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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아리 Nov 11. 2024

애매한 도전중독자

다능인이지 이 정도면?


어릴 적부터 나는 글을 잘 썼다. 나는 참 잘하는 게 많은 재주 많은 아이였다. 집엔 아직 그 시절 상장들이 많이 남아있다. 베란다 정리를 할 때마다 엄마는 상장 좀 버리자며 나를 달랜다. 그 상장들에는 나의 글들이 실린 각종 팸플릿, 교지, 공모전 수상작 모음집 등등이 있었다.


글만 잘 썼을까, 그 상장에는 다양한 분야들의 상장이 있다. 학예회, 장기자랑 등 각종 우수상도 있고 콩쿠르 상도 있다. 나는 춤도 잘 춘다. 흥도 많고 끼도 많다. 그걸 춤으로 항상 승화시켰다. 어릴 적엔 무용을 전공하며 한 세월을 보냈고, 더 이상 전공생이 아니게 되었을 때에도 다른 종류의 춤을 배워오면서 지내왔다. 그렇게 배운 춤들은 간혹 혹은 자주, 무대에 올리며 나는 스스로를 댄서, 아티스트라고 생각한다.


어라 근데 상장을 보면, 또 다른 분야가 나온다. 나는 영어말하기 대회로 시작하여 외국어에 소질이 있었단다. 그렇다고 외고로 진학한 건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할 때는 어떻게든 공부를 덜 하면서도 그에 비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게 목표였다. 그렇게 내 전공은 영어로 정해졌다. 전공으로 정한 뒤에 나는 신기하게 영어가 더 좋아졌다. 지금도 영어는 내가 참 사랑하는 언어이다. 토익은 조금 공부하니 900을 넘겼고, 아직 고등학생이던 시절 다들 토익으로 본격적인 어학 커리어를 시작할 때 OPIc를 취득하기도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상을 받았다. 올해로 직장생활 13년 차. 회사원인 사람들은 다들 알 것이다. 회사에서 ‘상’을 받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정말 운이 좋았다. 지금도 사내 시스템에서 경력증명서 발급하기를 누르면 상벌 사항에 ‘기관장 표창’이 자동으로 적혀 출력된다.


표창? 그러하다 내 업무에서 특출 난 성과를 냈다기보다는, 모지자체에서 근무하던 당시, 방문했던 시민들이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던 것들 중 일부분이 지자체장에게까지 전해져 생긴 결과였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나는 이메일을 쓴다던가, 대외 공문을 쓴다던가, 방문자 상담을 한다던가 등. 내가 해왔던 행정업무들 중에선 소통하는 부분이 좀 괜찮았던 것 같다.


아, 잘하는 거 아직 하나 남아있다. 춤을 췄던 덕분인지, 운동을 빠르게 배워서 몸을 만든 적이 있었다. 처음 운동을 배운 지 1년이 안되어서 바디프로필 촬영을 성공적으로 해냈고, 그 이듬해에는 목표를 피트니스 대회로 잡았다. 결국 나는 출전까지 무사히 해냈고, 두 번째 바디프로필도 찍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고 싶었다. 바로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에도 도전하여 취득했다. 몸도 자격도, 비교적 단기간 내에 해내었다. 이때의 자신감은 지금 생각해도 엄청났다. 옷도 한껏 노출 있는 옷을 입기도 하고, 헬스장에서 운동 배우고 싶다는 동생을 임의로 가르쳐서 다이어트도 시켜줬었다. 그러자 SNS를 통해 다른 헬스장에서 트레이너 제의도 오더라. 이때의 자신감으로 나는 홈트레이닝을 주제로 유튜브를 시작했고, 2년간 거의 쉬지 않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로서 채널 운영을 했다. 혼자 기획하고 촬영하고.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다. 그 경험은 나를 다양한 재능을 갖게 해 주었다. 이게 나의 가장 큰 고민이 될 줄은 몰랐다. 어릴 적 전공, 대학에서 전공한 것, 회사 생활에서의 장점, 취미로 하는 글쓰기. 자기 계발의 일부로 도전했었던 운동.


하지만 누가 보더라도 엄청난 능력이다라며 인정할 만한 능력은 이 중에 아무것도 없다. 딱 일반인과 프로의 중간. 준프로급 실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딱 그 정도의 애매한 능력들이다. 내가 잘한다고 한 이유는, 그 분야를 안 해본 일반인보다는 확실히 잘하기 때문이다. 허나 그걸로 밥 벌어먹고살만한 프로급의 능력은 결코 아니다.



고로.. 여러 가지 중에 그 어떤 것에도 나는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없다. 어쩌면 능력이 없는 일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떤 것 하나를 골라 더 깊게 파서 프로급으로 능력을 올려내어 내 진로로 삼아야 할지. 거기서부터 내 고민은 시작되었다. 그것이 5년 전쯤이었다.


한 때 이 “다능인”의 괴로움을 나는 해결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작년 한 해에는 내가 경험한 이 모든 것들을 아우르면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때를 생각해 보았다. 사람들과 내 이야기를 나누는 게 나는 그저 행복했다.


 회사생활을 할 때에도 점심시간에, 틈새시간에 동료들과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운동할 때에는 트레이너선생님과, 같이 운동했던 친구들과, SNS로 오운완을 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 행복했다. 영어? 주변에 영어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었고 그들과 다국적 ‘수다’를 떨 수 있어서 행복했다. 글을 쓰는 건, 그렇게 수다를 떠는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글로 좀 더 넓게, 다양하게 소통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 글이 참 좋았다.


그래서 작년에는 수다, 즉 소통이라고 생각하고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내 이야기를 나누려 노력했다. 강의를 만들어서 작게 열어보기도 하고, 온라인 프로젝트를 열어 작은 강의와 코칭을 진행했다. 수강생들에게 주려 PDF전자책을 만들기도 했다. 좋은 기회로 점점 더 많은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할 수 있었다. 또, 코칭의 기회도 연이어서 이어졌다.


계속 승승장구했다면, 이것이 성공스토리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나의 진로를 찾는 것에 또다시 실패했다. 강의로, 코칭으로 노력했던 나의 모든 것들은 내가 한순간 방향을 잃으면서 모조리 내 손을 떠나게 되었다. 블로그, 인스타 등등 꾸준히 만들던 콘텐츠를 그만두었고, 강의자료를 공부하고 준비하는 등의 노력도 서서히 멈추었다. 그렇게 내 손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고 나는 올해 5월, 다시 회사원이 되었다.


년 전의 진로고민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생각에 올여름은 정말 좌절스러웠다. 그 고민에 고민을 하고 노력에 노력을 했는데 결국은 다시 회사원이라니.


나의 앞으로의 진로는 또 어떻게 되려나.


이건 한때 도전중독자였던,

지금은 고민중독자가 되어버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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