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먼 훗날 우리>를 보고
젠칭에게 전화가 걸려왔을 때, 그리고 그게 아들로부터 걸려온 영상통화였을 때 나는 직감했다. 이제, 진짜 진짜 진짜 큰일이 났다고.
오늘도 편의점에 갔는데, 과자를 들었다 놨다 족히 10분은 넘게 걸렸다. 요즘 들어 더 심해졌기 때문인데, 뭐가 더 심해졌냐 하면, 결정을 한 번에 못하는 증상 말이다.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나는 뇌를 용량의 99.9%까지 사용한다. 일차적으로는 지속(매번 고르던 걸 고를 것이냐) 혹은 변화(한번 새로운 걸 골라볼 것이냐) 사이에서 고민을 한다. 가닥이 잡히면 그다음으로는 내 선택으로 인해 내가 누릴 행복, 내 선택과 함께 따라올 아쉬운 점을 따진다. 고르는 대상이 음식이라 치면 대충 이런 걸 고려하는 거다. 가격은 물론이고 다음 끼니가 한식 양식 중식 일식 중 무엇인지, 헤비한지 라이트한지, 매운지 느끼한지, 최근에 비슷한 음식을 먹었던 적이 있었는지 혹은 앞으로 예정되어 있진 않은지, 비슷한 음식이 혹시 다른 곳에 더 좋은 맛, 더 좋은 조건으로 판매하고 있진 않은지 기타 등등... 이렇게 모든 세부사항을 다 고려해야 하다 보니 뭐 하나 먹으려다 상당한 시간까지 잡아먹는다.
나도 이런 내가 괴롭다. 가끔은 답답해서 마구 포효하고 싶어진다. 이게 문제라는 걸 잘 알면서도 내가 결정을 쉽게 쉽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후회가 너무 싫어서.
<먼 훗날 우리>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단 몇 초만 들어도 감정을 사무치게 만드는 음악과 함께 젠칭의 내레이션이 들려왔다. 아빠에게 쓴 편지를 읽는 거였는데 나는 슬픔과 짜증이 동시에 밀려왔다. 역시 나는 이 영화를 못 견뎌 하는군. 아이 미스 유. 내가 너를 놓쳤다고 말하며 눈물을 삼키는 장면도 그렇고, 이 영화는 흘러가는 내내 선택의 중요성에 대해 내게 윽박지르는 것만 같았다. 아주 가슴을 후벼파는 방식으로.
무채색의 둘이 서로를 바라보며 만약에, 만약에, 하며 과거를 재구성해보는 것은 순수한 호기심이 아니다. 후회는 단 한 방울만 섞여도 마음을 탁하게 만든다. 뭘 선택했으면 후회를 하지 말아야지. 아니면 후회할 선택을 하지 말아야지! 젠칭보다도 샤오샤오가 진짜 문제가 있는데 그나마 사회적으로나마 성공한 젠칭에 비해 10년 전과 달라진 게 하나 없다는 거다. 자기 연민에 빠진 연인이 실망스러워서 떠났으면, 게다가 성공한 젠칭이 그렇게 절절하게 매달렸는데도 차갑게 돌아섰으면 더 독해지든가. 정 안되면 그렇게 우연히 만나기 전에 먼저 연락이라도 해보든가. 정말 샤하다 추오추오...
비슷한 영화가 또 있다. 나는 그걸 영화관에서 보면서 남들과는 다르게 화딱지가 나서 울었는데, 바로 <라라랜드>다. 아! 아니 왜 이름을 그놈의 셉스로 짓고 왜 미아는 이미 결혼을 했냐고! 정말 나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후유증이 며칠을 간다. 한창 사랑하고 있는 둘이 아름다워서, 그러다가 너무 안타깝고 답답해서 나는 정말 저렇게 후회할 일을 만들지 말아야겠다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두 영화의 주인공들은 영화의 엔딩에 다다라서 후회라는 감정을 말끔히 지워냈음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아니다, 그 순간에서만큼은 충분히 이해 가는 선택이기도 하니까 잘못됐다는 표현은 빼자. 아무튼 지난 선택으로 인해 후회해야 한다면, 현실적이지 않아도 되니까 영화에서만큼은 그걸 좀 만회하면 좋겠다는 게 내 입장이다. 뭐 예를 들면... <첨밀밀>처럼. 꾸역꾸역 말도 안 되게 재회를 거듭하다 마침내 방긋 웃는 두 사람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납치해서라도 병원에 모셔간 덕에 아빠가 세상을 또렷하게 보다가 돌아가시거나, 둘 다 결혼 안 한 상태로 우연히 마주쳐 다시, 그러나 새롭게 사랑을 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둘 다 서로를 까맣게 잊고 잘 먹고 잘살거나. 그런 <먼 훗날 우리>였다면 나는 후회를 덜 두려워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쉽고 빠른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젠칭과 샤오샤오는 우연히든 의도적으로든 아마 다시는 만나지 않으리라. 나를 슬프게 만드는 건, 그러므로 그 둘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언은 영원히 켈리를 사랑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