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잃어버린 30년
그림을 그렸다.
얼마만에 잡아보는 색연필일까
내 손끝을 누가 보고있는다 생각하니
점점 머리가 하얘졌다.
상담시간엔 그림 말고 그냥 이야기만 하고 싶었다.
내 손에 쥐어진 색연필을 가지고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스케치북'이라는 친구에게
대고 그어 보기까지 한참 침묵의 시간이 지났다.
이게 뭐라고 용기가 필요한지
나는 그저, "이제 그만" 그리라고 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시간이없어서, 아니 그냥 말로 해도 되니깐..
에잇..
다행일까 아닐까, 시간을 충분히 주셨다.
결국은.. 계속 쩔쩔맴과 싸우면서 그림을 완성했다
동그라미속에 내 마음대로 무늬그리고 색칠하기.
만다라 라고..했던가
겨우 겨우 완성한 그림.
이제 그만 그림에서 탈출인가..?
엇..
이름을 붙여보라고 하셨다.
이름...?
아니 그림에 이름 붙이는거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렵지
또 머리가 하얘지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다.
결국 그냥 내이름을 붙였다.
"쨍아리꺼"
--
다음 상담시간
그 만다라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쨍아리거"
- 왜 그렇게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냥, 저의 현재와 미래 등등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리라고 하셔서
제가 만들어갈 미래나, 그 주변 환경들 등등 제가 만들어나아가는
제 인생의 것들을 그린 거니까, 제 꺼라고 해봤어요"
자연스럽게 "~의 것" 소유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유난히 내 것,에 대한
집착이 좀 있는 편인 것 같다.
팀장님이 업무 보고 중에 내 펜을 가져가 쓰시면,
그거 언제 돌려주시나 하고 계속 살피게 된다.
만약 깜빡 잊고 돌려주시지 않는다면
왜 안돌려주시지 라고 생각은 하지만,
또 말로 꺼내지는 못한다.
그냥 팀장님 책상에 있는 내 펜.을 계속 신경 쓸 뿐이다.
퇴근하고 돌아 온 내 방.
자연스럽게 문을 열자마자 0.5초내로
빠르게 내 책상부터 살핀다.
무엇이 흐트러졌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틀린그림 찾기 하듯이
내 부재중에 누군가
건드린 흔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쫓는다.
찾았다.
책상 물건들 일부분이 묘하게 달라져 있다.
용의자는 두 명으로 좁혀진다.
엄마와 이모.
둘 중 누구일까.
그리고 왜..
건드렸을까.
.....
...
..
이상하다. 둘 다 아무말이 없다.
옷을 갈아입으려 옷 서랍을 열었다.
헉.
여기서부터 시작이었구나
옷이 싹 정리가 되어있다.
조금은 엉망이던 옷들이 칼각으로 개어져 있고,
계절감을 잃었던 옷들은 제철의 옷으로 바뀌어 있다.
깔끔해진 옷 서랍을 보는데
마음이 너무 불편하다
난..정리를 요청한 적 없다
정리가 어렵다고 도움을 바란 적도 없다.
정리된 옷가지들 사이에서
두꺼운 옷 하나를 찾는다.
어디에도 없다.
철이 지났다며 정리되어 어딘가로 치워진 모양이다.
난 예전에도, 3n살인 지금도 내 옷이 정확히
집 어디에 정리되고 관리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엄마~ OO는 어딧어?
OO여기에 있는게 다야? 사야될거 같은데 그럼?
아~ 저기에 또 있다고? 몰랐지~
물건을 매번 엄마한테 물어서 찾는 것
맨날 찾아줘야 하는 엄마들의 고충도 있을 터인데 말이지,
나도 .. 이제 그만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도무지 질문을 하지 않고서는 찾을 수가 없다.
베란다 책장에 OO을 정리하기로 하고,
내 책장과 장롱에 뭐를 두고 정리하기로 했는지
엄마가 알려준 장소들에 대해
적응을 다 마치기도 전에
또 정리가 되었는지 다시 찾을 때면
전체 위치가 조금씩 또 달라져있다.
베란다에 보관하던 물건들이
어느날 갑자기 엄마 방 한켠으로 위치를 옮기고
거실에 있던 물건들이 어느날 갑자기
내 방으로 이사를 했다.
내가 손을 대지 않을 가족들만의 물건이면 모르겠다
나도 써야하고 나도 알아야 하는 그런 물건이거나
혹은 가끔 아예 나만의 물건도 그렇게 위치를 옮긴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 집에서 나는 내 소유권을 주장할 힘을 잃어버렸다.
주장을 하기도 전에 이리저리 옮겨진다.
너가 잘 관리하지 못하지 않냐는 이유를 대며..
그럴 수록 더 예민해진다.
오늘은 또 내 것들이 얼마만큼 침해당했을까.
나는 어디까지를 책상에 올려두고
나는 어디까지를 가방안으로 숨겨야 할까
내 방을 나서야 할 때면
꼭 '내 기준'대로 '내 것'들을 정리해두고 나간다.
혹여나 나도 모르게
정리되어 다른 곳에 가거나, 폐기되는 일을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
혹여나 나도 모르게
정리된다면, 바로 알아차릴 수있게
정말 지긋지긋한데
익숙해져버린 내 생활이었다.
만다라 이름을 붙이기 전까지
이 생활이 불편하다는 것 조차 까먹고 있었다
근데 정말 지긋지긋하다
내거 내가 정리하고 관리하겠다는데
그게 이렇게 어려울일인가
계속 이러다가는
초등학교 1학년 처럼
책가방까지 다 관리 하겠네 증말
3n살이 아니라
그냥 n살인가봐
내 30년을 그렇게 냠냠 드시고 계신데,
그 30년 언제 주실거에요?
네?
제가 곧 찾으러 갈겁니다.
기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