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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Jan 11. 2019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어쩌면 대중의 취향을 내 취향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어떤 이유로든 소외당할 위험이 있다.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서점은
모두에게 공동체와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 《서점 여행자의 노트》, 김윤아



“대중의 취향은 곧 내 취향이었다"

가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유 모를 소외감을 느끼곤 한다. 대부분 그들만의 관심사로 대화가 이어질 때 느낀다. 화장이라던가, 연애 이야기라던가, 아이돌 얘기라던가.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나'는 그다지 관심 없는 주제. 관심 없다고 한창 수다 떠는 친구들에게 찬물을 끼얹을 순 없으니, 열심히 듣고, 열심히 말했다.


사진 : Unsplash.com

그런데 가끔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분야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너희들의 취향이 마치 내 취향 인양, "너도 그거 좋아해? 오 나도 그거 봤어, 괜찮더라."라며 말을 할 때다. 사실 '그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열띤 목소리로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는 그 장면이 부러웠다. 그 열띤 상황에 나도 있었으면 하는, 소심한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관심 없는 드라마, 예능의 클립을 보고, 별생각 없는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은 척했다. 어느 곳을 가든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를 찾아다녔고 물건을 살 때도 판매량 순, 추천순, 인기순에 의존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상대방이 내게 '취향'을 물어볼 때, 할 말이 없었다. 내 취향은 대중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걸 좋아하는데, 왜 좋아하는지 몰랐다. 그냥 사람들이 좋아했고, 써보니 나쁘지 않았으니까. 친구들이 추천해줬으니까. 그때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베스트셀러는 늘 나에게 최상의 만족감을 줬을까?' 대중이 좋아하는 것, 사람들이 관심 있어하는 것에 매달리다 보니, 정작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대중의 취향이 곧 내 취향이었으니까. 다수의 편에 속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무심코 생각했으니까.


생각해보면, 나도 내 취향이 있었다. 책의 경우에도 베스트셀러보다 구석진 책장 속표지에 이끌려 읽었던 책에 가치를 느낀 적이 많았다.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나와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 있는 음악, 영화를 좋아하기도 했다. 그때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대중적임'에 집착한 나머지 '소수'의 취향에 무심했던 건 아닐까. 나 자신의 취향과, 많은 다른 이들이 각자 가진 소수의 취향을, 대중과 맞지 않다며 무시하진 않았을까.


사진 : Unsplash.com


마음속 목소리를 내게 해 준 오늘의 책은 <서점 여행자의 노트>(김윤아, 북저널리즘)다. 벌써 연속 두 번째 깨달음이다. 작은 책에서 이런 힘이 나올 수 있다니, 다시 한번 북저널리즘과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인사이트를 얻어서 쓴 글

https://brunch.co.kr/@0717sb/176


"게이스 더 워드의 컬렉션에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없다. 서점 어디에서도 판매량에 대한 언급이 없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주로 책을 샀던 사람이라면 난감할 것이다. 게이스 더 워드에서는 타인의 추천에 의존할 수 없다.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알고, 원하는 책을 찾아야 한다."


"취향의 영역에서마저 우리는 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특정 지역 출신인지 아닌지에 따라, 성별이나 나이에 따라 소수자로 분류될 수 있다. 나는 어린 시절 왼손잡이라고 놀림을 받았고,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는 이유로 혼이 났다. 어른이 된 지금도 주변에서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채식을 하는 사람은 회식 자리에서 소외되고, 키가 너무 크거나 작은 사람, 너무 말랐거나 살이 찐 사람들은 기성복 매장의 표준 체형을 보고 허탈감을 느낀다. 우리는 매 순간 다수의 편에 속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세뇌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수의 취향을 가진 사람이 그 사실을 남들에게 알리기는 쉽지 않다. 단순한 취향과 기호의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라면 더 그렇다. 소수자가 자신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스 더 워드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를 이야기한다. 동시에 그 과정이 조금 덜 어려울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한다. 정체성을 탐구할 수 있는 도서들을 비치하거나,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주변 사람과 상의하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도 있다."


"모든 소수자를 위한 커뮤니티"

사진 : Gay's the word
"1984년 영국 정부는 게이스 더 워드를 포르노 상점으로 간주하고 대규모 수색을 벌였다. 서점이 수익을 압수당하며 폐쇄 위기에 이르자 각국의 독자들은 블로그에 글을 올려 서점을 옹호했다. 일반 시민들이 게이스 더 워드를 지킨 것은 이 서점을 단순히 소수자들의 공간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서점은 자신과 후대의 자손들이 살아갈 사회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공간이었다. 게이스 더 워드가 탄압받는다면, 자신도 언젠가 사회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이스 더 워드가 성 소수자를 비롯해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해 왔음을 알고 있는 시민들은 작은 서점을 돕기 위해 나섰다. 게이스 더 워드에서 책을 사면서 사회에서 정체성을 위협받는 사람은 성 소수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사회가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다면, 나 역시도 어떤 이유로든 소외당할 위험이 있다.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서점은 모두에게 공동체와 연대 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게이스 더 워드'가 나에게 큰 인상을 준 이유는, 소수의 취향을 존중하고, 소외된 이들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의 뛰어난 시민의식 때문이었다. 사람들도 어쩌면 '소수'일 수 있기에, 누구나 언제든 소수자가 될 수 있기에, 게이스 더 워드는 소수자를 위한 작은 서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꾸준히 알린 덕분에, 소수자를 향한 시민들의 인식이 달라졌고, 서점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사회가 누군가를 소외시킬 수 있다면, 나를 포함한 누구든 소수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나도 그랬다. 내 은밀한 취향은 가리고, 대중이 좋아할 만한 취향만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이런 자세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무너뜨리고, 사람들의 정체성을 위협한다. 우리 모두가 연대하고, 소수를 위한 공동체를 만든다면, 우리 자신이 소수자가 됐을 때 나타날 벽을 넘을 힘을 얻지 않을까. 벽이 있다는 건 늘 슬픈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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