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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 Jan 10. 2019

착한 딸, 제겐 버겁습니다

점점 나에게 의존하는 엄마가 버거웠다.

나는 엄마와 친하다. 언니와는 다르게 엄마랑 성격이 잘 맞기도 하고, 좀 더 활동적인 편이라 엄마와 평소에 많은 걸 같이 하곤 한다. 엄마가 쇼핑을 하거나, 시장을 가거나, 운동을 할 때 따라나서는 편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것도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둘째 딸, 막내딸이니까 사글사글해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다. 첫째인 언니가 무뚝뚝하고 매번 엄마와 부딪치기에, 왠지 모르게 나는 엄마와 잘 지내고 싶다, 잘 지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엄마는 그런 나를 무척 좋아하신다. 


엄마에게 언니는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고, 사교적이지 않은 시크한 첫째다. 미국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는 내게 언니 얘기를 했다. 같이 여행 온 사람들에게 눈길 조차 주지 않았고, 사진 찍어 달라는 부탁에도 건성으로 대했다는 말이었다. 그 후 내가 엄마와 같은 여행사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언니와 달리 사람들은 나를 보며 엄마에게 연신 부럽다는 말을 했다.  


“첫째는 좀 그런데 둘째는 성격도 좋고 사교적이네~ 효녀 둬서 좋겠다~ 부럽다 부러워” 


엄마는 무척 뿌듯해했다. 엄마에게 나는 사교적인 사람이었고, 자랑스러운 딸이자, 어디 내놔도 안심이 되는 막내였다.


사실 나는 언니와 달리 ‘자신’을 위하지 못하는 편이다. 나도 언니 못지않게 낯을 가리고, 혼자 있고 싶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어려워한다. 만약 그곳이 엄마가 있는 자리라면 더더욱 부담된다. 하지만 엄마가 나를 자랑스러워하니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 딸을 보여주고 싶을 테니까. 그래서 그냥 따라갔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하던 모든 것들이, 어느새 ‘딸 노릇’, ‘엄마를 위한 일’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엄마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말과 예민한 딸의 감성이 부른 '화'였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자리를 나가다 보니, 사람들은 엄마와 나에게 관심을 가졌다. 딸이 착하다는 둥, 우리 모녀가 부럽다는 둥의 말을 했다. 엄마 혼자 운동을 나가는 날이면 사람들은 항상 '엄마 딸'을 찾았다. 오랜만에 운동을 나가면 왜 그동안 엄마랑 안 나왔냐며 궁금해한다. 왜 이렇게들 관심이 많은지, 점점 피곤했다. 어딜 가든 따라붙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 자꾸 어딜 같이 가자는 엄마의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 그걸 거부할 수 없는 착한 딸. 점점 좋은 딸이 될수록, 좋은 ‘나’를 만들 시간이 부족해졌다. ‘내’ 할 일보다 ‘딸’로서 할 일이 점점 많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그게 버거웠다.  

사진 : Unsplash.com

어제였다. 엄마는 늘 나가던 체육관이 아니라 갑자기 다른 체육관을 가자고 말했다. 이미 가기로 결정한 눈치였다. "갈래?"가 아니라, "갈거야"였다. 나는 내가 모르는 곳, 엄마만 알고 있는 곳, 더군다나 엄마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 또 적응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그런 거 싫어. 그냥 계속 나가던 곳 나가면 안 돼?” “그 코치가 너랑 나 보고 싶대. 그래서 간다고 했어” “나는 싫어 그냥 가던 곳 갈래. 아님 안 가.” “됐어 넌 가야 돼, 내가 너 내일 아침에 무슨 일이 있어도 깨울 거야.” 


엄마의 마지막 말을 듣고 나니 할 말이 없어졌다. 그때 무슨 감정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울고 싶었고 화가 났다. 내가 싫다는 데, 왜 내 의사를 거부하고 자기주장을 강요하는 거지? 한 번이라도 내 입장에서 생각했다면 저런 말은 나오지 않았을 텐데. 결국 엄마는 아침에 나를 깨웠고, 나는 운동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건 두 번째 문제였다. 엄마가 나를 대하는 태도가 첫 번째 문제였다. 


엄마를 위한 딸 노릇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부쩍 자주 들기 시작했다. 점점 나에게 의존하는 엄마가 버거웠다. 언니와 나를 대하는 엄마의 다른 태도가 마음에 걸렸다. 엄마가 나를 아끼는 마음이 커지면서, 언니는 되고 나는 안 되는 것들이 많아졌다. 착한 딸이라는 쇠사슬이 나를 점점 옥죄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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