 시간에 여동생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습니다. 눈이 발목까지 쌓여있다 보니 어린아이들의 발걸음은 한없이 늦어지고 말았어요. 몸이 약한 여동생은 더욱더 느렸고요. 학교를 빼먹으면 할아버지한테 엉덩이에 피가 나게 맞을 테니, 아빠는 마음이 급해져서 여동생을 질질 끌다시피 데리고 갔대요.



  그런데 아빠가 겨우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에는, 타야 할 버스가 이미 출발하려고 차를 돌리고 있었습니다. 아빠는 그때, 그만 여동생의 손을 놓아버렸어요.


  있는 힘껏 뛰어간 아빠는 버스 문을 두들겨 겨우 올라탔고, 버스요금을 내면서 그제야 아차 싶었답니다. 그리고 버스 맨 뒷좌석으로 뛰어가서 차창 너머로 눈밭에 홀로 주저앉아 있는 여동생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았어요.



  아빠는 버스기사에게로 돌아가서 얼른 내려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버스기사는 안 그래도 바빠 죽겠다면서 짜증만 내고 세워주지를 않았대요. 아빠는 두 손을 싹싹 빌면서 버스기사에게 사정했습니다.



  "제발 내려주세요. 제 여동생을 두고 왔어요. 여동생을 데려다주고 가야 돼요. 제발요."



  그래도 요지부동이었던 버스기사는 드문드문 앉아있던 손님들이 '거 그냥 좀 내려줍시다.'라며 보채니까 그제야 차를 세우고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겨울의 이른 아침은 눈구름 탓에 어두컴컴했습니다. 아빠는 푹푹 꺼지는 눈을 해치고 있는 힘껏 달렸어요. 버스가 한참을 가서 내려준 건지 버스터미널은 도통 보일 기미가 보이 지를 않았대요. 숨이 턱까지 차올랐을 때가 되어서야 겨우 아빠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여동생이 앉아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그 사이에도 눈이 많이 내려서 흔적조차 없었대요. 아빠는 바로 이모네 식당으로 뛰어갔는데, 거기에도 여동생은 흔적도 없었어요.


  아빠는 목이 터져라 여동생의 이름을 외치면서 터미널을 뛰어다녔어요. 대합실에도, 다방에도, 화장실에도 여동생은 없었습니다. 다른 버스들을 모조리 뒤져보고, 역무원에게 부탁해서 방송도 해봤지만 여동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을 붙잡고 물어봐도 목격자가 단 한 명도 없었대요.


  아빠의 쌍둥이 여동생은 그날로 실종되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어요.


  엄마가 여기까지 얘기했을 때, 저는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그 쌍둥이 여동생이, 제 고모가 너무 가여워서요. 엄마는 그런 제 등을 쓸어주며 말했습니다. 아빠는 쌍둥이니까 느낄 수 있었대요. 여동생에게 뭔가 끔찍한 일이 일어났고, 이미 목숨이 꺼졌을 거라는 걸요.


  그래서 아빠가 절대 저 혼자서 학교를 다녀오지 못하게 하는 거라고요.




  다행히 그 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지금까지도 저는 헛것을 보거나 꿈을 꾸는 일이 없었어요. 제가 죽은 고모의 혼령을 본 걸까요? 미신을 안 믿는 엄마는 언젠가 제가 잠결에 엄마랑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었거나 했던 게 꿈으로 나온 거라고 말해요. 무슨 일인지 내막을 알고 난 후로부터는 그런 꿈을 꾸는 일이 없어졌으니 엄마 말이 맞는 걸지도 모르죠.


  아빠랑은 차마 그거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동안 엄청난 죄책감을 이고 살았을 텐데 도저히 한마디도 얹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아빠는 2년 전에 공무원직을 은퇴하시고 지금은 매일 새벽같이 절에 가십니다. 그리고 오후가 되어서야 느지막이 집으로 들어오시곤 해요. 묵묵히 입었던 옷을 옷장에 걸어 넣는 아빠를 보면서, 저는 종종 가늠해봅니다.



  불상 앞에서 무릎을 꿇은 아버지가 어떤 기도를 하고 계실지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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