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엄선용 Nov 08. 2018

뜨거운 한 그릇에 대하여 #1

돼지국밥

서양음식을 공부하다 군에 입대했다. 해군으로 복무를 한 후 한식 공부를 시작으로 “우리음식” , 그 중에서도 내가 먹어왔던 것과 내가 먹을 수 있는 것. 즉 서민의 음식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닥치는 대로 먹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회생활 첫 휴가이자 나의 첫 여행을 팔도음식 기행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나는 부산행 기차에 올라탔다.

서울에서 먹던 뽀얀 국물, 당면으로 찬 순대가 몇 점 들어있던 국밥을 생각했으나, 전혀 다르기 보다는 그들의 문화에 매료되었다. 엄마 그 이상의 푸근함은 혼자 온 내게 어디든 집이었다. 마산의 엄마는 밥이 모자르면 밥이 공짜였고, 고기가 모잘라보였는지 순천 아주머니는 고기를 다시 내 뚝배기에 듬뿍 넣어주셨다. 그리고 부산의 한 시장에 있는 국밥집은 만원도 안되는 가격에 아예 술상을 차려주신다. 그렇게 우리는 먹어왔다. 정답은 없었다. 만드는 방식은 머리를 삶아 만들어내면 고기와 뼈의 국물을 얻어낼 수 있고, 고기만을 넣고 끓여 맑은 국물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직선적이며 화끈한 경상도의 맛이 느껴졌고 돼지국밥 그 자체 기운이 전해졌다. 그리고 정구지 무침. 젓갈로 무쳐낸 부추무침이 완성한다. 이토록 먹은 음식들은 여행 때 내 푼돈으로 먹는 유일한 사치이자 낙이었다.

2년정도 지나 나는 자만심이 하늘을 찌르고 책임감은 부족하고 허영심에 살았던 날이 있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 속에서 뜨거운 한그릇을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하고 비장하게 준비를 했으나, 쉽지 않았고 머지않아 추락을 준비하고 있던 날들이었다. 수육을 삶아본 사람은 안다. 시간이 지난 수육은 마르거나 퍽퍽해진다. 과학을 넘어서서 마음이다. 부지런함이 필요하며 자부심과 장인정신. 손님을 위한 끝없는 배려와 존중이 필요한 일들이었다. 물론 어느 직종이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러한 깜냥이 되지 못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만든다. 그래서일까 경건한 마음의 자세 혹은 겸손하게 만드는 한 그릇이다.

술을 마셨다하면 시도때도 없이 생각난다. 담백한 국물과 부드러운 수육. 내가 좋아하는 깍두기까지.

첫 여행의 마음가짐으로 기차를 타고 내려가고 싶은 밤이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의 냉면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