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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끄 Jan 17. 2021

쿵쿵

세 번째 무서운 이야기




  내가 이 글을 남기는 이유는 딱 한 가지다. 혹시 내가 죽어서 발견된다면, 그건 자살도 아니고 사고도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다. 그 범인도 여기에 밝히겠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설령 누군가 이 글을 보게 되더라도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니까. 




  혜주를 알게 된 건 학기가 시작된지도 한참 지났을 때였다. 수업을 들으러 가고 있는데 한 여자애가 눈에 띄었다. 키가 150은 될까? 작고 비쩍 마른 여자가 턱까지 쌓아 올린 책더미를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으니 시선을 끌 수밖에. 그냥 지나치려다 이상하게 얼굴이 눈에 익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더니 누군지 기억났다.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 같은 수업에서 종종 마주치던 과동기였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과는 학년당 인원이 꽤 많아서 동기들끼리 서로 잘 알지 못했다. 더군다나 나는 붙임성도 없고 불편함을 무릅쓰고 술자리에 나가거나 하는 타입도 아니어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안면이라도 트고 지냈으면 내가 좀 짐을 들어줬겠지? 수업시간에나 안 늦게 발걸음을 재촉하려는데 자꾸 뒤에 여자가 신경 쓰였다. 엄청 무거워 보이던데, 어디까지 들고 가려는 거지? 예쁘장하게 생겼던데.


  '에이씨, 모르겠다.'


  나는 뒤를 돌아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기사도 정신 같은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동안 좀 심심하기도 했고, 저렇게 버거워 보이는 짐을 들어주겠다는데 설마 거절하기야 할까 싶어서였다.


  "아, 저... 그... 같은 과 맞지? 광고? 광고과?"


  여자는 처음엔 나를 좀 경계하다가 내 얼굴이 기억난다며 어색하게 인사했다. 나는 괜찮으면 책을 들어주겠다고 했고, 여자는 고맙다며 순순히 짐을 넘겨줬다. 생각보다 꽤 무거워서 나도 모르게 '어이쿠'하고 비틀거렸다. 여자는 교수님이 부탁해서 교재 제본을 뜨고 오는 중이라고 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아 미안하다며 내 이름을 물어봤다. 나도 여자의 이름을 몰랐으니 괜찮다고 하고 우린 서로 통성명을 했다.


혜주.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렇게 왜소한 여자아이를 그토록 두려워하게 될 줄은.


  그 뒤로 혜주와는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혜주는 말이 많거나 사교성이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예쁘장하고 또 여자라 보니, 사람들은 쉽게 말을 걸고 친근하게 굴었다. 과 동기들은 수업이 마치면 종종 몇몇이 모여 점심을 먹으러 가고는 했는데, 자주 혜주에게 같이 가기를 청했다.


  한 번은 혜주가 구석자리에서 짐을 챙기고 있던 나에게까지 와 같이 가자고 해서 얼떨결에 응한 적이 있었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동기들끼리 이미 서로 친한 듯 와하하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는 다 모르는 얘기라 밥을 다 먹고도 한참 동안 병풍이 되어 어색하게 앉아있어야 했다. 그 후로도 혜주가 몇 번 함께 가기를 권했지만, 대충 핑계를 대면서 모두 거절했다.


  그 뻘쭘한 점심식사 때, 아직 번호교환을 못한 동기들끼리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따로 연락을 준 적이 없었고 혜주만 종종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과제나 준비물을 물어보다가, 점점 농담도 제법 주고받게 되었다. 동기들 사이에서는 물어오는 말에 수줍게 대꾸만 하던 혜주는 나와 메시지를 나눌 때는 활발하고 짓궂었다. 내가 만만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설레긴 했다. 



혜주 : 이따 밤에 과대 오빠가 고기 먹으러 가자던데, 안 갈래?

나   : 안 갈 거 알면서 뭐하러 매번 물어봐.

혜주 : 좀 나가자. 네가 옆에 있어야 내 얼굴이 작아 보이지.

나   : 과대형이 너 따로 부른 거 아냐?

나   : 요즘 자주 부르는 거 보면 관심 있는 거 같은데.

혜주 : 그런 거 아냐. 그리고 그 오빠 별로.

혜주 : 헬스를 그렇게 하면서 귀신이 무섭다잖아. 그게 뭐야.



  그 말을 듣었을 때,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나는 귀신을 안 믿으니까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혜주는 반면에 귀신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한 번은 나한테 프린트물을 가져다주면서 내 자취방 앞까지 찾아온 적이 있었는데, 방 안을 둘러보더니 대뜸 그런 말을 했다 


  "책상 밑에 하나, 옷장 위에 하나."

  "응? 뭐가."


  내가 묻자 혜주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귀신."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잠깐 말을 잃었는데, 혜주는 깔깔 웃으면서 농담이라고 했다. 그렇게 그녀는 자주 장난을 쳤다. 사실 자취방에 귀신이 있었다는 말은 진짜였다는 둥, 이 동네가 음기가 많아 제명에 못 살고 죽은 사람이 많아서 그렇다는 둥. 그런 말을 하다가도 항상 마지막에는 사실 나를 겁주려고 꾸며낸 이야기라고 키득거렸다. 한 번씩 섬뜩할 때도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혜주가 조금 특이한 관심종자라고만 생각했고, 무엇보다 나와는 남들과 다른 유대감이 있는 것 같아서 그냥 좋았다. 그건 내 착각이었지만 말이다.


  제법 공기가 싸늘했던 날이었다. 저녁에 배가 고파서 라면이나 사러 가려고 편의점으로 가고 있었는데, 웃음소리를 들었다. 소리를 끅 끅 하고 끊어 웃는 특이한 웃음. 혜주다. 혜주는 내 자취방 원룸과 그 옆 건물 사이의 골목이라고도 하기 어려운 틈에서 웬 남자와 마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걔가 담배를 피우는 줄은 그때 처음 알았다. 혜주는 키득거리면서 못 참겠다는 듯이 상대 어깨를 툭 밀기도 하고 아주 신이 나 있었다.



  나는 혜주의 눈에 띌까 봐 얼른 그곳을 빠져나왔다. 기분이 차갑게 식었다. 뭐 그 과대형이랑 결국 사귀기라도 하는 건가 보지. 그런데 잘 생각해보니 그 상대 남자는 과대형이 아니었다. 덩치만 크고 얼굴은 눈에 안 띄게 생겼는데 뭔가 익숙했다. 


  아. 기억났다. 그도 같은 과 동기였다. 수업시간에 늘 좌측 끝자리에 앉아 내내 고개를 숙이고 한 번도 들지 않는 놈이었다. 그가 다른 사람이랑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뭐야... 나랑 똑같은 아웃사이더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혜주는 그냥 그런 타입의 남자와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혜주는 나하고만 친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착각하고 있었다.  한 번씩 그 작은 몸에 버거울 정도로 숱이 많은 검은 머릴 끌어안는 상상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랬던 내가 그냥 창피했다. 


  아마 그날 이후에는 혜주가 메시지를 보내오거나 해도 건성으로 띄엄띄엄 대답했던 것 같다. 딱히 뭐 걔가 나빴다기보다는, 내가 혼자 삔또가 상한 거였다. 만약 계속 친분을 쌓아 나가다 보면 혹시 사귄다거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원래 나는 그런 마음이 불편한 관계를 견딜만한 성격이 아니었다. 그렇게 미적미적 대답을 하다 보니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도 뜸해졌고, 학교에서 마주쳐도 대충 인사하고 슥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꽤 흘렀던 것 같다. 과제나 시험은 적당히 쳐내고 있는데, 학교생활이 영 재미가 없었다. 위층에 사는 놈은 뭔 공사를 하는 건지 며칠 전부터 쿵쿵 치는 통에 잠을 설치고 수업을 가야 했다.


  '아, 진짜 개 같네.'


  그래. 개 같았다. 그런데 더 이상 개 같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날, 혜주가 갑자기 내 자취방에 찾아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이었다. 누가 문을 두드리길래 열어줬더니 후드를 뒤집어쓴 혜주가 있었다. 우산을 안 가지고 왔다며 내 방에서 잠깐 비만 좀 피하고 가겠다는 거였다.


  "편의점에서 우산 하나 사면 되지."


  나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혜주는 자기 집에 우산이 열개쯤 있어서 안된다며 멋대로 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멈칫하더니 문이 열린 옷장 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번엔 또 저기 있네?"

  "또 귀신 말하는 거야?"

  "응."

  "아 진짜, 헛소리 그만해."


  내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하자, 혜주는 들고 온 커다란 검은 비닐봉지를 들어 올리며 싱긋 웃었다.


  "맥주 사들고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그냥 여기서 마시고 갈까?"

  "뭐?"



  나는 대충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밥상을 폈다. 내가 아무리 불편한 관계를 싫어한다지만, 관심 있는 여자애가 단 둘이서 술을 먹자는데 어떻게 거절을 할까. 우리는 그녀가 사 온 국산 맥주와 마른안주를 밥상에 깔고 마주 앉았다. 한두 모금 마셨을 때 이미 내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마 상황이 얼떨떨하고 두근거려서 머리에 피가 쏠린 탓도 있었을 것이다. 혜주는 내가 술이 약하다면서 놀렸다. 그리고 왜 요즘 이상하게 구냐고 물어봤다.


  "어, 내가 언제?"


  나는 어색하고 바보 같은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혜주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한참 오징어를 질겅거리더니 말했다. 


  "학교에서 친구라고는 너 밖에 없는데, 네가 날 씹으면 어떡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몰랐다.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구차하지만 '너한테는 또 다른 아웃사이더가 있잖아.'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다. 


  "난 너도 나한테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혜주가 갑자기 그런 말을 했을 때였다. 나는 충격을 받아서 잠시 동안 할 말을 고르고 있었는데,


  쿵! 쿵!


  또 위층에 사는 놈이 쿵쿵거렸다. 혜주는 하던 말을 멈추고 천장을 봤다.


  "뭐, 뭐야?"

  "아, 며칠 전부터 저래. 그런데 아까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쿵! 쿵!



  혜주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무표정으로 천장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쿵!... 쿵쿵! 그리고는 나를 다시 보고 말했다.


  "이렇게 중요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내가 올라가서 조용하라고 하고 올게."

  "안 그래도 돼. 저러다 말아. 아니다, 내가 갔다 올게."

  "아냐 아냐, 여기서 기다려. 금방 갔다 올게."


  혜주는 따라나서려는 나를 집안에 밀어 넣고 문을 닫았다. 땅콩만 한 게 힘이 엄청났다.


  쿵! 쿵... 쿵!... 


  쿵!




  그녀가 항의하러 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소음이 멈췄다. 그리고 다시 문이 열리면서 헤실거리는 혜주가 들어왔다.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대."



  우리는 어색하게 다시 자리에 앉아 술을 먹기 시작했다. 혜주는 아까 했던 이야기를 마저 이었다. 사실 나랑 친해지면서 점점 좋아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말이다. 나는 심장이 요동치면서 술이 머리 끝까지 올랐다. 그래도 술이 약하다고 놀렸던 게 마음에 걸려서 연거푸 캔을 비웠다. 혜주는 도대체 맥주를 몇 캔을 사 온 걸까. 가뿐히 들길래 얼마 없는 것 같았는데...


  그리고 아마 우린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한 번은 손을 잡았던 것 같기도 하고, 또 입을 맞췄던 것도 같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부자리를 펴서 혜주를 재우고, 나는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 위해 책상 밑에 기어들어가서 잤다.



  아직 날이 밝기도 전에 나는 뭔가 소리가 나서 잠에서 깼다.


  쿵! 쿵!

  '또 위층인가?'


  또 윗집에서 난리인가 보다 하고 그냥 다시 자려고 했는데 소리가 좀 달랐다. 좀 더 가까웠고, 콘크리트 벽을 치는 소리 같지가 않았다. 그거라기보다는... 나무... 벽... 아니다. 책상을 치는 소리? 거기에 생각이 닿자 소리가 점점 커졌다.


  쿵..! 쿵! 쿵!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소리는 바로 내 머리 위에서 들렸다. 뭔가 내 책상을 쿵쿵 치고 있었다. 시선을 돌려보니 혜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잠들어 있었다.


  쿵!... 쿵...!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저 소리가 나는 지점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때였다. 와지끈! 쿵!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뭔가 우당탕탕하고 내 옆으로 쓰러졌다. 나는 숨을 얕게 헐떡이며 시선을 돌려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까무러칠 뻔했다.



  목이 반쯤 잘려 피투성이가 된 남자가 온몸이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그 남자는 얼굴이 터질 것같이 부어올라 있었다. 목에서 나온 피는 모두 머리 쪽을 향해 흘러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그 피에 젖어 시뻘건 눈은 반쯤은 튀어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튀어나온 눈 하나하나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불어 터진 입술이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뭔가 같은 입모양을 계속 반복하고 있었지만 울컥하고 피만 쏟아질 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뭐지? ㅈㅗ... 이ㅁ... ㅐ...


'조... 심해?'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쾅쾅쾅!


  나는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다가 책상에 머리를 박을 뻔했다. 식은땀에 온몸이 젖어 있었고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안에 계신가요?" 쾅쾅쾅!


  누가 문을 두들기는 소리였다. 나는 무심코 혜주를 봤는데, 언제 잠에서 깼는지 이불 위에 앉아서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는 얼떨떨해하며 책상 밑에서 기어 나와 현관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제복을 입은 경찰 하나가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벌써 해가 중천에 떴는지 눈이 너무 부셔 나는 눈을 찡그렸다. 복도에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고, 비명이나 탄식 비슷한 것도 들렸다. 경찰이 말했다.


  "혹시 간밤에 수상한 사람을 보거나, 소리를 들으신 게 있습니까?"

  "아... 무슨 일인데요?"


  경찰은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어젯밤에 이 집 바로 위층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네??"

  "자세한 건 수사가 진행 중이라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수상한 사람을 보거나, 소리가 들렸다거나, 다른 생각나는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나는 순간 불안해졌다. 위층... 며칠 동안 쿵쿵 거리는 소리... 그리고... 그래.


  '어젯밤에 혜주가 항의하러 위층에 올라갔었는데...' 


  거기에 생각이 닿았을 때, 몸이 딱딱하게 굳어서 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못 들은 것 같은데... 잘 모르겠어요. 저희 어제 밤새 술 마시다가 뻗었거든요."


  그때 혜주가 불쑥 튀어나와 경찰에게 대신 대답했다. 나는 흠칫 놀라 혜주를 봤다. 경찰은 혜주와 나의 몰골을 번갈아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그럼 뭔가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게 떠오르면 연락 부탁드립니다."


  경찰은 그렇게 명함을 내 손에 쥐어주고 돌아 나갔다. 그 경찰을 붙잡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 뒤에서 느껴지는 혜주의 따가운 시선이 너무 두려워서 나가지도 못하고 돌아보지도 못한 채, 한참을 얕게 숨만 쉬고 있었다. 혜주는 그런 내 팔을 잡아끌더니 현관문을 쾅하고 닫았다.


  "내가 어제 위층에 올라갔던 거 경찰한테 말하지 말자. 귀찮아질 것 같아서."

  "..."

  "왜 그렇게 쳐다봐. 내가 혹시 사람을 죽이기라도 했을 것 같아서?"

  "아... 아니. 위층 사람이랑 어제 무슨 얘기했어?"

  "얘기 안 했어. 그냥 노크를 해도 대답이 없길래, 좀 조용히 해달라고 말하고 그냥 내려왔어."


  혜주는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데 매우 태연했다. 그리고 이상한 말을 했다.


   "잘 생각해 봐. 나 같이 작고 마른 사람이 어떻게 그런 덩치를 죽이겠어?"

   "뭐?"


  순간 섬뜩해서 등줄기가 오싹해졌다.


  "죽은 사람이 덩치가 큰 걸 네가 어떻게 아는 데?"

  "너도 아까 봤잖아. 죽은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뭐라고?"

  "못 봤어? 아까 귀신이 책상 위에서 쿵쿵거리다가 니 옆으로 쓰러졌잖아."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다만 위층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두려움에 심장이 요동을 쳐서 귀가 울리는 것이었다. 




  뉴스는 온통 그 살인사건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범인이 잡히지 않았기도 했고, 그 수법이 굉장히 잔인했기 때문이다. 피해자는 간이 철봉에 머리가 바닥에 겨우 닿을 정도로 매달려져 며칠 동안 살아있었다고 한다. 입에 재갈을 물려놔서 소리를 지를 수도 없었던 그는 머리로 쿵쿵 바닥을 찧으며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고, 결국 목이 베어져 과다출혈로 사망했다고 한다. 내가 잠결에 봤던 그 귀신의 상태와 들어맞았다. 다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피해자가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는 거였다. 


  교수님이 오기 전 강의실은 항상 그 살인사건으로 소란스러웠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누구 하나 울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의 눈은 두려움과 미묘한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왼쪽 맨 뒷좌석을 봤다. 역시 비어있었다. 혜주와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그 남자. 나랑 같은 아웃사이더. 이름은 그가 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넌 영호랑 친했어?"


  옆자리에 앉은 혜주가 물어봤다.


  "아니, 너는?"


  내가 되묻자 혜주는 잠시 아무 말 없이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그녀는 나와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학생식당에서 마주친 과대형은 당황한 얼굴로 내 손을 붙잡고 있는 혜주에게 둘이 사귀는 거냐고 물어봤고, 혜주는 부끄러운 척 고개를 끄덕였다. 과대형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관심이 있었던 몇몇 놈들이 적의를 감추고 툭툭 치면서 어쩌다 그렇게 됐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사귀는 걸로 된 건가?' 나는 울컥 아니라고 말하고 싶기도 했지만, 솔직히 혜주가 무서워서 아무 대응도 할 수 없었다.



  전날 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다가 깜짝 놀란 뒤였으니 더욱 그랬다. 경찰이 찾아왔을 때, 혜주가 붙잡았던 팔이 시커멓게 멍들어있었던 것이다. 그 모양새가 어린아이처럼 작은 혜주의 손과 꼭 같았다. 그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다. 엄청난 무게의 물건들을 가뿐히 들고 다니던 혜주. 그리고 영호와 친한 사이가 아니라고 했지만, 그녀는 분명 둘이서 맞담배를 피며 낄낄대고 있었다. 무엇보다 영호가 살해된 밤, 혜주는 그의 집으로 갔었다.


  다 잊어보려고 애를 쓰기도 했다. 몇 주 지나고 나니 경찰이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점점 뜸해졌고, 혜주랑 제법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날도 생겼다. 그냥 특이한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생각하려고 했다. 하아... 그런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그 일이 있고 나서 두 달이 지난 시점인데, 그동안 내 체중이 10킬로가 빠졌다. 먹는 것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잠을 못 자는 것도 아니다. 거울을 볼 때마다 눈 밑이 눈에 띄게 꺼지는 걸 느낀다. 



  얼마 전부터는 혜주와 섹스를 했다. 내가 처음 해봐서 잘 모르는 건지. 그게 원래 그런 건가? 나는 혜주와 관계를 가질 때마다 고통스러웠다. 특히 혜주가 내 위에 올라갈 때면 무슨 쇳덩어리에 짓이겨지는 듯, 골반과 갈비뼈가 모조리 으스러질 것 같았다. 숨을 쉬기가 어려워 정신이 아득해지면 헛것이 보이곤 했다. 혜주가 노려봤던 구석이나 책상 밑에서 분명 얼룩덜룩한 사람의 형체 같은 것이 보였다. 요즘 거울을 보면 내 꼴이 말이 아니다. 몸에 시퍼런 멍이 가득하다.


  아직도 영호를 죽인 범인은 붙잡히지 않았다. 아무리 터무니없는 생각이라고 해도, 나는 혜주가 그의 죽음에 큰 연관성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리고 언젠가 나도 그와 비슷한 꼴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지만 누구한테 뭐라고 이야기하겠는가. 경찰? 동기들? 저런 조막만 한 여자애가 사실은 힘이 엄청나서 180센티의 거구를 거꾸로 매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곧 나도 죽일 것 같다고?


  나는 이 글을 업로드 예약해두고 매일 아침 그 날짜를 하루씩 뒤로 옮기려고 한다. 만약 내가 죽어서 이 글이 올라간다면, 일단 그건 절대 자살이나 사고사가 아님을 알아주길 바란다. 그리고 분명 거기에는 혜주의 의도가 있을 것이다. 보고 있는 당신이 믿든가 말든가 말이다.


너무 피곤하다.

제발 이 글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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