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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진 Sep 14. 2020

김지영은 어떻게 우리가 되었나

사적인 이야기에 날개를 다는 일, 영화 <82년생 김지영>

* 이 글에는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영화, 책을 불문하고 < 82년생 김지영 >에 대해 스포일러 유무를 알리는 것만큼 무용한 일이 없다. 당신이 보고 전해 듣고 경험한 모든 여성의 삶이 바로 < 82년생 김지영 >이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말들에도 불구하고,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이 개봉 5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른 영화들을 꺾고 며칠째 예매율 1위에 등극해있기도 하다. 영화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82년생 김지영' 자체가 어떠한 구호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 82년생 김지영 >에서 주목할 것은 이 영화가 '상업 영화'라는 점이다. 국내 5대 배급사 중 하나인 '롯데 엔터테인먼트'가 배급을 맡았다. 너무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그 여자들의 이야기를 '상업 영화'에서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두가 알면서도 모두가 모르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독특한 경험, 이야기를 하는 다른 영화들과 달리, < 82년생 김지영 >은 이야기의 보편성을 그 특징으로 한다.


 

김지엉에게서 '우리'를 보다

▲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를 볼 때,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것이 있다. 바로 남편 정대현의 시선과 위치이다. 그는 항상 차려진 밥을 먹고, 누군가가 개어놓은 옷을 입으며, 누군가 청소해놓은 집에서 생활한다. 영화는 이 뒤에 가려진 사람을 조명한다. 그 밥은 누가 차렸으며, 옷은 누가 개었고, 청소는 누가 언제 어떻게 해놓았을까? 영화는 '해도 해도 끝이 안 보이는' 가사 노동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상적으로 이 모든 일을 해내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김지영'이다.


이것뿐일까. 채용 성차별, 육아, '시월드', 심지어 불법 촬영까지. 이 모든 현실이 겹겹이 쌓여 김지영을 옥죈다. "다들 남의 이야기지. 나만 전쟁이야, 나만!" 지영은 소리친다. 이 영화의 흥행은 나만의 전쟁인 줄 알았던 그 이야기가 사실은 모두의 이야기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적인 것으로 여겨졌던 그 이야기는 사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이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다. 이것이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이 하고 싶은 말이다.


< 82년생 김지영 >을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가 피해 의식으로만 점철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58년생 미숙이면 몰라도, 82년생 김지영은 특권을 누리고 살아왔다고 말한다. 영화는 이 말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몰이해한 말인지를 보여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성들이 '그 정도면 괜찮은 축'에 속한다는 웃픈 현실을 제외하고서도 말이다.


82년생 지영에게 지영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58년생 미숙에게는 58년생 미숙의 이야기가 있었다. 아들을 공부시키기 위해 꿈을 포기했어야 하는 일이나, 아들을 낳지 못해 구박받았던 일, 아이를 다 키우고 나서도 손녀·손자를 위해 또다시 본인을 희생시켜야 할 일.


이 모든 일을 겪으며 58년생 미숙은 82년생 지영을 낳았다.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아름다운 날에. 그리고 짐작했을 것이다. 82년생 지영이 겪을 또 다른 이야기들을. 지영 또한 짐작했을 것이다. 함박눈이 세상을 하얗게 뒤덮던 날, 예쁜 딸 아영에게 다가올 또 다른 이야기를. 그래서 이 영화는 김지영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58년생 미숙, 82년생 지영, 지영의 딸 아영은 물론 은영의, 김 팀장의, 혜수의 이야기다.


   

발견하고, 질문하고, 위로하는 일

▲ 영화 <82년생 김지영>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 영화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았다. 우리 인생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일로만 이루어지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다. 가족들이 주고받는 대화에 공감하게 되고 남편이 걸어오는 장난에 웃게 되는 것은 이 영화가 가진 또 다른 힘이다. 


그런데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하면서, 귀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었다. 특정 부분에서, 누구는 웃는데 누구는 웃지 못했다.


영화에서 '워킹맘'으로 나오는 김 팀장이 워킹맘을 비하하는 부장에게 "이제 회의 시작할까요~"하며 장난스러운 몸짓을 했을 때 웃지 못한 사람과 웃음을 터트린 사람. 대현과 지영의 신혼 시절 남편 대현이 일어나자마자 밥을 달라고 하는 부분에서 탄식을 터트린 사람과 미소를 지은 사람. 두 부류를 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갈등은 이 차이에서부터 시작된다. 그 '차이'를 질문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대단하다.


혹자는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엔딩이 '너무 비현실'적이며, '이상'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반은 동의하지만, 반은 동의할 수 없다. 우선 '비현실'적이라는 데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자신의 직장도 위험해진다는 데에 기꺼이 육아 휴직을 선택할 사람이 많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화의 결말이 '이상적'이라는 데에는 동의할 수 없다. 모두가 한 발씩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끊임없이 질문하자. 왜 누군가는 이 영화를 '피해 의식 덩어리'라 비난하는가? 왜 어떤 장면에서 누구는 웃고 누구는 웃지 않는가? 마음껏 상상해보자. 아이를 밤늦게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있었다면? 누군가의 희생 없이도 마음껏 공부할 수 있었다면? 그리고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당신이 상상한 그 세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걸 할 수 있는지. 우리의 상상력과 질문이 '김지영'들을 조금은 위로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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