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이 많으면 비도 많을까?
직원과 날씨 이야기를 하다 흥미로운 말을 들었다.
“롱탄은 공단이 많아서 다른 지역보다 비가 더 자주 와요. 여기는 안 오는데 아침에도 롱탄엔 비가 억수로 쏟아졌어요. 이봐요 옷 다 젖었잖아요.”
순간 귀가 쫑긋했다.
'공단이 많으면 비도 많다?'
왠지 근거 없는 농담 같지만, 또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저녁, 나는 ‘롱탄의 비’에 대해 조금 진지하게 찾아보기 시작했다.
롱탄의 하늘은 언제 가장 바쁠까?
롱탄이 속한 동나이 지역은 남부 베트남의 전형적인 열대몬순 기후다. 비가 집중되는 시기는 4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그중에서도 9월이 가장 자주 비가 내리는 달이다. 쉽게 말해 1년 중 비 오는 날이 가장 많은 시기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바다와 가까운 붕따우 시보다 내륙의 롱탄이나 푸미(공업벨트 지역) 쪽이 오히려 연강수량이 많다는 점이다. 붕따우 해안은 연평균 약 1,400mm, 반면 롱탄과 푸미는 1,950mm 안팎이다. 같은 성(省) 안에서도 해안보다 내륙 공업지대에 비가 더 많이 내리는 셈이다.
공단이 구름을 부른다고?
직원의 말처럼, 공단이 많아서 비가 더 온다는 말이 과학적으로 가능한 이야기일까? 사실 일정 부분 가능성이 있다.
공장에서 나오는 미세먼지나 매연 속에는 ‘에어로졸(aerosol)’이라고 불리는 작은 입자들이 들어 있다. 이 입자들은 공기 중에서 물방울이 맺히는 씨앗 역할(‘구름 응결핵’)을 한다. 즉, 하늘에 떠 있는 수증기가 이런 입자에 달라붙으면서 구름이 생기고, 그 구름이 충분히 자라면 비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산업단지 주변에서는 ‘구름이 더 자주 생길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꽤 있다. 하지만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다. 입자가 너무 많으면 물방울이 너무 작고 많아져 서로 합쳐지지 못해 오히려 비가 덜 오는 현상도 나타난다. 즉, 오염이 많다고 해서 무조건 비가 많이 오는 건 아니다.
산업별로 다른 하늘
그래도 큰 틀에서 보면, 베트남 남부의 내륙 산업벨트(롱탄–푸미–쩌우득 등)는 해안보다 습도와 수증기 공급이 안정적이고, 공장 가동으로 생긴 미세입자들이 대류를 촉진할 환경이 된다. 특히 중화학·금속·에너지 산업이 밀집한 푸미는 그 영향이 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전자·조립 중심의 롱탄 공항벨트는 상대적으로 오염 입자 발생이 적어 기상에 미치는 효과도 미묘하다.
즉,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공단이 있다' 일 수도 있고, '공단이 있어서 비가 자주 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일 수도 있다. 둘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얇다.
비보다 무서운 방치
일전에 롱탄 골프클럽을 간 적이 있었다. 왕복 6차선의 국도였는데 도로 중간 중간이 싱크홀처럼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고 차들은 그 곳에 바퀴가 빠지지 않으려고 모두 차선마저 무시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러니 차량 운행 속도는 푸미지역의 일반 도로보다 못한 듯 했다. 차량에 탄 모든 사람들이 "이게 도로냐?! 시골 마을길도 이보다는 낫겠다" "도로 관리는 하는거야!"라며 불평을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말했다. “이 도로는 예전에 일본 ODA 자금으로 지어서 관리받았는데, 계약이 끝나자 일본 기업이 철수했고 지방정부는 예산이 없어 그냥 방치된 거래요.”
그 말이 꽤 오래 마음에 남았다. 펑크 난 도로는 더 깊어지고, 우기엔 빗물이 고여 침수되고, 차량은 길을 잃은 듯 더디게 움직인다. 그 지역 사람들은 비가 ‘더 많이 오는 곳’이라기보다, 비가 올 때 피해가 더 커지는 곳을 매일 마주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내 지역의 날씨를 다르게 보는 시선
직원과의 대화 덕분에, 나는 ‘오늘 비가 오네’라는 말 뒤에도 이렇게 복잡하고 흥미로운 과학이 숨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공단 굴뚝의 연기,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 구름 속 작은 먼지 입자 하나까지도 결국 이 지역의 하늘을 함께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다음에 비가 내릴 때, 그 빗방울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조금 다르게 떠올려 보면 어떨까? 하늘은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우리 손끝의 공기와 함께 만들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